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11월 19일 죄는 흔적을 남기고

짱목사 0 343

창세기 49:1-7

르우벤 지파에 대한 예언

49:1 그리고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모여라. 앞으로 너희에게 일어날 일들을 내가 말해 주겠다.

49:2 야곱의 아들들아, 함께 모여 들으라.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의 말을 들으라.

49:3 르우벤아, 너는 내 맏아들이며 내 힘이며 내 기력의 시작이다. 위엄이 첫째고 힘이 첫째다.

49:4 그러나 네가 끓는 물의 거품과 같아서 뛰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네가 네 아버지의 침대, 곧 내 침대에 올라 그것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시므온과 레위 지파에 대한 예언

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다. 그들의 무기는 폭력의 도구다.

49:6 내 영혼이 그들의 모임에 들어가지 않으며 내 혼이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분노로 사람을 죽였고 자기들의 마음 내키는 대로 황소의 힘줄을 끊었다.

49:7 그들의 분노가 맹렬하고 그들의 진노가 잔인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내가 야곱 족속 가운데 그들을 나눠 놓으며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그들을 흩어 놓을 것이다.​

 

묵상 나눔

  창세기 49장은 저 유명한 야곱의 축복이 나옵니다. 이제 야곱의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에 아들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그 자녀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으며 축복하는 자로서 좋은 말만 하지 않습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자녀들에 대해서 가지고 계시는 계획과 미래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개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기에 인간적인 요소와 언약적인 요소가 함께 나타납니다.

 

  장자 르우벤은 맏이로 태어났기에 장자권에 대한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지위는 맏아들이며 위엄과 힘이 첫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리는 상실되었는데 그 이유가 곧 나타납니다. 끓는 물의 거품과 같다는 것은 그가 조급하고 충동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르우벤의 성품이 자신의 탁월한 면모를 가리게 되었습니다. 르우벤이 뛰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은 르우벤과 르우벤 지파 모두에게 해당이 됩니다. 르루벤 지파에서는 어떤 사사나 선지자, 왕과 같은 뛰어난 인물들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르우벤지파는 요단강 동편 땅을 차지하고 살면서 언약의 중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르우벤이 장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르우벤이 아버지의 아내 중 하나였던 빌하와 동침하였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아내 빌하를 향한 정욕을 참지 못할 정도로 끓는 물의 거품과 같은 성품을 가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르우벤의 권리였던 장자권은 유다에게로, 상속되는 기업의 몫은 요셉에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가 항상 함께했기 때문에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둘은 생각과 행동이 비슷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와 함께 하기를 거절하였는데 그들이 지나치게 잔인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잔인함과 악한 성품은 세겜 성에서 드러났습니다. 시므온과 레위의 분노와 마음이 내키는대로 행동한 결과 세겜 성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가 폭력의 도구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 분노로 사람을 죽이며 마음 내키는 대로 황소의 힘줄을 끊어 고통스럽게 죽게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는 악인의 모임을 갖지 못하도록 흩어져 살게 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후 레위지파는 모든 지파들 속에서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그 수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당을 분배받지도 못했습니다. 야곱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현재와 미래는 우리의 과거에 영향을 받습니다. 모든 죄는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의 과거의 죄를 끊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회개가 중요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죄 용서함의 대가지불은 변화를 받아 그 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영화 밀양의 주인공 신애는 아들을 잃고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의 힘으로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기 위해서 찾아갑니다. 그런데 유괴범은 하나님을 믿고 자유롭게 되었다면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신애는 유괴범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자아가 점점 더 붕괴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묵묵히 신애의 곁을 종찬이 지켜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신애는 '자기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용서했는가'를 외쳤습니다. 유괴범과 신애 모두 하나님이 아닌 종교 안에서 안식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신애를 사모하여 어설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끝까지 헌신하는 종찬만이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모두가 자기가 안식을 얻으려 할 때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는 종찬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죄의 지배를 끊고 오늘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림 출처: https://file.godpeople.com/?GO=file_info&info_code=C1813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