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3 주일설교 l "은혜의 기도" 디모데전서 2:1~4

이종명 0 1,230

2025.07.13 주일설교 l "은혜의 기도" 디모데전서 2:1~4ㅣ설교:장귀삼 담임목사

 

은혜의 기도

디모데전서 2:1-15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찬송가 3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을 지은 존 뉴턴은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에 선원으로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나중에는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잡아다가 파는 노예무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뉴턴은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에 폭풍우를 만나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폭풍우 앞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신앙생활에 눈을 뜨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노예무역을 한 것을 크게 회개하며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뉴턴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끼고 목회자가 되어 복음과 노예폐지 운동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존 뉴턴이 쓴 “물러가라 불신이여”라는 글의 내용입니다. "어둠이 길을 막아도, 주님이 인도자가 되시니 내 할 일은 순종, 공급하심은 주님의 몫... 기도로 씨름하세, 그분이 역사하시리니 그리스도 배 안에 모셨으니, 폭풍에도 웃음 짓네."  세상 모든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고도 잘 살아갑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밥을 잘 먹고, 기도하지 않고도 자기 일을 잘합니다. 오히려 바쁜 사람들에게 기도는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평소에 자주하는 익숙한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기도에 대한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 또는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도하지 않는 일이 고통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 안의 영이 고통을 당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참되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시편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하나님의 형통보다 하나님의 고난을 먼저 배우는 것이 유익입니다. 욥기서를 보면 욥에게 엄청난 고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모든 재물을 잃고, 모든 자녀들을 잃고, 건강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욥의 부인은 욥을 향하여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서 빌닷, 엘리바스, 소발이 찾아왔습니다만 그들의 조언이 욥에게 더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욥이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거듭난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욥은 친구들의 조언을 거부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실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욥과 세 친구들에게 나타나셔서 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셨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고난의 의미를 알려 주시길 원했고, 친구들은 욥이 죄인이라는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욥기서 내내 자신의 인생을 한탄한 욥을 인정하시고, 욥의 친구들은 욥이 중보기도를 해야만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세 친구들이 아닌 욥을 인정하는지가 가장 궁금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인정하신 이유는 욥은 고난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를 결코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평화할 때는 기도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전쟁할 때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기도를 합니다.

 

디모데가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에는 크나큰 영적 전쟁이 있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들어와서 잘못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의 참된 일꾼들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성도들이 전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먹는 것을 가지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형제, 자매라는 말로 성도들의 위계질서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무질서함으로 말씀의 권위와 기도의 능력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가 디모데전서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제일 먼저 진리의 말씀을 잘 가르치하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난 뒤에 모든 사람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당시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네 가지 기도의 종류가 나옵니다.

 

첫 번째 간구입니다.

간구로 번역한 헬라어 '데에시스'는 “부족한 것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어서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범죄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간구하셨습니다. 중국 난징에는 눈물을 흘리는 ‘눈물방’이 있습니다. 일본 신주쿠의 한 호텔에도 ‘눈물 객실’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 마음이 건강해지기 때문에 생겨난 건물입니다. 주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디모데 역시 하나님과 에베소교회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3-4] 3.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로 번역한 '프로슈케'는 말 그대로, 기도, 기도하는 곳이란 뜻입니다. 프로슈케의 원어인 프로슈코마이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를 뜻합니다. 사람이 대화하는 것같이 하나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루 동안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의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프로슈케는 ‘기도를 생활화’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따라서 항사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를 말씀을 배우는 장소로 바꾸셨습니.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를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식탁 공동체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장 삭개오의 집을 아르라함의 후손으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형틀인 십가자를 구원의 십자가로 바꾸셨습니다.

 

세 번째는 도고입니다.

도고로 번역한 '엔륙시스'는 원래는 왕과의 대담, 면접, 기원이라는 뜻입니다. 도고는 디모데전서에서만 두 번 나오는데 모든 사람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 즉 중보기도입니다. 먼저는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나오고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나옵니다. 중보기도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하지만, 중보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범죄한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미국에서 노예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남쪽에는 고든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병사들과 날마다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병사들과 함께 기도만 하면 마음이 뜨거워져서 전쟁에 이길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매일 기도하면서 나가는 족족 연전연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북군의 승리로 끝나고 노예들이 해방되었습니다. 훗날 고든 장군은 당시에 기도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전쟁에 패한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들이 기도한대로 남군이 승리했다면 위대한 미국은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도고는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그래서 중보기도의 가장 좋은 모범은 주기도문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함께 목회를 하면서 기도하는 목사님 네 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목회를 하다가 큰 어려움을 만나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낙심되어 있을 때 한 목사님이 찾아와서 “자네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나 때문이다. 힘들게 목회하는 자네를 위해서 내가 기도하지 않았기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라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목사님이 찾아와서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목사님도 찾아와서 똑같이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서로의 허물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네 분 목사님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던 목사님들이 되었습니다. 네 분 모두 아름답게 목회를 하고 은퇴할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는 감사입니다.

감사로 번역한 '유카리스티아'는 기쁨의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잘, 좋게, 올바르게, 적절하게라는 뜻의 헬라어 ‘유’와 기쁨, 은혜라는 뜻의 헬라어 ‘카리스’의 합성어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에 보면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현합니다. [데살로니가 3:9-10] 9.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도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편 50:14-15] 14.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예산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이 새벽 일찍 카페에 나와서 기도하는 두가지 제목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최고의 재료로 빵과 커피를 만드는 것입니다. 둘째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기도는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 건강한 빵과 커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번째 원칙이었습니다. 손님마다 성향이 다르고, 심지어 무례한 사람들도 있는데, 여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습니다. 이 때 집사님이 선택한 방법이 ‘감사’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어떤 손님들에게도 감사하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카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한 손님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카페 안에서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은 자신의 일터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성소로 바꾸었습니다. 감사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는 것이요, 하나님께 가장 귀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딤전 2:1-2]의 말씀입니다.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번 대통령 간담회를 보니까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들을 위해서 일해 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대통령의 일을 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구하는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기도에 방해를 받지 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남성들은 거룩한 손을 들어서 기도합니다. 여성들은 정숙함과 선행으로 아름답게 자신을 단장해야 합니다. 남성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몰두하여 기도를 잃어버리고, 여성들은 외모를 꾸미는 데 몰두하여 기도를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들 모두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Comments

 

 


카테고리
  • 글이 없습니다.
최근통계
  • 현재 접속자 15 명
  • 오늘 방문자 971 명
  • 어제 방문자 1,684 명
  • 최대 방문자 3,734 명
  • 전체 방문자 1,131,487 명
  • 전체 회원수 236 명
  • 전체 게시물 1,127 개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