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14일 주일 낮 설교<내일을 향한 교회>

정성주 0 4,151

내일을 향한 교회

빌립보서 3장 12∼14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10월 11일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을 소개 합니다.

불과 3년 만에 압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거의 모든 국민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준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에는 과연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필자는 이런 질문과 함께 '한국은 스마트폰에 열광한 덕분에 세계를 향해 문을 열게 된 나라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얼마 전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며칠 후 한국을 떠날 때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한국인, 특히 한국 젊은이들은 이미 세계를 향해 개방돼 있었고, 스마트폰은 단지 이 모든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도구였을 뿐'이라고 말이다.

현재 전자통신 분야는 세계적으로 격변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 제3의 물결이다. 그 물결의 선봉에 한국이 있다. 2009년 스마트폰이 처음 소개된 한국은 이제 60%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 이는 유·무선 인터넷의 보급 속도를 통틀어 유례없는 확장이다. 한국은 무선 인터넷의 일상화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니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전자통신 변화 중 제1의 물결은 1970년대 말 시작된 하드웨어 혁신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워크맨을 처음 접하고 가벼운 무게와 높은 휴대성에 감탄했다. 이를 통해 음악은 개인적 경험이 되고 이동성을 갖게 됐다. 그러나 문제도 생겼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수록 버튼이 늘어나는 등 복잡함이 가중되면서 혁신적 기술이 묻혀버릴 위험에 처했다.

이때 소프트웨어 혁명이 제2의 변화 물결을 이끌었다. 아이팟은 하드웨어의 위기를 소프트웨어를 통한 접근성 개선으로 해결해갔다. 소프트웨어 혁신을 통해 복잡한 하드웨어를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제3의 물결에 접어들었다. 기기(器機)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고 다양한 기기 간에 끊김 없는 서비스가 가능한, 매우 흥미로운 세상이다. 이제 모든 경험은 누구와도, 무엇과도 연결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이런 제3의 물결을 극적으로 포착하고 기회를 극대화하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개방한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성장이 글로벌 획일화로 귀결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한국은 이러한 선택이 옳았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다양한 휴대전화를 선보이고 있다. 누구나 안드로이드를 통해 멋진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음을 삼성 갤럭시 노트는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 게임회사 컴투스(Comtus)는 스마트폰에 사활(死活)을 거는 도전을 한 끝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열려 있는, 그리고 글로벌한 플랫폼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도전 경로임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필자는 가수 싸이의 성공이 단지 행운이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성공을 준비하고 스스로 일군 사람이었다. 연세대 강당에서 만난 한국 학생들도 크고 담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지,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혁신은 무엇인지 물었다. 요즘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미래에 대한 긍정적 확신과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정신이 '강남스타일'과 전자통신의 새로운 물결이 만나는 합류(合流) 지점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혁신하고 있는 영역이다. 인터넷이 없는 K팝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끼가 넘치고 매력적일지는 몰라도 전 세계 각국의 팬들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프로모션 회사, 방송국, 음반회사 등을 일일이 거쳐야 했을 것이다. K팝은 문화가 인터넷을 통해 얼마나 쉽게 국경을 초월해 전파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싸이'뿐 아니라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은 동네 구멍가게도 글로벌 비즈니스로 바꿔놓을 수 있다. 한국은 그 길의 중심을 뚜벅뚜벅 걷고 있다.

이상이 슈미트 회장이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에 돌아가서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스마트폰의 혁명이라고 할까 세계가 주목하는 인터넷의 나라 한국입니다. 겔럭시 노트만 있으면 원만한 회의에는 메모에 지장이없는 첨단의 작은 노트북 스마트폰이 삼성에서 개발하여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leader of koera가 곧 leader of world의 지름길이 될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 활짝 열려있습니다.

한국은 더 이상 세계적으로 변방의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을 가장 잘 받쳐 주는 것이 인터넷 세상이다. 세계제일의 인터넷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는 나라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4G로 세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서 활용을 잘 한다면 세계적인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변함이 없는 소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 세상을 그분을 통해서 구원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말라기서 3장 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것을 전하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말라기의 말씀 중에 "난 너희가 오래 기다렸던 메시아를 너희에게 보내겠다"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말씀처럼 구약의 약속이 성취된 이야기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 등 신약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것들 중에서 특히 요한복음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14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에서는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의 탄생을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처럼 하늘에 별, 말구유의 아기 등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고 로고스라는 어려운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이 우주만물이 맨 처음에 창조된 것을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말씀으로 창조되는 이 우주는 인간의 잘못된 죄악으로 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하나님은 이 우주를 다시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엇으로 새롭게 이 우주를 만드는가 하면 태초의 천지를 만드신 에너지, 그것을 요한복음에는 말씀으로 표현했고, 요한1서에는 사랑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 파워, 이 에너지가 바로 이 세상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것이 바로 육신인 말구유의 작은 어린애기로 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를 새롭게 다시 창조할 그 에너지가 사람의 몸으로 화했으며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 안에 있는 에너지가 이 세상을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한 인격공동체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가 위를 향하여 그러면서도 앞으로 향하여 부단히 전진하기 시작합니다. 즉, 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이며, 앞으로 전진한다는 것은 마지막 오메가 포인트(새하늘과 새땅)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과정이며 이 사랑의 인격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항상 앞을 바라보며 , 항상 위를 보면서 우주의 해방이 완성되는 그 오메가 포인트(새 하늘과 새 땅)를 향해서 계속해서 행진해 가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은 창성교회가 세워진 바로 처음의 뜻을 담은 구절이기도 하고 교회라는 공동체가 나가야할 방향이 되기도 하는 구절입니다. 앞을 바라보는 공동체,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때까지 부단히 앞으로 나가는 그것이 올바른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는 건축물이 실체가 아닙니다. 교회의 실체는 항상 밖으로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

비둘기의 상징은 성령의 강림의 표현입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셨을 때 광야로 나갔듯이 성령을 받은 교회도 악마가 있는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빈들로 가서 그것을 물리치는 그것이 그리스도가 가신길이며, 교회는 바로 이 한국이라는 빈들에 들어가서 역사의 한가운데서 사명 받은 일을 하는 것이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이유인 것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다시한번 겸손하게 생각해야할 것은 정말 우리 교회가 이런 일을 충실하게 해왔으며 이 뜨거운 사랑의 인력권 안에서 십팔년동안 속해 있었는가에 대한 우리들의 현실을 반성해봐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요한의 말처럼 우리 교회는 에베소 교회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십팔년동안 너희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견디면서 오늘까지 열심히 해왔다. 충분히 칭찬할만하다. 그러나 너는 네가 처음 가졌던 처음 사랑을 버렸다."

바로 이 말씀처럼 우리가 모든 것이 흠이 없지만, 선량하고 지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자랑스러운 사람들이지만 처음에 가졌던 처음사랑의 파토스를 잃어버린 자들은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들을 보고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언가 생기가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후끈후끈한 열기를 사랑을 느껴야 할텐데

그러한 것이 과연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교회가 그렇게 사랑이 메마른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야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14절이하의 라오디게아교회와 같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그런 교회의 모습이 지금 우리 모습이 아닌가 우린 깊이 반성해봐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 이하의 빌라델비아 교회의 칭찬처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내 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허나님께서 우리창성교회 창립때 주신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51:1-3절입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51:1-3)

내일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는 창성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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