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3월24일 종려주일 설교 말씀

정은아 0 4,770

종려 주일

막 11:1-10. (마태21:1-11 누가19:28-40 요한12:12-19)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선교하기 위해 배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노예 시장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흑인 모자가 경매에 붙여졌는데, 어린아이는 필요 없고, 어머니만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서 어머니만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만 두 모자는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두 사람 몫의 일을 자기가 하겠으니 어린 아들을 함께 데려가 달라고 새 주인에게 호소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두 모자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두 모자를 강제로 떼려하나 말을 듣지 않자 주인이 칼을 들어 어린아이를 향해 내리 찔렀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자신의 손으로 그 칼을 막아 아이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후한 값에 두 모자를 샀습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흑인 모자는 이곳에서는 언제 또다시 잡혀 노예가 될지 모르니 선교사를 따라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가 선교사님께 은혜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함께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선교사역을 잘 감당했다고 합니다.

아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자유를 주신 선교사가 고마웠습니다.

흑인 모자는 선교사님의 손발이 되어 아프리카의 선교사역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흑인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화도 내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선교사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아이를 살리려 대신 칼을 맞았던 그 손의 흉터를 보여주면 그 흑인은 잘못했노라고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소경 바디메오를 고치시고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려고 벳바게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베다니와 벳바게 근처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 두 사람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어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이 말씀을 듣고 갔더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귀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예언 구약 스가랴서 9;9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감람산(Olive Mount) 정상에서 베다니 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에 가면 벳바게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 종려주일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념교회 안에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입성한 시작 지점을 알리는 기념의 돌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나귀새끼를 드린 이름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벳바게는 이웃 동네 베다니에 사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그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을 마중하러 나왔던 동네이다. 이 동네에 이름 없는 사람이 그의 나귀 새끼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주님이 쓰신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동네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또한 나귀와 새끼를 가지고 있었지만 오직 주님께 바친 사람은 이름 없는 한사람이었습니다. 익명의 성도가 드린 귀중한 성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는 큰 재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쓰신다니 기꺼이 바쳤습니다. 벳세다 광야의 기적 오병이어의 어린아이처럼 이름도 없이 바쳤습니다. 만약에 그의 이름이 알려졌으면 후대의 사람들이 성지로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음으로서 은혜가 됩니다. ‘주님께 순종한 믿음의 사람’

이것이 종려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2. 자신의 겉옷을 길에다 깔아 드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의 행차 때에 비단을 깔아서 환영하는 예식을 행합니다.

그것은 최고의 예우의 접대의 표현입니다. 왕의 행차의 극진한 예절의 표현입니다.

외국 사절이나 국빈이 그 나라를 방문하면 현대는 카펫을 깔아서 환영합니다. 그리고 군악대를 동원하여 음악을 연주합니다. 이런 것들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본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의복을 중요시 여겨서 옷이 날개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사실 의복은 사람을 과장되게 하기도 하며 왜소하게 보이게도 합니다. 또한 의복은 정중한 예의를 갖추는데 꼭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 귀중한 의복을 벗어서 길에다 깔아드리는 모습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주님을 위해 쓰고 있는 현장입니다.

주님께 자신의 겉옷을 길에다 깔아 드렸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그 위를 걸으면서 백성들의 희생을 눈으로 보셨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겉옷을 기꺼이 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환호하는 군중이 있었습니다.

왕의 행차에 환영하는 무리들의 모습입니다. 겉옷을 벗어 드리는 무리와 왕의 행차에 길가의 가로수를 꺾어 흔들며 환호하는 군중이 있었습니다. 겉옷을 벗어 깔아 드리는 무리는 적어도 됩니다. 그러나 환영하는 인파들의 무리들은 많았습니다. 모두가 환영했습니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스가랴 9:9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겸손한 왕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심을 환영했습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약1:17).

믿음은 바라는 바 소망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준비하였고 히브리서11:1에도 믿음은 소망으로 묘사하여 주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도 왜 의심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십니다.(약5:13) 믿습니까?

말씀대로 믿고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역사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봉사는 하나님 앞에서 나와 주님과의 관계로 맺어진 충성의 표현입니다. 이 충성의 표현이 확실해야 합니다.

4.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송하며 예수님과 동행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환영했습니다. 종려나무의 가지가 없는 사람도 주님께 드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양이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한 12:13)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든지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이 빈손 입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많은 물품과 양식을 갖게 되고 누구든지 넉넉한 부자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겠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편 사람처럼 ‘여기 있습니다.’ 하면서 열심히 드리기 바랍니다.

성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섬기는 제단에 성도의 마음이 와 있어야 합니다. 제단에 헌금하며 드리는 것은 하늘나라에 저축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거기는 도적도 좀도 없는 한결같은 곳입니다. 주가 쓰시고자 할 때 언제든지 ‘아멘’ 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며 따르는 순종 앞에 언제나 하나님의 복이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에게 무엇이 있는지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아봅시다.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았다면 주가 쓰실 수 있도록 드려야합니다.

제자들은 그들의 겉옷을 벗어 나귀의 안장으로 대신해 드렸습니다.

제일 먼저 옷을 벗어 안장을 해 드렸습니다.

우리도 오늘 이 시간에 나의 믿음의 옷을 벗어 주님께 드립시다.

할렐루야!

종려주일은 싹이 돋고 꽃이 피는 따뜻한 봄의 절기에 옵니다.

한 폭의 화초라도 하나님께 드립시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아브라함도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함으로 인해 아브라함은 오늘까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숨은 봉사자, 희생하는 자, 이름 없이 충성하는 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오늘도 아무 말 없이 나귀 새끼를 드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 길에 겉옷을 깔아드리는 수고와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환영하는 인파와 길가에서 호산나로 찬양하는 수고자에게 예수님이 환영을 받으셨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으로 주님께 환영 할까요?

이제 2000년 전 무리들의 호산나 찬양처럼 우리도 이 시간 다같이 “호산나”로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참고 자료>

벳바게 기념교회 전경

벳바게교회 안에 성화

예수님 나귀 타고 출발하신 지점의 기념돌

벳바게교회 앞에서 종려주일 출발식

현대의 종려주일 행렬

현대의 나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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