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8월 18일 사랑은 허물을 덮습니다.

짱목사 0 410

창세기 9:18-29


술 취해 벌거벗은 노아

9: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 , 야벳인데 함은 가나안의 조상입니다.

9:19 이 세 사람이 노아의 아들들이었고 이들로부터 온 땅에 사람들이 퍼지게 됐습니다.

9:20 노아가 땅을 일구기 시작해 포도원을 세웠습니다.

9:21 그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 자기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있었을 때

9:22 가나안의 조상인 함이 자기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는 밖에 있던 다른 두 형제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9:23 그러자 셈과 야벳은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벌거벗은 것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렸습니다.


노아의 저주와 축복

9:24 노아가 술이 깨 자기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한 일을 알게 됐습니다.

9:25 그래서 노아는 말했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가나안은 가장 낮고 천한 종이 돼 그의 형제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9:26 그리고 노아가 다시 말했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될 것이다.

9:27 하나님께서 야벳을 크게 일으키셔서 그가 셈의 장막에서 살게 되며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실 것이다.”

9:28 홍수 이후 노아는 350년을 더 살았습니다.

9:29 노아는 모두 950년 동안 살다가 죽었습니다.

 

묵상 나눔

  노아의 삼형제 중, 함은 가나안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가나안을 통해 그의 아버지 함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함은 오늘 본문에 아버지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잠든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셈과 야벳은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벌거벗은 몸을 덮어 주았습니다. 의인이요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고 잠을 자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노아의 음주는 가족들의 불균형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허물을 본 함이 형제들에게 와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두 형제는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기 위해 등을 돌려 겉옷을 덮어 주었습니다. 여기서 벌거벗다라는 히브리어 에르와는 부끄러움과 수치를 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다'는 말은 '죄와 허물' 그리고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벌거벗었음을 느낀다는 것은 죄로 인한 수치를 느낀다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연약함을 애써 외면하며 덮어주려는 두 형제와 아버지의 연약함을 덮어주지 않고 형제들에게 그것을 폭로하는 함입니다. 이것이 가나안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노아가 이 사실을 안 뒤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가나안은 낮고 천한 종이 되어 형제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셈과 야벳을 축복하며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될 것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여전히 노아와 그의 가족 안에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또다시 벌거벗음이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죄악이라는 벌거벗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함을 덮어주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셈과 야벳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존경했기에 겉옷으로 허물을 덮었습니다. 그러나 함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을 때 은혜가 있습니다. 이처럼 허물속에서 은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노아의 축복과 저주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아담과 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는 혈통이라는 두가지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기 때문에, 허물과 죄악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게 됩니다. 그러니 불합리하고 불의한 상황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에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의 허물 속에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은 이사야 43장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완전하심과 의로우심 속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45장 4-6절 말씀입니다.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 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찌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부터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과 달리 우리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일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절에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알지 못하는 우리를 알게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만 있습니다.

 

그림출처: 가나안의 아비 함 같이 살지 말라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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