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A 9월 21일 믿음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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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12-22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함

26:12 이삭이 그 땅에 곡식을 심고 그 해에 100배를 거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26:13 이삭은 부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부유해져서 마침내 아주 큰 부자가 됐습니다.

26:14 그가 양 떼와 가축과 종들을 많이 거느리게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했습니다.

26:15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 아브라함의 종들이 팠던 모든 우물들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습니다.

26: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를 떠나가라. 네가 너무 강해져서 우리가 감당할 수가 없다.”


이삭이 우물을 양보함

26:17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거기서 살았습니다.

26:18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때 팠다가 아브라함이 죽고 난 후 블레셋 사람들이 막아 버린 우물들을 다시 파고 자기 아버지가 지은 이름들을 다시 붙였습니다.

26: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다가 신선한 물이 나오는 샘을 발견했습니다.

26:20 그런데 그랄의 양치기들이 이삭의 양치기들과 싸우면서 말했습니다. “이 물은 우리 것이다.” 이 때문에 이삭은 그 우물을 에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이삭과 싸웠기 때문입니다.

26:21 이삭의 종들이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의 양치기들과 다시 그 우물 때문에 싸웠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을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26:22 이삭이 그곳에서 옮겨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이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 자리를 넓게 하셨으니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할 것이다” 하며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했습니다.

 

묵상나눔

  이삭은 브엘라헤로이,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브엘세바(그랄)을 옮겨가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근으로 인해 그랄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했다는 것은 정착하여 자기 땅을 일구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대부분의 신앙은 농사에 미치는 자연과 관련이 있습니다. 심청이가 인당수 물에 빠진 것이나, 임금님이 선농단에서 소를 잡아 기우제를 지낸 것은 모두 신을 통해 자연을 달래려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알과 아세라 역시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서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비를 내리는​ 제사의 대결을 한 것도 3년 반의 가뭄이라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찾으면 좋겠지만​,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 비로소 하나님을 기억하고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라고 백성들을 책망했을 때 백성들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도 선택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기사들을 읽으면 이들이 얼마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농사를 해보면 100배의 수확을 거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기근이 덮쳐 모두가 힘들었을 때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주셔서 점점 더 부유해져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삭의 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부유하게 된다는 단순 공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고난의 현장에서 쓰임을 받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부유함으로 주변사람들의 시기를 받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아버지가 파 놓았던 우물을 막았고 아비멜렉은 이삭을 추방했습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아버지의 우물들을 다시 파고, 자기는 새로운 우물을 파게 되었습니다. 우물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리브가가 10마리의 낙타에게 물을 먹인 것은 낙타의 생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물은 절대적인 힘을 가집니다. 우물을 가지고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추방당한 이삭의 양치기들이 그랄에 살고 있던 양치기들의 텃세를 이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물은 우리 것이다. " 이 물은 다툼이라는 뜻의 '에섹'이라 불렀습니다. 또 다시 우물을 팠는데 적대하다란 뜻의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세번째 우물을 팠을 때 넓은 지역이란 뜻의 '르호봇'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번의 우물 사건을 통해서 이삭은 모두가 거주할 수 있는 충분히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또한 이 일로 누구와도 다투지 않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삭이 다투웠다면 잠시동안은 우물을 소유할 수 있었겠지만  그랄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갈 때에 온전한 화평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묵상을 마치고 세나의 묵상하기를 읽어보니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참으로 귀한 통찰입니다. 다툼과 분쟁이 있는 곳에서 맞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화평을 이루는 길을 찾아갈 때 온전한 화목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다툼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도 어려운 일이지만 화목하게 하는 것은 더 어려운 길입니다. 다툼은 분쟁을 낳지만, 화목은 화평을 낳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화목하게 사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림출처: Beersheba -- Where Abraham Swore an Oath: Near Israel's Fraught Border with Gaza on the Looney Front, Part 3 | HuffPost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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