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0 부활주일 "죽은 자의 부활"고린도전서 15:12~20 설교:장귀삼 담임목사
죽은 자의 부활
고린도전서 15:12-20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오늘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기독교가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없이는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일 누군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교회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아서 죄없이 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으려면 죄의 값을 치루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속량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는 것은 우리를 속량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10:9-10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래서 주를 믿는 자는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서 영생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죽음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주의 십자가 부활은 온전히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8-11의 말씀입니다.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로마서 10장 9절 말씀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믿는 자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 교회 안에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없습니다.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도 헛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헛 것이면 우리 믿음도 헛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부활이 없는 자는 이 세상의 삶 뿐이요, 여전히 죄 가운데서 신음하는 죄인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활 신앙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5:31-32 31.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 쓸 데 있나니 32.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부활을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고 한 사두개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두개인들에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살아 있으나 이미 죽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게 믿느냐?
영국인이었던 프랭크 모리슨은 부활을 믿는 기독교는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 대해서 열심히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말씀을 읽다가 기독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사실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기독교 역사 속에서 찾아낸 ‘부활의 확실한 증거들’입니다. 첫째, 예수님의 활동 기록은 남아있지만 무덤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둘째,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과 증인들이 남겨둔 기록들이 많았습니다. 셋째, 안식일을 지키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주일을 지킨 것입니다. 넷째. 부활을 믿은 유대인들이 제일 먼저 교회를 세웠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십자가에서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성도들이 수백 년간 이어진 로마의 박해에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일곱째.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은 이런 부활의 부수적인 증거로 믿으려 하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믿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던 사람들도 주님을 만나면 변화되는 이유가 주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거는 지금도 살아서 내 안에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부활의 증거는 예수님을 믿는 나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를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김윤상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멕시코는 오래된 카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아니라 선행으로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얼만큼 수고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구원의 확신이 없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김윤상 선교사님은 과테말라에서 사업을 하다가 멕시코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따라 2017년 멕시코로 건너가서 선교를 하다가 2018 년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24일간 혼수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온몸의 피가 60%나 배속으로 빠져나왔고 복막염과 패렴, 패열증이 찾아왔고 왼쪽다리 뼈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의사들은 선교사님이 죽을 것을 예상해서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 동안 선교사님은 영적인 세계 속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였고 보고 듣는 모든 감각이 살아있고 느낄 수 있는 세계였습니다. 선교사님은 장로교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신비주의 신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가 겪은 일은 진짜였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거짓의 영들에 사로잡혀서 끌려다니고 있었습니다. 거짓의 영들은 모든 사람들이 거짓으로 넘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회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그들에게 계속 끌려다니다가 죽을 것 같이 지쳐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찬란한 빛이 비추면서 찬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찬양 소리는 이 땅에서 부르는 찬양도 아니고 군중들이 부르는 찬양소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찬양은 소리가 빛과 같은 찬양이었습니다. 그 찬양을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예수 보혈을 외치게 되었습니다. 예수 보혈을 외치자 거짓의 영들이 더 이상 선교사님의 영혼을 주관하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보혈을 믿고 선포한 선교사님은 거짓의 영들에게서 풀려나게 됩니다. 거짓의 영들에게 풀려나자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들에서 풀려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자기 앞에 큰 돌 산이 두 개가 있었는데 산 정상에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선교사님의 마음에 “어?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시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수많은 고백을 했지만 그것을 생생한 사실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산으로 가는데 예수님도 선교사님을 만나기 위해서 내려오셨습니다. 히브리서 9:27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말씀이 실제로 바로 앞에서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그 심판의 자리에 거짓의 영도 올라와서 함께 섰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이 살아오신 삶이 파노라마처럼 쭉 펼쳐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거짓의 영이 선교사님의 인생을 함께 보게 됩니다. 거짓의 영 사탄이 선교사님의 인생을 보면서 계속 참소를 합니다. 선교사님이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과 참소가 이어지면서 수치심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이 심판 이후에 나는 어떻게 될까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사탄이 계속 참소하는 동안에도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자리를 떠나고 난 뒤 예수님이 선교사님의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시간들을 찾아내시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예배자로 살아온 선교사님의 삶 속에서 예수님이 인정하신 시간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선한 일을 많이 했지만 그 일들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한 일이었음이 다 드러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시간 속에서 선교사님은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결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죄에 대한 값이 이미 지불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정죄했지만 예수님께로부터 한마디도 정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심판자가 가지신 법만이 진리입니다. 심판자가 정하신 법은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입니다. 심판 이후에 천국과 지옥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앞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깨어나게 됩니다. 말씀대로 선교사님이 다시 깨어나 예수님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6:7-13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진리요 죽은 자의 부활은 사실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오늘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생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