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9월 19일 소홀히 여겼나요?

짱목사 0 365

창세기 25:19-34

야곱과 에서의 탄생

25: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 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습니다.

25:20 이삭은 40세에 밧단 아람의 아람 사람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 라반의 여동생인 리브가를 자기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25:21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해서 그녀를 위해 여호와께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됐습니다.

25:22 그런데 뱃속에서 두 아기가 서로 싸웠습니다. 리브가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라고 말하며 여호와께 나아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25:23 여호와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네 태 안에 있다. 네 태 안에서부터 두 민족이 갈라질 것이다. 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보다 강하니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25:24 리브가가 출산할 때가 돼서 보니 그녀의 뱃속에 쌍둥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25:25 먼저 나온 아들은 빨갛고 온몸이 털옷과 같아서 그 이름을 에서라고 했습니다.

25:26 그 다음에 그의 동생이 나왔는데 손으로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야곱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을 낳았을 때 이삭은 60세였습니다.


야곱에게 장자권을 판 에서

25:27 그 아이들이 자라서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으로 들판에 나다니는 사람이 됐습니다.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장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5:28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25:29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들판에 나갔던 에서가 들어왔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팠습니다.

25:30 에서가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그 붉은 죽을 내가 좀 먹게 해다오. 나 정말 배고파 죽겠다.” ‘붉은 것’을 먹겠다고 해서 그의 별명을 에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5:31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먼저 형의 장자권을 오늘 내게 파십시오.”

25:32 에서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죽을 지경인데 장자권이 내게 무슨 소용이냐?”

25:33 그러자 야곱이 말했습니다. “오늘 당장 내게 맹세부터 하십시오.” 에서가 맹세를 하고 야곱에게 자기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25:34 그제야 야곱이 에서에게 빵과 붉은 죽을 주었습니다. 에서는 먹고 마신 후 일어나 가버렸습니다. 이처럼 에서는 자기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묵상나눔

  25장 19절부터는 이삭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기록은 쌍둥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록입니다.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자 하나님께 간구하여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확률적으로 일란성 쌍둥이는 0.2%에 불과합니다. 이란성 쌍둥이는 서양이 1.2% 동양이 0.5%가 됩니다.  즉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할 확률은 매우 낮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하여 임신하였는데 쌍둥이를 임신하게 된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과 에서가 복중에서 싸웠기 때문에 쌍둥이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쌍둥이의 임신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형과 동생이라면 명확하게 형에게 장자권이 있습니다만 쌍둥이라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쌍둥이의 임신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 차리고 하나님께 뜻을 구한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두 아이 모두 번성하게 되지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이후에 말씀을 읽어보면 이삭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리브가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삭보다 리브가가 더 하나님께 민감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밧담 아람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뜻을 따라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모태신앙보다는 자기 믿음으로 신앙생활하는 분들이 더 하나님께 민감한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야곱과 에서의 생김새가 다른 것을 보면 이란성 쌍둥이었던 것 같습니다. 에서는 전신이 붉고 털옷 입은 것 같았다고 해서 에서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갓 출산한 아이가 털이 북실북실 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야곱은 그러한 에서의 발 뒤꿈치를 잡았다고 해서 야곱입니다. 40세에 결혼해서 60세에 아이들을 출산했으니 2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노년에 얻은 이 아이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에서와 야곱  모두 자녀들이었지만 사랑의 이유가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자녀 사랑의 이유가 너무나 특이합니다.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다" 이삭은 미식가였던 걸까요? 알 수는 없지만 이삭의 자녀 사랑 이유가 조금 의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대입해보면 분명 이삭과 리브가의 사랑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인간적 관점의 사랑과 하나님 관점의 사랑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에서와 야곱의 삶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에서는 힘과 실력을 의지하고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팥죽의 사건은 그러한 둘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에서는 팥죽을 먹기 위해 장난처럼 장자권의 거래에 임한 것이지 절대로 장자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후에 야곱이 장자권을 주장한다고 해도 누가 그것을 인정하겠습니까? 에서는 팥죽을 먹기 위해서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의 장자권을 인정해 주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삭이 먹는 것을 사랑한 것처럼 에서 역시 먹는 것을 위해서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사랑했고 야곱 역시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대범함과 열심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리브가처럼 중요한 것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감당하며 사는 사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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