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9월 17일 "예, 가겠습니다."

짱목사 0 378

창세기 24:54-67


라반이 리브가를 떠나 보냄

24:54 그 후에야 종과 그 일행이 먹고 마시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아브라함의 종이 말했습니다. “저를 제 주인에게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24:55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와 함께 한 10일쯤 더 있다 가게 해 주십시오.”

24:56 종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를 붙들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제 여행길을 형통하게 하셨으니 제가 제 주인에게 돌아가게 보내 주십시오.”

24:57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리브가를 불러서 물어봅시다.”

24: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네가 이 사람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했습니다. “예, 가겠습니다.”

24:59 그리하여 리브가의 오빠와 어머니는 리브가를 그녀의 유모와 함께 아브라함의 종과 그의 일행에게 딸려 보내며

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며 말했습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수천만의 어머니가 될 것이며 네 자손이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24:61 리브가와 그 여종들이 낙타에 올라타고 그 종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만남

 

24:62 그때 이삭은 브엘라해로이에서 돌아와 네게브 지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24:63 날이 저물 무렵에 이삭이 묵상하러 들에 나갔다가 눈을 들어보니 낙타들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24:64 리브가가 고개를 들어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
24:65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습니다. “들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오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종이 말했습니다. “제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가 베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24:66 그 종은 이삭에게 자기가 행한 모든 일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자기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삭은 그녀를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삭은 자기 어머니 사라가 죽은 후에 위로를 얻었습니다. 

 

묵상 나눔

  한 때 자유롭게 연애는 하는데 결혼은 안하겠다는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연애를 하는 것을 사치로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해도 "육아, 살림, 양가 부모님에 대한 부담, 각자의 가치관과 경제력, 개인 시간의 침해를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청년들의 결혼의 가치관이  배려와 존중에서, 권리와 이익 중심으로 바뀐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TV 프로그램은 이 세대의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의 성경적 가치관을 배우려면 오늘 본문의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룻밤을 묵은 후 리브가를 데리고 돌아가고자 헸습니다. 종은 지체하면 라반과 브두엘의 마음이 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종의 예상대로 리브가의 어머니와 라반은 10일을 더 머물다 가기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종은 단호했습니다. 종은 "하나님께서 여행길을 형통하게 하셨으니"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요구합니다. 종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에게 헌신되어 있었습니다. 종의 헌신은 합당하며 너무나 정당했기에 그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라반과 그의 어머니는 리브가에게 물어보자고 합니다. 리브가가 원하면 종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리브가에게 질문합니다. "네가 이 사람과 같이 가겠느냐?" 가족들 앞에서 리브가의 대답은 간단하며 명료했습니다. "예, 가겠습니다." 리브가는 의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묵상나눔에서는 리브가의 대답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리브가의 대답은 첫째,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슬픔과 아픔을 동반합니다. 리브가는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고통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가정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둘째, 익숙함과 편안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사람과 함께"라는 말은 익숙한 것을 떠나 낯선 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려움과 염려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것은 모험을 의미합니다. 모험은 새로운 기대와 활력을 줍니다. 셋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가겠다는 결단의 '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언약의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의미들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리브가는 단 한 문장으로만 표현했습니다. "예, 가겠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에 잠겼던 이삭은 하갈과 형 이스마엘이 있던 브엘라해로이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이 자랐던 네게브 지역 브엘세바에 돌아왔습니다. 날이 저물 무렵 이삭은 광야에서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리브가가 이삭에게로 나아옵니다. 보통은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가지만 이 경우는 반대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맞으러 왔습니다. 리브가의 믿음이 얼마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지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결코 경거 망동하지 않습니다. 이삭을 위해 그의 얼굴을 베일로 가렸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이삭에 대한 예를 갖춤과 동시에 남자를 알지 못하는 리브가의 순결과 정결함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종에게 구했던 바로 언약의 순종이 리브가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리브가는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 주었고, 이삭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리브가는 어머니처럼, 아내처럼, 그리고 온유하고 조용한 이삭을 채워줄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결혼은 상대방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서로의 위로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혼자로는 연약하지만 함께라면 사랑과 위로가 풍성해집니다. 과연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사랑의 완성이다"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 걸까요?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결혼에 대한 해답은 이미 명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약한 "모든 가정들" 위에 위로와 평강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한 사람과 함께 사는 아내, 귀하게 여겨 주시는 양가 부모님들, 그리고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림 출처: [창세기11] 이삭의 배필 리브가 [창세기 24:1-67]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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