2025.02.09 주일설교 "장로의 직분" 베드로전서 5:1~7 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장로의 직분
베드로전서 5:1-7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I.장로의 직분
장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든든하게 하기 위해서 세우신 평신도 지도자입니다. 장로는 목사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성도를 섬기며, 균형잡힌 생각과 실천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직분입니다.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고, 지속적인 자기 갱신이 필요합니다. 장신대 총장을 역임한 임성빈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장로는 예배와 기도 헌금을 포함한 신앙생활의 본이 되는 자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할 때 그 위기의 핵심은 갈등과 분쟁이었습니다. 분쟁과 갈등의 중심은 사람과 목사와 장로라는 리더십의 갈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소망은 목사와 장로의 리더십의 변화에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소망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와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우리에게 주시는 시대적 사명을 붙잡기를 소망합니다. 신양교회를 담임하셨던 이만규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교회 헌법에서 정한 항존직의 규정과는 달리 내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어릴 적 교회가 있던 동네는 내가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아이가 가기 어려웠지만 틈 나는대로 교회에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였다. 마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집사님이 마을회관을 빌려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얼마 뒤 마을회관을 교회가 매입하여 정식 예배당이 되었다. 농한기인 겨울이나 농번기인 봄 가을에도 어른들은 수시로 교회에서 기도하고 교회를 둘러보면서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돌보셨다.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자란 나는 교회 어른들의 사랑이 너무나 좋았다. 나는 교회의 어른들이 가정보다 먼저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보면서 자랐다. 내 어머니는 먼거리에서도 새벽기도를 다니셨고, 새벽기도를 갈 때 교회 지붕을 덮을 볏짚을 머리에 지고 가셨다. 때로 교회가 허물어지면 어른들은 산에 나무를 해다가 교회를 보수했다. 당시 어른들의 교회 사랑은 친척이나 가문보다 앞섰다. 초대교회가 그렇듯 한국교회는 순교적 헌신자들에 의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장로, 교회 어른들의 모습이다. 내가 경험한 목회 현장에서 만난 어른 장로님들을 보면서 혼란에 빠졌다. 그분들로 인해 왜 장로가 되어야 하고, 장로의 기본이 무엇인지, 장로의 영광이 어디에 있는지 가치 판단에 혼란이 생긴 것이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 지도자의 문제이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사의 악(惡)함이 아니라 목사의 약(弱)함 때문이다. 장로님들이 목사의 약함을 섬길 때 장로의 직분, 장로의 영광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목사가 장로를 섬기고 장로가 목사를 섬겨야 하는데, 목사가 장로를 다스리고 장로가 목사를 다스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목사의 목회적 파트너는 장로님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와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어도 장로님들이 먼저 섬기셔야 합니다. 교회의 수준은 장로님의 믿음을 뛰어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사의 목회를 돕고 섬기는 분들이 장로님들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장로님들과 교회의 주요 문제들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II.성경적 기준
성경에서 장로에 대해서 제일 먼저 언급된 곳은 출애굽기 3:16-18입니다. 16.너는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확실히 보았노라 17.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18.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세의 권위에 순종하여 광야로 나왔습니다. 출애굽기 18장에 보면 모세가 혼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판결하는데 도저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모세가 지쳐갈 때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모세에게 경건한 사람에게 마땅히 행할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동역자를 세우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장인의 말에 순종하여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의 동역자를 세웠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옥한음 목사님이 하셨던 예화입니다. 어떤 분이 사업을 하는데 꼭 말씀을 다섯 장씩 읽었다고 합니다. 은혜를 사모하니까 아무리 생활이 바빠도 하나님이 주시는 레마의 음성을 들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자기 전에 꼭 성경을 읽었답니다. 그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 음성을 들려주시고, 사업에 대한 지혜도 주시고, 마음에 문제도 위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TV도 안보고 말씀을 읽었답니다. 그런데 경기가 안좋아서 집사님의 사업이 너무나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어느날 장인어른이 부르셔서 가보니까 “자네 인테리어 사업 좀 해봐”라고 하시는 겁니다. “지금 자기 사업도 자금이 없어서 죽어나는데, 인테리어의 인자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인테리어 사업을 합니까?” 라고 했더니 그래도 장인어른이 “그래도 한 번 해봐”라고 말씀하더라는 겁니다. 참 이상하다! 