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새다 2017.03.26.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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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벳새다

분문: 마가복음 8:22-26

 

런던 타임스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1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아이’,

2아기의 목욕을 다 시키고 난 어머니’,

3세밀한 공예품을 만족스럽게 완성하고 휘파람을 부는 목공’,

4어려운 수술을 성공하고 막 한 생명을 구한 의사였습니다.

행복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우리는 행복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삽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은 혹시 우리가 너무 먼 곳에서 또는 틀린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가깝고도 정확한 주소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사물을 보는 것은 사람의 눈이나 짐승의 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보는 것은 똑 같지만 그러나 사람은 짐승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의 눈은 세 가지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물질의 세계를 봅니다.

산을 보고 강을 보고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고 땅을 봅니다. 사람을 보고 물건도 봅니다. 이것은 짐승도 똑 같이 봅니다.

둘째는 정신의 세계를 봅니다. 인간들만이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또한 가치를 추구 합니다. 인간은 음악을 듣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연극을 봅니다. 의학과 기술과 학문과 철학을 연구합니다.

셋째는 신령한 영적세계를 봅니다. 짐승의 눈은 먹이를 보고 짝을 보고 적을 볼 수 있지만 신령한 영적세계는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이 신령한 눈이 있어서 영원한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영원한 세계가 무엇이냐? 고대인들은 막연하게 이세상과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세상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준비했는지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영원한 세상이 있다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애굽 이집트에 가보면 수많은 귀족들과 역대 왕들의 무덤이 널려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피라밋입니다. 카이로를 중심해서 주변에 93개의 피라밋이 있습니다. 큰 것은 높이가 143미터 넓이가 230미터나 됩니다. 평면 면적이 15,800평정도 인데 24년간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죽은 한 사람의 왕의 시체를 넣어두기 위한 무덤 치고는 너무 방대합니다. 이집트 왕들의 역사를 보면 살아있는 기간을 짧았습니다. 그러나 사후의 세계는 길고 영원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피라밋과 같은 대형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온갖 보화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시체가 썩지 않고 영원히 남기기 위해 미이라를 만들었습니다. 이집트 귀족이나 왕들은 40일 동안 미이라를 만들고 장례식은 30일 동안 계속했습니다. 합하면 자그마치 70일장이 됩니다.

창세기 501-3절 요셉이 총리로 있던 시절에 아버지 야곱이 죽자 이집트의 귀족이라 70일 동안 장례식을 마치는 기록이 있습니다.

? 미이라를 만들고 피라밋을 만들어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영원한 세계를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벳새다 지방이 나옵니다. 갈릴리 호수의 한 지역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들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었습니다. 여기에서 5,000명을 먹이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고장입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사물을 보지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치료하시는데 다른 때와 전연 다르게 고치셨습니다. 이 본문 속에서 그 고치시는 과정을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합니다.

 

1.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4번의 맹인을 고치시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태 9:27-31을 보면 본 동네(가버나움)에서 두 사람의 맹인을 고치시는 기록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을 만지시고 믿음대로 되리라 하시자 그들의 눈이 즉시로 밝아졌습니다. 마가 10:46-52여리고에 사는 맹인 바디메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상히 여기소서.” “네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으로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요한 9:1-7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침을 뱉어 진흙에 이겨 그의 눈에 바르면서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 이에 가서 씻었더니 밝은 눈으로 돌아왔더라. 이 기사를 보면 고치시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오늘 본문 마가 8:22-26에서는 벳새다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한사람을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안수해 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손을 붙잡으시고 다짜고짜 마을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고쳐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함께 가시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고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어느 한 가지라도 거역하거나 불순종하면 안 됩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시자는 주님의 손에 이끌려 힘들어도 따라 나서야합니다. 내 기분에 맞지 않아도 따라가야 합니다. 이 순종이 있어야 내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손에 이끌리는 순종을 보십니다. 눈을 뜨지 못한 상태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그냥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따라가는 순종을 보시고자 하심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보지 못하는 눈으로 믿음으로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주님을 따라 오는 것을 보고자 하십니다.

 

2.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주님의 손에 이끌려 동네 밖으로 나왔으면 그냥 고쳐주시지 야속하게도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침이란 자기 입안에 있을 때는 꼭 필요한 액체입니다. 입안으로 들어온 음식물을 먹을 때 분비되고 소화제 구실을 해줍니다. 침은 음식의 맛을 내게 하고 음식물을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침샘이 마르거나 막히면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침은 치료제 구실도 합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연고 없고 고약이 귀했을 때 침을 발라주고 다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침이 입 밖으로 나오면 추해집니다. 한마디로 더럽습니다. 뱉으면 상대방에게 심한 모독을 줍니다. 자기 얼굴에 침을 뱉으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맹인에게 침을 뱉으신 것은 이 사람의 두 번째 믿음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침을 뱉든지 침으로 진흙을 이겨 바르든지 물로 씻든지 예수님의 방법에 순종하고 그 뜻을 받아드리는 믿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제가 새벽기도 오다가 미끄려져 갈비뼈에 골절이 약간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쁩니다. 어떤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의 시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 사명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교회가 볼 것입니다.

벳새다 맹인 이 사람이 만약에 그 때 예수님께 여보세요 예수 선생 앞 못 보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얕잡아 보는 거요? 아니 더러운 침을 내 눈에 뱉어하고 예수님의 멱살을 잡았다면 그는 한평생 맹인으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을 밖에도 따라 가고 침을 뱉어도 순순히 응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심한 멸시와 무시를 참아냈습니다. 응답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3, 안수 하셨습니다.

드디어 23절에 그에게 안수하시고 믿음의 순종은 아름답습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불순종한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불순종이 죄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종을 세우실 때 안수하시고 질병을 치료하실 때 안수 하시고 축복하실 때 안수하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실 때도 안수 하셨습니다. 이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안수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안수 받을 조건이 충족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자고 끌려왔어도 어디가십니까? 왜 이렇게 하십니까?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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