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16일 주일설교 <부스러기 은혜>

정은아 0 5,108

부스러기 은혜

마가복음 7:24-30절 (마태 15:21-28)

미국 L.A에서 갈보리 교회 척 스미스 목사님이 목회를 시작할 때 그 당시 히피들이 미국 전역에 퍼져있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히피들을 싫어했습니다. 특히 교회들은 히피들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교회에 히피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그때 척 스미스 목사님은 교회에서 히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롱비치 해변에 가서 히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을 교회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변화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히피들은 노래에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은혜 받고 찬양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든 찬양을 마라나타라 합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복음송입니다. 그들이 만든 복음 송 중에 유명한 찬양이 있습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라는 찬양입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

곧 주위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

주님의 사랑 이 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
작은 불꽃 무엇을 상징합니까? 마리화나 담배를 핀 불꽃 그 조그마한 불꽃들을 상징합니다. 이런 작은 불꽃들이, 정말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망치게 했던 불꽃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니까, 그 작은 불꽃이 큰 불꽃이 되고, 또 모여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녹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 생깁니까? 아니면 모태 신앙인들이 갖는 것입니까? 모태신앙이란 바로 기도도 못해, 봉사도 못해, 전도도 못해, 손해 보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모태신앙인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못하면 잘못된 신앙인이 되기가 쉽습니다.우리에게 정말 좋은 신앙이란 어떤 신앙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어떤 믿음을 보고 기뻐하셨나요? 교회에 오래 다니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아니면 교회에서 직분 가진 것을 좋아하실까요?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주님이 축복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요?오늘 성경은 수로보니게 여인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나안 족속은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고 있는 족속입니다. 이 여인이 바로 그런 여인입니다.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헬라인이라는 말은 헬라 종교 전통을 강하게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잡다한 우상과 문화에 젖어있는 환경 속에 살았던 여인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의학으로도 풀 수 없는 고통스러운 문제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딸이 귀신들려서 이리 넘어지고 저리 넘어지고 미친 사람처럼 방황합니다. 그 어머니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정말 감당키 어려운 기가 막힌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여인이 살던 두로라는 마을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께 찾아갔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나이다."

마태복음 15장 22절에서는 소리를 질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귀신을 쫓아 주거나 병 고침 받기를 원해서 온 사람들에게 이제까지 침묵을 하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 대해서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이 가나안 여인이 계속 소리를 지르니까 침묵하시다가 하시는 말씀이 "나는 이스라엘의 일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하셨습니다.

못 고쳐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어떤 경우든지 병든 자는 거절하지 않고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 만큼은 안돼 하시는 것입니다.그래도 이 여인은 포기 하지 않고 예수님이 계시는 집안까지 들어와 그 발아래 엎드려 간구합니다. 제 딸을 고쳐주십시오. 제 딸을 살려주십시오. 애절하게 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한 마디 하시는데 그 말씀이 더 충격적입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주님은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여인에게 “개에게 자녀의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녀란 유대인을 말하겠지요. 개란 이 여인과 같은 이방인을 말하겠지요. 내 백성에게 줄 것을 빼앗아 개와 같은 이방인인 너에게 줄 수 없어 그러시는 것입니다.

주님 옳습니다. 저 개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저에게 그 부수러기라도 주십시오. 저 어떻게 취급해 주셔도 좋아요. 단지 주님의 조그마한 은혜만 주시면 됩니다. 그 은혜를 주세요. 예수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 여자의 믿음이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진 것입니다. 그렇게 무시를 당하는데도 이 여인은 화를 내거나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옳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의 말속에서 진정한 믿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여인은 구원 밖에 있었던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었던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유대인들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간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믿음입니까?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1. 흔들리지 않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한 가지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감수했습니다. 심지어 이 여인이 개처럼 취급당하는 수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예수님에게로 갔다가 안되면 다른 곳으로 가겠다 그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 결정을 지어야 하겠다, 예수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이것이 이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들에게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들의 인생을 다 한가지로 향하여 달려갔다는 점입니다. 할 길로 가는 믿음, 이것을 주님이 귀히 여기십니다. 인생에는 분명히 한 가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지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여인에게는 오직 한 가지 목표만 있었습니다. 내 딸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이 여인은 지금 한 가지만 가지고 나갔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빵이냐 부스러기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사오정과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오정을 우리는 무시하지만 정말 때론 우리들에게 사오정과 같은 우직함이 있어야합니다.

어느 날 사오정이 양식집, 레스토랑에 갔습니다. 주인이 와서 주문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사오정이 주문을 합니다. "여기 돈가스와 우유주세요." 주인이 말합니다. "돈가스는 없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돈가스와 커피주세요" 아니 돈가스가 없다니까요! 주인이 화가 나지만 젊잖게 말합니다. “손님 저희 가게는 돈가스는 팔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오정이 무어라 했는지 아십니까? "아 예 알았어요. 그러면 돈가스만 주세요." “손님 돈가스는 없다니까요?” 사오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가스는 빼고 돈만 주세요.” 집요하게 자기의 메뉴만 고집하는 우직함, 이것이 우리 믿음 생활에 필요합니다.

2.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여인은 간구를 하고 예수님은 거절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병자들은 바로 치료하셨는데 이 여인에게 모욕을 하면서 거절하셨습니다. "자녀의 빵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이 여인을 개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 아닐까요? 즉 테스트를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이 정말 얼마만한 믿음을 가졌느냐? 나를 얼마만큼 바라보느냐, 나에게 얼마만큼 간구하느냐? 이것을 보신 것입니다.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는 사건 앞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가? 어떻게 대응하시겠어요? 짜증을 부리겠어요? 불평을 하겠어요? 화를 내겠어요? 예수님을 떠나겠어요?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거절하는 사건 앞에 주여 부스러기라도 좋사오니 하였습니다. 큰 것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은혜라도 좋다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반응을 하십니다. 너 합격했다. 이 여인은 예수님 고시에 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치룬 믿음고시에 당당히 합격하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15장28절에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귀한 믿음은 시험에 합격하는 믿음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 넘어지지 않는 믿음, 유혹이 와도 넘어지지 않는 믿음 그런 믿음을 주님은 귀히 보셨습니다.

3. 주님의 말씀에 매달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보면서 자존심도 없지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보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여인은 자존심을 내세우기 전에 이미 주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 이방인입니다. 당신들이 개처럼 취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기를 우리들에게도 구원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먼저는 유대인이지만 그 다음에는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잖습니까? 먼저는 이스라엘이에요.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 다음에는 이방인이 나도 포함되지 않아요. 저는 지금 이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자녀의 빵이 아니라 자녀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에게 주십시오."

이것을 주님이 귀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분들, 그 말씀대로 하면 내게 손해가 있다고 할지라도, 내가 적은 것을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를 주님은 귀히 여기십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은혜 받는 사람들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 은혜 받는 사람들은 먼저 말씀을 붙듭니다. 말씀에 대한 애정, 말씀에 대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은혜 받는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말씀과 나와 거리,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 이 말씀을 대할 때마다 얼마가 감격하고 감동하는가? 이 차이입니다. 말씀과 나의 거리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거리이다. 이것이 은혜를 판단하는 근거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붙들고 주 앞에 엎드립니다. 이렇게 간구하는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왜 부스러기를 주시겠어요.

이 여인에게 명령하십니다. "여자여 돌아가라 네 믿음이 크도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할렐루야 ~~ 끈질긴 어미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도 이런 놀라운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 되로 되리라” 여러분들의 소원이 응답받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시험이 와도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는 분들에게 이런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넘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주여 내게 부스러기라도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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