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4일 설교말씀

정은아 0 3,846

제목: 신비한 연못

본문: 요한복음 5:1-11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도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예루살렘 동북 편에 위치한 양문이라는 문이 있는데 그 양문 곁에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양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양을 사고팔고 하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이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은혜의 집, 자비의 집, 사랑의 집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베데스다 연못은 신비하게 가끔씩 천사가 내려와 연못의 물을 움직일 때 어떤 병이든지 관계가 없이 제일 먼저 들어가면 모두 낫는 곳이었습니다. l888년 허세크라는 사람이 이 연못을 다시 발견함과 동시에 연못 옆에는 4세기에 지었던 마리아 프로바이카라는 회당이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38년 된 환자를 고치는 장면많은 환자를 고치는 모습을 담은 벽화가 퇴색이 되었지만 아직 남아 있어 찾아가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베데스다 말씀을 생각할 때 첫째로 본문에 보면 베데스다의 연못가에 많은 환자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특별히 앞 못 보는 소경이 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당시에도 소경들이 많았나 봅니다. 예수님 당시엔 수목이 없고 요단강과 갈릴리 호수 근처를 제외한 모든 곳이 메마른 광야였습니다. 따라서 바람이 불면 황토와 황진이 날려 눈병을 많이 앓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나면서 소경인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눈병을 앓아서 소경된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앞을 볼 수없는 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 소경된 사람들이 베데스다 연못에 많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병이든 고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 곁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습니다.

이 행각이 어떤 집이냐 하면 잘 지은 건물이 아니라 뜨거운 유대 지방의 해를 피해 긴 여행을 하던 사람이 잠시 쉬어 가도록 지었는데. 그 곳에는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다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그 밖에까지 있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곳에는 이처럼 많은 환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 소경이 많았다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를 데리고 한번은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내려오는 얘기에 의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는 말씀이 '자, 오늘 높은 산에 을라가 기도를 하게 되면 가다가 허리가 아프고 흑은 힘이 들면 좀 앉기도 하고 쉬면서 가게 될텐데 너희들이 앉을 만한 크고 반들반들한 돌을 하나씩 가지고 올라가자.' 그러자 제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감람산에 올라가도 돌은 있을 텐데 왜 밑에서부터 힘들게 가지고 올라가야 하나 했지만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했습니다. 그래서 앉을 수 있는 돌을 골라 땀을 흘리면서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룟 유다는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산꼭대기에 돌을 가지고 올라가자고 하나, 산꼭대기에 돌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리고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조그만 돌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돌을 주웠어요. 중턱쯤 가다가 제자들이 힘들어하자 '이제는 좀 쉬었다 가자. 너희들이 가져온 돌을 다 땅에 내려놓고 앉아 쉬어라.' 다른 제자들은 크고 편편한 돌을 가져왔으니 얼마나 편할까요? 그런데 가룟 유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돌을 꺼내 땅에 놓고 그 위에 앉으려니 엉덩이가 아파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그냥 서 있었겠죠? 그것을 보고 다른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예수님도 '내 말 듣지 않고 저 편하려고 하다가 저렇게 앉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다시 제자를 데리고 감람산 꼭대기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 올라가서 보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음식 때가 지나고 허기가 지고 배가 고팠습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가지고 올라온 돌을 빵으로 변화시켜 그 빵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만 가룟 유다는 조그마한 돌로 만든 빵을 먹어 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손해는 가룟 유다만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사실인지 지어낸 얘긴지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38년의 병든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 외롭게 투병하면서 막연한 기대 속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놓은 은혜에 자리에 가까이 와 있지만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도움을 받지 못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비의 은총 무슨 병이든지 어떤 병이든지 이 물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 됩니다.

신비한 일입니다. 그러나 언제 천사가 내려와서 이 물을 움직이게 할 것인지 그 시간을 알지 못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병원 저 병원 유명한 병원 다 찾아 가보고 좋다는 보약은 다 먹어보고 건강식품 보조식품 운동 열심히 하고 몸에 좋다는 약 다 먹어보지만 그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속에도 5:3절의 말씀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은총을 받아야 합니다. 유독 38년 된 환자에게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섯 정자에 모여 있는 수많은 병자들을 다 고쳐주시면 더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 베데스다야 이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움직여라. 제자들에게 자 자 모두들 이 사람들을 도와주라 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유독 가장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린 사람에게만 고쳐주셨습니다. 왜 일까요? 그 사람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38년을 기다림 고침의 38년을 포기하지 않고 죽을 때 변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을 예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에 이미 이 베데스다 연못에 고침을 받기 위해 기다림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나이는 이제 33살입니다. 이 땅에 오시기 5년 전부터 이곳에 머문 이 사람에게 오늘 베데스다에 오신 목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의 선택을 이 병자는 받았습니다. 오늘 현실에도 병원에서 병 고침을 많은 사람들이 받습니다만

가끔씩은 주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제 치료의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출애굽기 15:26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오늘 예수님이 우리가운데 오셔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96장 찬송입니다. 우리 믿음으로 다같이 찬송합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임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2.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 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 하실 주님 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분부대로, 맡겨 오신 그 직책대로 정성을 다하고 그 말씀을 순종해서 명령하시는 대로 한다면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과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으로 저울질을 해 가지고 사람의 생각에 맞추면 예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것 다 피해서 나가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놓치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혈기가 마른, 믿음이 메마르고, 성령이 메마른, 은혜가 메마른 사람이 다 베데스다 연못에 와서 고침을 받았던 것처럼 모두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와 은혜 받고 성령님의 힘을 얻어서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에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예수님은 아십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38년 오래된 환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이 환자에게 예수님이 질문 하셨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치료 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치료받을 각오가 있느냐 치료받을 믿음이 있느냐? 건강한 후에 무엇을 하려느냐?

이 말씀에 병자는 자기의 형편을 주님께 말을 했습니다. "네, 제가 낫기를 원해 이렇게 오랫동안 연못가에 와 있지만 천사를 통해 연못가에 들어가려 하나 나보다 먼저 들어가는 이가 있어 난 여태껏 고침 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만일 그 병자가 '예수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걸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 한 마디로 제가 나를 수 있을 것 같습니까?'라고 불순종을 했다면 아마 낫지 못했을 겁니다, 여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결단의 믿음과 신속한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용감한 결단력에는 말씀에 대한 신뢰성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9절 말씀입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자 그렇다면 38년 병자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다면 나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도 건강할 수가 있다. 나도 걸을 수가 있다.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가능하고 나를 찾아주시면 가능하고 내가 예수님을 찾으면 가능합니다. 삭게오처럼 백부장처럼 스보로보니게 여인처럼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 모두 이 시간에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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