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5일 주일 낮 설교 <제목: "아기 예수님은 오셨는데" 마태2:1-8>

정은아 0 4,648

제목: 아기 예수님은 탄생 하셨는데

본문: 마태복음 2장1-8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북쪽 저 이북 땅에서 조카가 고모부를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절대권력 앞에서는 그 누구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30세의 조카가 70세 고령의 고모부를 총으로 처형을 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일생동안 나라를 위한 충성을 바쳤는데 결과는 역적으로 몰리어 일생을 마쳤습니다. 이 비극적인 실수가 성탄을 맞이했던 팔레스틴 땅에도 일어났습니다.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땅에 오셨지만 이 사건의 엄청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 분을 만날 수 있었던 특권을 잃어 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땅을 통지하고 있던 헤롯왕은 메시야가 유대 땅에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마태 2장 1-2절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이들이 말하는 유대인의 왕은 보통 왕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약속된 메시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메시아, 내 삶의 모든 문제의 대답이 되고 생명의 주가 되는 그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방에서부터 찾아온 이 박사들은 유대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그 나라의 최고 책임자 왕에게 '만왕의 왕이 오셨다는데 그 분이 어디에 탄생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7-8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헤롯왕도 그 분이 경배 받아야 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내가 왕인데'라는 의식이 그를 불쾌하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헤롯이 나중에 어떻게 했어요?

16절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사람을 죽이는 칼을 가지고 성탄을 맞이하려 했던 이 헤롯의 오류는 과거의 이야기만을 아닙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그 분을 경배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헤롯이 그 아기가 메시아인 것과 그 분에게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며 음모를 꾸몄던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때문에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을 거절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일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굉장한 일로 생각합니다. 헌금하는 것은 재물의 낭비로 여깁니다. 아내가 예수 믿으면 아내를 예수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런 남편은 예수님을 자기의 경쟁자로 생각해서 아내가 예수를 열심히 믿지 못하도록 눈에 불을 켜고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헤롯왕과 같은 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왕의 이기심과 꼭 갈은 마음 때문에 오늘도 그리스도는 만나지 못하고 예배당 문턱만 드나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발 교회에 가더라도 미치지만 말아라. 적당하게만 믿어 달라는 부탁도 합니다. 예수 너무 열심히 믿으면 손해 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도 재물도 양보하지 않은 채 일주일에 한번 예배당에 나오시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 헤롯왕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이기심의 정체를 주목하고 헤롯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 당시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서기관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4절을 보세요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무슨 말입니까? 구약 미가서 5장2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헤롯대왕이시여, 미가서에 의하면 메시아는 틀림없이 우리 유대 땅 저 베들레헴에 탄생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서기관들은 성경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정확하게 예수님 나신 곳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의 나심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 가운데는 서기관과 제사장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소위 기독교적인 지식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아는 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나신 곳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까지 찾아갈 수 있는 발이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님 앞에 내 놓을 수 있는 손이 없었습니다.

손도 없고 발도 없고 머리만 있는 단순한 지식 뿐. 이것이 서기관들의 비극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많습니다.

야고보 2장 19절 말씀을 들어보세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의 믿음은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다는 것까지 귀신도 압니다. 그러나 이 귀신이 하나님 앞에 항복합니까? 아닙니다. 신앙은 항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배는 말하자면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항복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알기는 알지만 예배가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항복이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고백이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봉사가 없는 사람, 알기는 알지만 섬김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그런 믿음은 귀신들도 갖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아는 성경의 지식을 나의 삶 속에 적용할 수가 없는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전혀 의미가 없이 죽은 것입니다.

그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겠습니까? 물론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와 자세를 가지고 말씀을 배워 알아야 합니다.

'주여 말씀 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제가 뉘게로 가오리까?'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알기는 알았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했던 그 당시 종교인들의 비극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을 보십시오. 누가복음 2장 7절에 보면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 이러라.' 했습니다.

그 당시 베들레헴에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에 의해서 호적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여관마다 만원이 되어 마리아와 요셉은 방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짐승들의 먹이통 구유에 낳게 되었습니다. 다른 손님 맞기에 바빠서 여관 주인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시는 예수님을 가까이 있으면서도 맞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관 주인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 바빠서 그랬습니다. 정신없이 많은 손님들이 갑자기 밀어닥치니까,

더구나 권력 있는 손님, 돈 많은 손님맞이하느라 정신이 없어 바쁘다보니 정말 귀한 손님이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셨는데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가운데는 이런 형편에 있는 분이 안 계십니까? 그저 먹고 사느라고 바빠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일에 바빠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비극이 바로 여관 주인의 비극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그 순간, 내 목숨 이 영원을 향해 떠나는 그 순간, 돈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권력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세상에 도취되어서 더 중요 한 일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들은 개인적인 사소한 일 때문에 바빠서 더 중요한 사건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 주 예수를 통해서 구속의 감격을 몰랐던 사람들, 주님 안에서 사는 새 생명의 기쁨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삶올 놓쳤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첫번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던 비극의 주인공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내가 무슨 손해를 본다고 생각해서 주님께 나 자신을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알 것은 다 알면서도 그 이상은 행동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닙니까? 우리는 베들레헴 여관주인처럼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아두고도 일상적인 삶에 대한 관심 때문에 주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별 의미가 없는 하나의 공휴일로만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것이 좀 부족해도 우리는 주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을 전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원합니다.

머리는 있어도 베들레헴에 찾아 갈 손과 발이 없었던 서기관의 비극이 우리의 비극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세상에 오신 성탄절을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설레임으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합시다.

여러분 빈방 있습니까? 아기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빈방을 준비하셨습니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