장인어른이 연세가 드셔서 이상해지셨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가지고 그날 저녁에도 씻고 성경을 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출애굽기 18장 말씀을 읽는데 24절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참 이상한 겁니다. 자기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말씀인데 거기서 레마가 들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도 직전에 있던 인테리어 회사를 하나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불티가 나게 됩니다. 모세는 장인 어른의 말을 듣고 평신도 동역자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장로님들의 역할을 발견합니다. 지도자를 돕는 장로 제도는 광야시대, 사사시대, 왕정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를 잃은 바벨론 포로기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장로의 직을 직접 언급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5:1-7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신약시대의 장로들은 교회를 보호하고 돌보는 목양을 담당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잡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리더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당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20:28-30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오늘날 한국교회 장로님들이 주로 교회 행정에 애를 쓰시는 반면, 초대교회의 장로님들은 교회 성도들을 돌보고 보살피는데 힘썼습니다. 목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도 없고 빛도 없습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나를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고 성도를 섬기는 것이 목양의 길입니다.
III.오늘의 적용
이번 주 목요일 극동방송에서 “함께하는 교회” 김요한 목사님의 7분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에 예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기도, 보여지는 구제, 보여지기 위한 봉사를 하고 싶어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신앙인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잘 알고 지내는 해오른누리 이호찬 선생님이 쓴 “왕과 꽝”이라는 글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왕과 꽝”의 내용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왕에 대한 호칭이 참 많습니다. 임금, 군왕, 패자, 황제, 거서간, 차차웅, 마립간, 엠페라토르, 차르, 파라오, 가수왕, 저축왕, 요리왕, 낚시왕, 실험왕, 선박왕, 수입왕, 먹거리에도 왕만두, 왕돈가스, 왕갈비, 왕냉면, 왕감자탕, 그 밖에도 왕잠자리, 왕거미, 왕오징어, 왕벌, 왕왕왕 왕이 이렇게 많습니다. 왕이 되면 좋은 것이 많기는 한가 봅니다. 여기 저기 크고 작은 곳에서 왕이 되고 싶어 난리도 아닙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오래 전에 왕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가 되면 너희는 너희가 선택한 왕에게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울부짖게 되겠지만 그때는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에 응답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사무엘상 8:18 말씀입니다, 나라에 왕을 잘못 세우고, 내 속에 왕을 잘못 세우면, 왕이 아니라 꽝 된다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왕과 꽝의 글을 인용하면서 김요한 목사님이 하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인정, 리더의 인정, 직분의 인정을 원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도 필요하지만, 이런 것이 지도자의 덕목으로 삼으면 하나님 앞에서 꽝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주간에 또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이 “지금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는 판단을 유보하고 기도하자”고 하신 설교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니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에 교회 성도들이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라는 이유였습니다. 들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목사님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가르치겠느냐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전한길 선생 같은 분도 평생 믿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우리 시스템이 얼마나 부패한지 알게 되니까 피를 토하며 자기 직을 걸고 울부짖는 것 아닙니까? 목사는 하나님의 샬롬을 가르칠 책임이 있고 우리 장로님들은 성도들과 함께 진리의 말씀을 받고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진리로 거룩함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이라서 저 하늘이나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는 기준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이뤄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알면 싸울 일이 없는 것인데, 오히려 진리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다투는 것 아닙니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셔서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을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고 기도해야, 거룩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의 중직자들인 목사, 장로, 권사, 집사는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와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