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2일 주일 낮 설교<나아만 장관의 믿음>

정성주 0 4,009

제목: 나아만 장관의 믿음

본문: 열왕기하 5:1-14절

구약 성경가운데 왕들의 이야기가 기록된 열왕기상 17장부터 열왕기하 1장까지를 엘리야 내러티브라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열왕기하 5장은 엘리사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는 엘리사 내러티브에 속합니다.

이 5장은 엘리사의 의한 아람나라 국방부장관 나아만의 치유과 개종 사건을 다루는데 이런 내용을 ‘이야기체’(narrative)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XML:NAMESPACE PREFIX = O />

사람들은 자기가 문제를 만나면 심각하게 생각하고 남의 일에는 자기 일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다른 사람이 아플 적에는 병문안이나 신경을 안쓰다 가도 자기가 아파서 있을 때에는 병문안 인사나 방문을 안하면 매우 서운해 합니다.

왜! 그렇까요?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약해졌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라도 위로를 받기 싶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약해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1, 치료를 위한 적국의 나라 이스라엘 여행(5:1-7)

아람나라는 북 이스라엘과 늘 대치관계에 놓인 철천지 원수 관계였다(왕상20장 22장) 역사적으로 추정하기가 곤란한 시대였습니다. 아쉽게도 두 나라의 왕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가 없습니다. 아마도 두 나라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은 충성된 자였고 그의 무공은 뛰어나 아람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용사였지만 한편으로는 치명적인 병이 있었습니다. 어떤 병인지를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나병환자로 변역을 했는데 히브리어 ‘차라아트‘는 오늘날 한센병이라고 부른 문둥병이 아니라 피부병이나 곰팡이균 종류로서 사람뿐만 아니라 건물 벽이나 옷에도 생길 수 있는 일종곰팡이균 종류였다고 볼 수 있다.(레13:47-59 14:34-53) 그 이유는 병이든 나아만이 왕에게 나아가서 접근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심각한 나병환자는 아닌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나병은 주전 4세기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제의 군인들에 의해 인도에서 옮겨 오게 된 질병이었다. 아마도 나아만의 질병은 고질적인 피부병이 틀림이 없습니다.

나아만의 집에는 이전에 아람이 북 이스라엘을 공경해서 포로로 붙잡아 온 어린 소녀 하나가 있었다.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의 몸종이 되었다.(2절) 이스라엘 몸종은 여주인에게 나아만의 치료의 가능성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한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피부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3절)

엘리사의 선지자의 명성이 적국의 군대장관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작은 계집아이가 하는 말의 소재가 될 정도로 엘리사의 명성은 널리 펴졌음을 알 수가 있다. 이 소식을 나아만이 즉각 아람 왕에게 알렸습니다. (4절) 그리고 아람왕은 총애하는 신하의 병 치료의 가능성을 전해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는 친서도 써주고 적극적으로 이스라엘나라 여행을 후원합니다. 나아만의 병은 전염성은 없었지만 만성적인 질병이었을 것입니다. 이 병은 아람나라에서도 그들이 믿는 신도 고칠 수없는 병입니다. 국내에서 고칠 수 없는 병을 이제 외국에 나가서도 고칠 수만 있다면 기적에 의해 치료를 받기위해서 허락했습니다.

이때 나아만은 엄청난 많은 선물을 준비합니다. 그가 이미 치료받을 가능성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이 치료의 기적을 믿고 준비하는 물품 품목입니다.

‘은 십 달란트, 금 육천개, 의복 열벌’ 나아만의 선물은 엄청나게 많은 것이었다. 한 달란트 대략 32kg이며 한 세겔은 대략 30mg이었습니다.

선물은 은이 340kg이고 금은 90kg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이스라엘의 왕은 불신앙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신뢰가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방인 아람 왕과 군대장관 나아만 그리고 부인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엘리사를 항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반응은 옷을 찢고 아람 왕이 침공을 위한 포석으로 빌미를 잡으려는 구실을 삼고자 하는 정치적 술수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자기나라 안에 있는 선지자에 대한 신뢰도 없었다. (7절)

2, 엘리사에 의한 나아만의 치유(5:8-14)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달라고 하면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참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8절) 이에 나아만 일행이 말과 병거를 이끌고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도착한다. 그리고 문 앞에 위엄을 갖추고 높은 벼슬을 은근히 과시하고 서있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의 알현을 거절하고 그를 문 앞에 계속해서 머물도록 한다. 엘리사는 아람의 권력자 나아만을 직접 만나주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처방전만 내려주었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10절)

이 처방전에 나아만은 고전적인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즉 예기치 못했던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을 요구받은 것이다. 나아만은 자신이 엘리사에게 성의가 없는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되어 화가 났다.

“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하였도다”(11절)

치료여행을 위한 그의 철저한 준비 왕의 허락과 외교적인 중재 그리고 준비한 선물이 얼굴도 모르는 선지자가 성의없는 냉담한 태도의 거절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치료의 격식인 상처부위에 손을 얹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안수 기도라도 해주는 종교의식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왔지만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말씀의 순종” 이라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경험, 이론, 학설, 등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의 반응은 갖가지입니다. 당시 널리 통용되던 종교의식 버선발로 뛰어나아서 자신의 머리위에 손을 얹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 경배를 기대했는데 왕이 사자를 보내 신하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듯이 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엘리사의 말씀의 순종이 거부감이 났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의도와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까 치료를 위해 참고 있던 자존심의 상처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 강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낫지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11절)

나아만은 유명한 아람의 강과 비교하면 옹색하기 짝이 없는 요단강에서 목욕해야 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경멸과 부당한 요구를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만나야할 사람이 아니고 처방이 물이라면 차라리 아람나라 물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분노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의 수질이 아니라 치료를 위한 겸손한 순종의 여부입니다. 상대적으로 강대국인 아람나라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민족주의 우월감의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엘리사의 제안 처방을 반대합니다.

객관적인 조건으로 보면 자신이 머무르는 장소 다메섹(다마스커스)의 강이 이스라엘 요단강 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치료가 물로서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자기중심적인 오만과 교만에 빠져있다. 그의 뼛속 깊이 오만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지기자신이 치료의 걸림돌이 되고 만다. 분노의 순간 모든 계획이 수포로 끝장나려는 순간 그의 종들이 입을 연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니까?”(13절) 말없이 아람에서 이스라엘까지 따라와서 수종들었던 나아만의 종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입을 열었습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갖게 됩니다.

장기나 바둑을 둘 때 옆에서 훈수가 더 잘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나아만은 그의 오만함을 내려놓았습니다. 말없이 여기까지 따라와서 주인에게 훈수를 드는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렇다 물이 아니고 선지자의 말이 곧 하나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말씀의 순종이 승리한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것을 실천할 때 드디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요단강에 내려가서 몸을 일곱 번 담글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14절)


결론입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자기우월감에 빠진 교만한 믿음과 태도는 이웃은 물론 자신도 병들게 합니다.

둘째, 치료의 기적은 특별한 의식이나 넘치는 예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겸손한 순종에서 일어납니다.

셋째, 미약하고 작은 자의 입으로 들려지는 또는 은밀한 말씀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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