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11월 2일 흑역사 마주하기

짱목사 0 380

창세기 42:18-25

감옥에 갇힌 형제들

42:18 3일 만에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너희가 살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42:19 너희가 만약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너희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여기 감옥에 남고 나머지는 흉년 때문에 굶고 있는 너희 집안 식구들을 위해 곡식을 갖고 돌아가라.

42:20 그러나 너희는 막내를 내게 데려와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 말이 진실이라는 게 증명되고 너희가 죽지 않게 될 것이다.” 형제들은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요셉을 떠올리는 형제들

42:21 형제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우리 동생 때문에 벌을 받고 있구나.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또 그가 목숨을 구해 달라고 우리에게 사정을 할 때 듣지 않아서 우리가 이런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42:22 르우벤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그의 피 값을 치르게 됐다.”

42:23 그들 사이에는 통역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요셉이 자신들의 말을 알아듣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42:24 요셉은 형들에게서 물러나와 울었습니다. 그러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에게 말하고 형제들 가운데 시므온을 골라내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묶었습니다.

42:25 요셉은 종들을 시켜 형제들의 자루를 곡식으로 채우되 각 사람의 돈을 각자의 자루에 도로 넣어 주며 여행에 필요한 음식들도 따로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묵상 나눔

  요셉의 형제들은 정탐꾼으로 오해를 받고 감옥에 3일동안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불행을 당하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게 됩니다. 3일 뒤에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둘째, 너희가 정직하다면 형제 하나를 여기에 두어라. 셋째, 그리고 나머지는 곡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넷째, 그러나 막내를 데려와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 모두를 살릴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정탐꾼이 아님을 증명하는 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상징들을 통해서 형제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의 말을 듣고 과거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목숨을 구해달라고 사정했던 요셉을 떠올립니다. 지금의 형제들은 그 당시 요셉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는 "우리가 요셉의 일로 고난당하는 것인가?" 추측했다면​ "정말로 우리가 우리 동생 때문에 벌을 받고 있구나"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르우벤은 "내가 그 아이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그 피값을 치르게 되었다"라고 형제들을 책망합니다.요셉은 형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여전히 형제들 사이에 복잡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요셉은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형들이 그 일로 인해서 뉘우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일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형제들의 복잡함은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 유다에게서 작용합니다. 르우벤은 맡형이지만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동침함으로서 아버지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의지하여 세겜사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유다는 이러한 형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요셉은 바로 이 4명의 형들 중에서 시므온을 골라내어서 묶었습니다. 형제들의 갈등에 시므온이 많은 책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므온은 요셉처럼 애굽의 감옥에서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요셉은 나머지 형제들에게 곡식을 주고 그들의 돈을 돌려주고 음식도 따로 챙겨주었습니다. 요셉은 의심스러운 행동을 많이 했지만 형제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사실상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을 의심하고 감옥에 가두면서도 반대로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원수를 은혜로 갚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늘 이러한 역설의 삶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은혜를 더욱 은혜되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은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은혜의 정점인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기를 지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원수들 앞에서 우리를 높여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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