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8월 23일 두려움 앞에서

짱목사 0 358

창세기 12:10-20


아브람이 가나안을 떠남

12:10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기근이 심했기 때문에 아브람은 이집트로 내려가서 얼마간 살았습니다.

12:11 그는 이집트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내 사래에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당신은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임을 내가 알고 있소.
12:12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이 여인이 아브람의 아내구나’ 하며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줄지 모르오.
12:13 부탁이오. 당신이 내 여동생이라고 해 주시오. 그러면 당신으로 인해 그들이 나를 잘 대접할 것이고 당신 덕에 내가 살게 될 것이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심
12:14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집트 사람들이 사래를 보았는데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12:15 바로의 신하들도 그녀를 보고 바로 앞에 가서 칭찬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바로의 왕실로 불려 들어갔습니다.
12:16 바로는 사래 때문에 아브람을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양, 소, 암수 나귀, 남녀 하인들, 낙타를 얻었습니다.
12:17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인해 바로와 그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12:18 그러자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말했습니다.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 그녀가 네 아내라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
12:19 왜 너는 그녀가 네 여동생이라고 말해서 내가 그녀를 아내로 얻게 했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다. 어서 데리고 가거라.”
12:20 그리고 바로는 자기 신하들에게 명령해 아브람이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물을 갖고 떠나게 했습니다.

묵상나눔
   자연에는 1:1.618이라는 비율이 있습니다. 좀 더 쉬운 숫자로 바꾸면 3:5나 5:8이라고 합니다. 모든 요소가 조화와 대칭을 이루어 보기에 편안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비율입니다. 다시 말해서 조화와 대칭은 수학적인 비율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음악도 장조와 단조와 같은 음률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조화와 대칭을 통해서 정해집니다. 여기서 어울리지 않는 음 하나만 눌러도 불쾌한 느낌을 줍니다. 이것을 불협화음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대칭과 조화를 이루도록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조화와 균형을 이룬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이 아름다움은 창조의 때 부터 시작됩니다.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입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서 아름다움은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야폐라고 합니다. 야폐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하는데 첫째는 외모의 아름다움이고 둘째는 지혜가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3:11절에서​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때를 따라 그리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아브람이 사래를 보았을 때 고백한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래의 아름다움은 사래의 용모와 함께 그 안에 담겨진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래는 감정이 풍부하고 상황에 대한 판단과 결정이 신속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적응력이 빠릅니다. 그래서 사래의 행동에는 믿음인듯 믿음 아닌 결정을 많이 내리기도 했습니다. 아브람 역시 사래와 비슷했지만 두 사람은 점점 더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과 사래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집을 떠난 삶이 무엇인지 잘 설명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이 여인이 아브람의 아내구나'하며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줄지 모르오. 부탁이오 당신이 내 여동생이라고 해 주시오, 그러면 당신으로 인해 그들이 나를 잘 대접할 것이고 당신 덕에 내가 살게 될 것이오.' 아브람의 말속에 보호받지 못하는 나그네의 연약함이 드러납니다. 아브람 개인의 연약함이 아니라 나그네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연약함입니다. 두려움이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만났을 때 직면하는 감정입니다. 육체의 고통과 두려움과 염려의 시간이 고난의 시간이 됩니다. 그들의 예상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탁월한 안목이 있었습니다. 애굽왕은 사래를 데려가고 대신 많은 재물을 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아내를 애굽왕에게 빼았기고 고통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하나님을 의지하지않은데서 오는 고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현실 속에서 역사하시는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믿음에 기초한 생각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애굽 왕의 능력이 더 커보였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하나님보다 더 보이는 것은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려움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깨트리시고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불화와 불협을 조화와 화평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것을 회복시켜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름다우십니다. 가나안의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서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를 확실하게 바꾸셨습니다. 온 세상이 아브람과 사래가 부부인 것을 알게 했으며 여동생으로 인식하는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가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품는 부부의 관계로 바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전도서 3:11절 말씀에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더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지만 온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 수 없게 하셨습니다. 나의 삶을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사모하고 구하는 것 만큼 더 아름답고 조화을 이루는 삶은 없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 내가 더 하나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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