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0 주일설교 l "섬김의 은혜" 마태복음 23:1~12

이종명 0 1,048

 2025.08.10 주일설교 l "섬김의 은혜" 마태복음 23:1~12ㅣ설교:장귀삼 담임목사​

 

섬김의 은혜

마태복음 23:1-12

1.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10.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11.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은 어제 창민교회에 속한 실업인들을 위한 기업예배에 나눈 말씀입니다. 실업인하면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업인(實業人)이란 열매 실(實) 사업 업(業) 사람 인(人) 자로서 세상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을 뜻합니다. 사업하시는 분은 좋은 직원을 원하고 일 하시는 분들은 좋은 리더를 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업의 목적과 인생의 꿈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공동체와 조직에 맞은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어떤 일을 개척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들이 세워지려면 적지 않은 진통이 따릅니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이탈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공동체가 나뉘거나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일을 깊이 고민하신 이춘성 박사님의 글을 통해서 성경적 리더십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리더십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리더십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인간성’이 아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유창한 말솜씨와 같은 기술에 불과할 수 있다. 리더십은 ‘사람들과 친해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십이란 한 사람의 시야를 더 높은 목표로 끌어올리고, 그 사람의 열매를 더 높은 기준으로 끌어올리며, 평범한 한계를 넘어서는 인격을 세우는 일이다." 드러커는 참된 리더란 사람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성장의 경험은, 직원들이 어떤 일을 할 때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더 큰 성과를 내게 합니다. 경영자들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짐 콜린스(Jim Collins)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위대한 기업의 리더들일수록 구성원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기업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동기를 가지고 일하고 서로 돕고 각자가 한계를 뛰어넘어서 일을 합니다. 이러한 리더가 있는 조직은 열정과 헌신으로 위대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이 먼저 내 일의 주체라는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카리스마형 리더’를 좋아했습니다.그러나 헬라어 카리스마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나 은혜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천재 학자인 막스 베버(Max Weber)가 카리스마를 “개인의 자질”로 설명하면서 카리스마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자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카리스마는 강한 추진력과 뛰어난 언변, 그리고 대중을 휘어잡는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는 마치 전쟁터에서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전진 앞으로”라고 말하며 돌진하던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리더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리더로 평가받는 처칠과 링컨 대통령, 삼성의 이병철, 이건희 같은 기업 총수들은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꺼려했고, 화려한 언변과 강한 존재감보다는 조용한 결단력과 책임감으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역사는 오히려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졌던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과 같은 인물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대중을 휘어잡는 마력을 가졌지만, 선동 선전술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란 타고나는 자질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는 “역할”(work)”이라 할 수 있습니다. 리더는 만들어지는 존재이지 태어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리더는 세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 리더는 기업의 사명과 방향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비전을 직원들에게 잘 전달해야 합니다. 둘째, 리더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일의 공은 직원들과 함께 나누고 과는 리더가 최종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셋째, 리더는 직원들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리더는 일에 대한 책임도 지지만 직원들을 성장시킬 책임도 있습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이 세 가지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신경영 선언을 했습니다. 이 발언을 통해서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리더는 자기 자신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는 일에서도 리더이지만 하나님이 불러주신 성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적인 리더십을 갖추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리더를 세우실 때 리더에게 주시는 소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성도들의 리더십은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리스마는 하나님의 은사요,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선물이 없이는 어떤 선한 일도 본질적으로는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하는 성도가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자격은, 당연하게도 하나님의 ‘소명(calling)’입니다. 목사가 하나님께 소명이 받듯이, 기업과 일터를 섬기는 성도들도, 하나님께 소명을 받아야 합니다.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이것을 ‘두번째 부르심’ 또는 회심이라고 말합니다. 내게 세상을 맡겨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세상에서는 일하는 사람에게  ‘소명’을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반드시 ‘소명’을 요구하십니다. 소명은 자신의 능력이나 일의 성과를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참된 리더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자신의 욕심이나 생각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다는 거룩한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래서 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애쓰게 됩니다. 성경적인 리더십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진실한 리더십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리더십의 본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종의 태도’입니다. 오스 기니스의 “The Call(소명)”에는,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두 가지 사랑에 대한 관점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사랑은 서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움직이게 됩니다. ‘에로스’는 “위대한 상승(the great ascent)”이라고 부릅니다. ‘사랑의 상승’인 에로스는 아무리 고귀한 것들 진리, 거룩함, 혹은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자기 만족과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고상해 보이지만, 에로스의 중심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반대로 ‘아가페는 “위대한 하강(the great descent)”입니다. 아래로 하강은 인간의 겸손이나 온유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의 사랑입니다. 이 위대한 하강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혜는 인간은 사랑의 주체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강인 아가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위대한 왕이신 예수님처럼 종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리더는 자기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성경적 리더십의 목표와 방향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종’의 개념이 때로는 리더의 개념과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둘로스라는 ‘종(Servant)’의 개념은 권위를 파괴하는 리더십이 아닙니다. 잘못하면 종의 태도가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 하고, 무조건 희생을 감내하는 리더십으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권위’가 성경적 리더십과 상충되는 리더십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종이라는 둘로스보다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집사’를 더 많이 사용했습니다 집사를 세운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초대교회의 고민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가 ‘종’과 ‘리더’라는 개념을 혼동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리더가 가지는 올바른 종의 태도는 겸손과 온유함을 가지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헌신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식탁에서 제자들을 섬기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시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가운데 보여주신 맡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리더가 될 제자들에게 섬김의 정신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3-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성경적 리더십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까지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 속에서만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들어, 마침내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오늘날 세상은 위대한 리더를 원합니다. 참된 리더는 결과적으로 공동체를 ‘위대한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된 리더에게는 반드시 ‘위대한 하강’이라는 하나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갖춰야 할 것은 리더십의 기술이 아니라 목적과 방향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예수님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진정한 리더십의 능력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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