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8월 22일 무모한 도전

짱목사 0 365

창세기 12:1-9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심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12:2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12: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아브람이 떠남

12:4 그리하여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습니다. 롯도 아브람과 함께 갔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는 75세였습니다.
12:5 그는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그들이 모은 모든 재산과 하란에서 그들이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나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의 큰 나무 앞에 이르렀는데 당시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그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12:8 거기에서 그는 벧엘 동쪽에 있는 산으로 가서 장막을 쳤는데 그 서쪽에는 벧엘이 있고 그 동쪽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12:9 아브람은 계속 이동해서 네게브로 나아갔습니다. 

 

묵상 나눔

  데라가 아브람과 사래, 조카 롯을 데리고 가나안에 가려고 했습니다. 롯은 데라의 아들 하란이 낳은 아들이기에 데라에게는 하란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나안에 가는 여정에 나홀은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데라는 205세까지 하란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데라가 왜 가나안에 가려고 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았지만 데라와 아브람과 롯의 터전은 하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2장 1절부터 3절까지 아브람에게는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가나안은 이제 영적인 분깃이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인간이 기초하는 땅의 개념을 이야기 하십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데라와 아브람과 롯은 하란을 발판삼아 삶을 이룩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보여주십니니다. 가나안은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여주신 그 땅은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서 이름이 크게 되며 복의 근원 즉 시초가 되는 땅입니다. 너무나 좋은 말씀이요 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비전만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은 있으나 현실은 아무 것도 없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전입니다. 말씀과 현실에는 분명히 뛰어넘기 어려운 간극이 있습니다. 자녀 없이 75세의 아브람이 이 말씀에 순종하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더 큰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4절에 보면 놀랍게도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떠났습니다. 조카 롯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사람들도 함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이 순종하자 그에 속한 모든 것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아브람과 함께 모든 것이 다 믿음의 경계(Edge of the Faith)안으로 함께 들어가게 됩니다.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며 처음 도착한 땅은 세겜 땅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세겜의 모레의 큰 나무 즉 모래 상수리' 나무 앞에 이르러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다시한 번 언약을 주십니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거기서 다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습니다. 세겜은 아브람이 하나님께 제일 처음 제단을 쌓은 장소입니다. 또한 세겜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고 요셉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갱신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었을 때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6개의 도피성 중 하나가 세겜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수가성 여인을 만난 곳도 세겜입니다. ​아브람은 더 나아가서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쳤습니다,  거기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묵상을 통해서 이름을 부르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과 그 일행들이 이제는 온전히 믿음의 영역(Realm in the Faith) 안으로 들어왔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네게브 즉 가나안의 제일 아래까지 내려갑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 언약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아브람에게는 의가 되고,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불의가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근본주의자들에게 "믿음을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브람은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때가 이르러,​ 가나안 땅의 악이 가득찬 그 때에 허락되었습니다. 불의한 자들 속에서 의를 이루시는 것이지, 의를 위해서 불의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의를 위해서 어떤 악을 행해도 좋다면 그것은 불의입니다.​ 가나안의 불의는 아브람 때부터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습니다. 그들의 원하는데로 악하게 살면 그들의 미래는 심판이 있음은 예정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악한 자들에게 심판이 있음을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인간의 경험과 생각으로는 어리석고 무모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림출처: [아브라함 이야기]1. 믿음의 조상감?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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