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8 주일설교 "원수의 축복" 민수기 23:18~22

이종명 0 1,557

2025.05.18 주일설교 "원수의 축복" 민수기 23:18~22  설교:장귀삼 담임목사

 

원수의 축복

민수기 23:18-22

18.발람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내게 자세히 들으라

19.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최근에 챗GPT 4.0으로 인물사진을 지브리풍 사진으로 바꾸는 챌린지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지브리풍이라는 것은 미래소년 코난, 빨간머리 앤과 같은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체를 말합니다. 사람이 직접 해야할 일들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공하는 ‘코파일럿’과 구글이 제공하는 ‘제미나이’가 있습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거의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찾아서 대답합니다.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주고 있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와 대화를 통해서 학습을 합니다. 인공지능은 때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답을 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지적하면 인공지능은 빠르게 사과하고 답변을 정정하거나 원하는 데이터를 찾아 줍니다. 인공지능은 답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하지 않고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거짓된 정보를 말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거짓도 데이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은 인공지능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합니다. 훈장님과 꿀단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학당에 한 훈장님이 있었는데 공부 시간 도중에 아이들 몰래 꿀을 꺼내 먹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아이가 훈장님이 슬며시 꿀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훈장님, 뭘 드시는 거예요?' 하고 묻자 훈장님은 '응, 이건 어른들만 먹는 약이란다. 애들이 먹으면 배가 아파 죽는 아주 무서운 약이야.'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훈장님이 거짓말을 하는 걸 눈치채고 몰래 벼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훈장님이 잔칫집에 가느라고 서당을 비우게 되자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벽장에 있는 꿀단지를 열고 정신없이 다 먹어 버렸습니다.정신을 차리고보니 훈장님께 혼날 생각에 모두 난감해졌습니다. 이 때 영리한 아이가 훈장님이 아끼시는 벼루를 내던져서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훈장님이 오시는 걸 보자 배가 아프다고 뒹굴뒹굴하는 척을 했습니다. 훈장님이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묻자 영리한 아이는 곧바로 “저희가 장난을 치다가 그만 벼루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래서 죽으려고 훈장님 약을 다 먹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훈장님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을 털어 놓은 아이를 용서했습니다. 이후에는 훈장님은 아이들을 속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때 한국은 OECD국가 중 사기 범죄 1위를 한 적도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한국인의 혈관에는 거짓말이 흐른다”고 풍자하기도 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민족 개조론”에 보면 “한민족이 쇠퇴의 기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으로 거짓말과 속이는 일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거짓말이 성립하려면 속이는 자도 있지만 속는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속은 놈이 잘못이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하멜이 남긴 “하멜표류기”에 보면 “조선인은 남을 속이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잘한 일로 여긴다”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성경은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로마서 3장 10절로 15절에서 말씀합니다.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스스로 저주를 받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람들은 “속는 놈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저주와 독한 말들을 쏟아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짓과 불의가 가득한 우리를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 증거가 아브라함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삶의 소망이 모두 끊어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셔서 소망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만에 언약의 자손을 얻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만에 가나안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선택의 결과로 저주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알지 못합니다. 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8:11-12] 11.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12.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이 하나님의 선택이 또 다른 선택을 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하여 그의 외아들이 저주를 받아 죽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셨습니다. 이것이 “나는 곧 나를 위하여 우리의 허물을 도말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겠다”고 하신 참 뜻입니다.

 

이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여리고 성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자기 땅에 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큰 딸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들인데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은 이스라엘이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영적인 일을 영적인 일로 풀 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서 선지자 발람을 불렀습니다.

이 발람이 거짓 선지자인데 그는 욕심을 위해서 선지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전 이 본문을 읽으면서 크게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세를 부르셨을 때도 하시지 않았던 말씀을 거짓 선지자인 발람에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강력하게 선포하시고 이스라엘을 축복하셨습니다. 먼저 민수기 23:8-10의 말씀입니다. 8.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이 여러 동일한 것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택함을 받지 못한 것을 불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장자의 명분과 십의 일조가 무엇인지 알면 하나님의 선택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요, 의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요 하나님의 복입니다. 발락의 저주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자기에게서 온 것입니다. 발락을 포함한 그 누구도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저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발락은 이것을 상황이나 장소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을 비스가 산으로 데려가서 저주하라고 시킵니다. 발람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시 축복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8.발람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내게 자세히 들으라 19.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20.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 21.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의 힘이 들소와 같도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너무나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23장 19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기 후회가 없으시도다” 거짓말과 후회를 기초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발락과 발람이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 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결코 거짓이나 후회가 없으신 완전한 길임을 믿게 됩니다. 우리는 원수들의 저주와 속임 가운데서도 진리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진리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은 원수들을 통해서 우리를 축복해 주십니다. [요한1서 1:6-10]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들이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는데 그 이유가 이사야 43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그 목적 부분인 8절과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사야 43:8-11] 8.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9.열방은 모였으며 민족들이 회집하였는데 그들 중에 누가 이 일을 알려 주며 이전 일들을 우리에게 들려 주겠느냐 그들이 그들의 증인을 세워서 자기들의 옳음을 나타내고 듣는 자들이 옳다고 말하게 하여 보라 10..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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