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8월 9일 죄는 죄를 낳고

짱목사 0 383

창세기 4:16-26


가인의 후손들

4:16 그 후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게 됐습니다.

4:17 가인이 그의 아내와 동침하니 그녀가 임신해 에녹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성을 세웠는데 그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 지었습니다.

4:18 에녹에게서 이랏이 태어났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습니다.

4:19 라멕은 아내가 둘이었는데 하나는 이름이 아다고 다른 하나는 씰라였습니다.

4:20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그는 장막에 살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습니다.

4:21 그의 동생의 이름은 유발인데 그는 하프와 피리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조상이 됐습니다.

4:22 씰라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은 두발가인으로 청동과 철로 각종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두발가인의 누이동생은 나아마였습니다.

4:23 라멕이 자기 아내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다여, 씰라여, 내 말을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내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이를 내가 죽였다.

4:24 만약 가인을 위한 복수가 일곱 배라면 라멕을 위해서는 77배나 될 것이다.”

 

셋의 탄생

4:25 아담이 다시 그의 아내와 동침하니 하와가 아들을 낳아 셋이라 이름 짓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

4:26 셋도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에노스라 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묵상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핵심은 제사를 드리는 두 형제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거룩함을 구하고 죄를 미워하는 우리 존재를 생생하게 하는 중심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마음'이란 우리의 중심성입니다. 마음은 지성, 의지, 감정을 포괄합니다. 다시 말해 마음을 아는 것은 그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19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물에 비치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치느니라" 마음은 사람의 본질이며 핵심입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는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마음이란 삶 전체를 주관하는 영적 기관(몸의 기관들처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절로 10절의 8가지 복은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 안의 있는 마음은 우리 육체로 나타납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눅 6장 45절) 하나님은 가인 안에 숨어있던 악한 마음이 죄라는 실체로 드러나기 전에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깨닫게 해주십니다. 예배는 우리의 죄를 회개함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되심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이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가인은 죄의 댓가를 지불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과 죄인에 대한 긍휼을 베푸십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어 가인이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징표를 받았음에도 가인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덴 동쪽 놋 땅에 성을 쌓았습니다. 거기서 아들의 이름을 따라 '에녹성'이라고 부릅니다. 아담이 낳은 셋의 자손에도 에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인물입니다.​ 에녹이란 이름의 뜻은 "계승자, 후계자"입니다. 가인에게 에녹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계승자요, 후계자였습니다. 에녹성은 가인의 죄악과 허물을 지켜줄 든든한 보호막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도시인 성이 세워진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벗은 몸'을 덮어줄 가죽 옷을 주신 것처럼, 가인의 허물과 연약함을  덮어줄 도시를 짓게 하셨습니다. 도시를 통해서 건축, 문화, 예술, 기술과 같은 인류의 문명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죄의 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더 큰 악을 도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것을 잘못 사용하여 더 큰 악을 원합니다. “아다여, 씰라여, 내 말을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내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이를 내가 죽였다. 만약 가인을 위한 복수가 일곱 배라면 라멕을 위해서는 77배나 될 것이다.” 가인보다 라멕은 더 악하고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자랑합니다. 이제 성은 죄인들의 모임과 연대로 더 큰 악을 도모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팀켈러 목사님이 쓴 센터처치에서는 도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도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다... 도시는 인류가 집중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기에, 인간 본성의 최선과 최악이라는 이중적 특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도시를 타락과 폭력의 장소로 묘사하기도 하고, 피난처와 평화의 장소로 보기도 한다. 창세기 4장과 11장에서 도시 건축자들은 첫 번째 살인자인 가인의 계보로서 등장한다. 창세기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도시의 악을 그리기도 한다. 반면 시편 107편은 성읍은 인간이 번창할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긍정적인 사회형태라고 추정하고 있다. 성경은 도시의 긍정적인 역량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동시에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을 도모하는 사회적 공간으로 쓰일 수 있음도 보여준다."(팀켈러, 「센터처치」, 292-293페이지) 팀켈러 목사님은 "도시란 하나님을 높이는 약속과 인간을 높이는 그림자의 긴장이 나타나는 장소"라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동질감을 통해 도시 속에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로 안심하고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에 대한 연대요, 더 큰 악을 낳는 길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도시 속에 세워졌습니다. 도시 속에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시를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 맞서 스스로 독립하려는 반역의 영을 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포함한 우리나라 인구의 82%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2020년 전세계 인구 지표, 도시 인구 비율 참조) 이 말은 우리 한 사람이 8명의 영혼을 섬길 책임이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피난처요 생명의 방주인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림출처https://www.iknowhere.co.kr/news/post/30559 [도시살롱] 지금 사는 도시, 살만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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