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26일 주일 낮 설교<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정성주 0 4,218

제목: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본문: 마태복음 6:1-6절

어느 깊은 산골에 사는 신랑 신부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떠나 호텔 방에 들어갔습니다.

신부가 먼저 샤워를 하겠다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한참 있어도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신랑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신부가 좌변기 변기통 안에 있는 물로 머리를 감고 있었습니다. 그 좁은 변기통에서 적은 물을 내리면서 머리를 감고 있는 것을 바라 본 신랑이 배꼽을 잡고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신랑이 자세하게 신부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여보 이것은 앉아서 변을 보는 변기야 이 더러운 곳에서 머리를 감으면 안 되지.”

신부는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리고 얼른 욕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신랑이 샤워를 하려고 욕조 안에 들어가서 제2차 개그콘서트를 진행합니다. 샤워기를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는 신랑이 샤워기를 한참 동안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입에다 대고 이렇게 떠들었습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아~ 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를 테스트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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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태복음 6장 본문은 유대인들의 경건생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경건생활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보임으로서 보다 더 나은 의를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인들의 유대교의 경건의 3대 기둥에 속하는 말씀이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구조는 자선(2-4절) 기도(5-6) 금식(16-18)을 예수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1, 고대농경사회에서는 가난이 널리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신15:4~11)

신명기15: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예수님은 오셔서 “자비를 행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마가복음 6:37절에서 제자들에게 들판에서 굶주린 군중들에게 “너희가 먹을 주라”(막6:37)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인식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그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6장에서 이것이 변질되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거리에 서서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대로에서 요란하게 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자선이 공적으로 자기 자신을 알리는 행사로 전락을 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지적을 하십니다.

거액의 기부금을 낸 사람이 특별하게 존중을 받았고 랍비 옆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위선이라고 하셨습니다. 위선자라는 말의 뜻은 헬라어 “휘포크리테스”인데 원래 그리스 연극무대에서 여러 가지 다른 역할을 맡기 위해 가면을 바뀌어 쓰고 나오는 배우에게 사용된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윤리적인 영역으로 쓰여 질 때 부정적인 의미로 쓰여 졌습니다. 즉 가면의 얼굴처럼 자신의 참 모습과 다르게 나타나는 두 가지의 모습을 말하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2, 고대 유대교에서 기도는 자선과 함께 중요한 종교적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에 세 번 아침, 정오, 저녁에 18기도문을 낭독하는 것이 의무였고 기도 할 때마다 늘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방향으로 기도하도록 했다.

그런데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큰 길 모퉁이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회당에서는 큰 소리로 각자가 자유롭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런 것들을 문제로 삼지 않았다. 대다수 유대인들은 서서 기도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유대인들은 기도는 특별한 자기과시를 위해서 아주 적합한 장소에서 자신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기도에 대해서 지적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기도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문제였다. 그래서 “골방에 들어가서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신다.”

(이사야 20:20) 그래서 주님께서 모범의 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는 주기도문입니다.(마태6:9-13)

마태복음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조용하게 골방에 들어가서 정성으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말씀입니다.

3, 고대의 금식에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공적금식과 개인적 금식입니다.

공적인 금식은 관청에서 주도하는 것이고 개인의 의지에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 개인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기도회를 말합니다. 왕이 전쟁이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를 부탁하는 일에 의무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체의 금식에 더 큰 의미의 가치를 두었습니다. 국가적인 금식은 대 속죄일이나 민족적인 흉일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일반적으로 민족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실시했다. 7월10일 대 속죄일 명령을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지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기원후 시대에는 각 개인의 자유로운 금식이 경건을 위해 더 자명하고 더 공적을 쌓는 행위로 여겨졌다. 사람들의 체험과 운명이 다양하기 때문에 금식의 목적과 원인이 그 만큼 다양했고 간절한 소원은 금식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심한 참사나 질병이나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금식은 이러한 불행을 피하는데 아주 적합한 수단이라고 여기고 금식을 했다. 때로는 금식할 이유가 없는데 사람들은 금식을 위한 금식을 했다. 왜냐하면 금식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금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 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결론입니다.

①구제를 할 때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하게 할 것

②기도를 할 때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하게 할 것

③금식을 할 때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하게 할 것

예수님께서 이러한 관습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서 개인들의 명성을 얻으려고 힘쓰는 그들에게 ‘위선자’라는 명칭을 붙여 주셨다.

그럼 오늘을 사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가? 위선자인가 은밀한 자인가?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이 말씀을 마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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