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1-8
벧엘로 돌아온 아브람
13:1 아브람은 자기 아내와 모든 소유물을 갖고 이집트를 떠나 네게브로 올라갔습니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했습니다.
13:2 아브람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이 아주 많았습니다.
13:3 그는 네게브를 떠나서 계속 여행을 해 벧엘에 이르러 자신이 전에 장막을 쳤던 벧엘과 아이 사이의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13:4 그곳은 그가 전에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아브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롯과 헤어지는 아브람
13:5 한편 아브람과 함께 다니던 롯에게도 양과 가축과 장막들이 따로 있었습니다.
13:6 그들이 함께 머물기에는 그 땅이 너무 좁았습니다. 그들이 함께 지내기에는 그들이 가진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13:7 아브람의 양치기들과 롯의 양치기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13:8 아브람이 롯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척이므로 너와 나 사이에, 네 양치기와 내 양치기 사이에 더 이상 싸움이 없도록 하자.
13:9 온 땅이 네 앞에 있지 않느냐? 나를 떠나거라. 만약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3:10 롯이 눈을 들어 요단의 온 들판을 보니 그곳은 소알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여호와의 동산이나 이집트 땅 같았습니다. 이때는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 전이었습니다.
13:11 롯은 요단의 온 들판을 선택해 동쪽으로 갔습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헤어졌습니다.
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정착했고 롯은 평원의 성들에 정착해 소돔 가까이에 장막을 쳤습니다.
13:13 그런데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서 아주 악한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있는 곳에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13:15 네가 보는 이 온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주겠다.
13:16 그리고 내가 네 자손을 땅의 먼지와 같이 되게 하겠다. 먼지를 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네 자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13:17 일어나 이 땅을 동서남북으로 누비며 다녀 보아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겠다.”
13:18 그리하여 아브람은 자기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큰 나무 숲에 살았으며 거기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묵상나눔
사래는 아브라의 이복동생이었다는 사실이 창세기 20장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부부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날부터 사래가 아브람의 동생이라고 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부부를 동생이라고 속이는 것이 죽지 않는, 아브람이 베푸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두려움을 피하는 아브람의 은혜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를 남매에서 부부로 확실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애굽왕 바로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욱 부유하게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시 돌아온 장소는 전에 머물렀던 벧엘과 아이 사이입니다. 성경에서는 벧엘로부터 이 장소를 언급합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다고 말합니다. 분명 말씀에 의하면 제단을 처음 쌓은 곳은 세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벧엘에서 처음 제단을 쌓았다고 말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에 있습니다. 세겜에서는 단을 쌓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즉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불렀다는 말 카라는 하나님을 구하는 인간의 요청을 뜻합니다. 이 요청은 나의 죄와 허물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즉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애굽에서 얻은 많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조카 롯에게도 많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가 함께 있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함께 가나안에 왔던 조카에게는 불행이 되었습니다. 소유로 인해서 두 집안에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소유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자 아브람은 서로의 거기를 멀리 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시편 103: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딱 그렇게 서로의 거리를 멀리 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제안이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조카에서 동편과 우편을 선택하는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롯의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이 보니 요단의 온 들판이 소알까지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이나 이집트 땅 같았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동산은 4개의 강이 흐르는 땅이었고, 이집트는 일찍부터 농사가 잘 되는 땅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롯처럼 선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과 거리를 두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악한 죄를 짓는 소돔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습니다.롯의 선택 안에 점점 더 소돔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불신앙의 문제가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조카 롯이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한 번 언약을 주십니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이 온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롯의 선택지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동서남북과, 땅의 먼지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도 언약을 지닌채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나무 숲에 살면서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람은 항상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장소에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선택지를 통해 롯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쫓아갔고, 아브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을 쫓아갔습니다. 롯의 선택은 분명 합리적이고 좋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아브람의 선택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가 좋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내 선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르는 것 즉 영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배합니다. 찬양합니다. 주님만 홀로 높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