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사의 매일묵상(9월 27일)_ "선 넘지마!" (삼하 6:1~11)

김하연목사 0 323

* 함께 묵상할 말씀 - 사무엘하 6:1~11

1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 함께 드리는 찬양 - "거룩 거룩 거룩" (찬송가 8장) 


​- 여러분, 혹시 학창시절때 이런 추억 있지 않으셨습니까? 긴 책상에 남녀가 짝꿍으로 묶여 앉게 되면 제일 먼저 책상 가운데에 선을 긋고 각자의 위치를 알려주며 '선 넘지 마!' 라고 했던 기억 있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런 기억이 있었습니다. 

- 인간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한때 예능에서 '선 넘는 캐릭터' 가 사랑받은 적도 있지만, 너무 과도하다보니 결국 그 인기도 식어진 것을 보게 되더라구요. 하물며 인간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분명히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를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짓을 저지르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눈 뜨고 보지 못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사랑은 방임이 아니라, 지켜야 할 거룩의 선이 있음을 전제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 오늘 본문인 사무엘하 6장은 이제 하나님의 법궤를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삼상 7:1~2)에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 백향목 왕궁으로 옮겨가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담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아주 거룩한 물건이기에 법궤를 모시고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물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자 했었습니다. 다윗은 삼만명의 백성들을 소집하여 (법궤를 지키는 군사+법궤의 이동을 축하하는 일반 백성들) 지금은 바알레유다라고 부른 당시 기랏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옵니다.

-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법궤를 어떻게 모시고 나왔습니까? 새 수레에 법궤를 모시고 그 법궤를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수레를 끌고 뒤에서는 소가 모는 방식으로 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주변에는 다윗이 소집한 3만여명의 사람들이 법궤 주변을 둘러 여러가지 수금과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법궤를 지키며 거대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그럴싸해보입니다. (삼하 6:1~5)

-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법궤를 실은 수레 행렬이 기랏여야림과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수레에 실려 있었던 하나님의 법궤가 흔들릴려고 했겠지요. 그래서 수레를 끌고 갔던 웃사가 손을 잡아 법궤를 붙들고자 했었습니다. 그러자 그만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셔서 웃사를 그 자리에서 죽이신것입니다. (삼하 6:6~7) 정말 충격적인 심판이 벌어진 것이죠.

- 여러분, 법궤를 수레로 운반하고 손으로 잡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인해 웃사를 치셨을까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모시는 과정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불경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법궤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 그 분이 친히 오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법궤는 아무나 잡아서도 안되고, 이동도 마음대로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직무를 위해 특별히 구별하신 그핫 자손이나 제사장들이 언약궤 고리에 끼워져 있는 채를 이용해 어깨에 매고 가야 합니다. (출 25:12~16, 민 4:15) 

- 소들이 몰고 다니는 수레는 그 당시 강대국 블레셋에서 발달된 최신식 기술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편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엔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법궤가 수레에 실려있다는 것은 마치 하나님을 자동차 드렁크에 싣는 짐짝정도로 취급해버리는 아주 불경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편리함만을 내세우다보니,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거룩의 선을 인간이 함부로 넘은 것입니다. 이미 한번 블레셋에게 뺏겼다가 다시 돌아온 하나님의 법궤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호기심으로 함부로 열었다가 5만 70명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 벧세메스의 교훈(삼상 6:19~21)를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 결국 하나님의 법궤는 일단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옮겨집니다. 역대기서에 보면 고핫 족속의 레위인이자 성전 문지기로 봉사했던 거룩한 직무를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대상 15:18, 26:4~8) 다윗 성으로 옮겨지 전까지 3개월간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는 동안 오벧에돔과 그의 집안은 크나 큰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거룩을 지키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삼하 6:10~11)

-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거룩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에게는 어두움이 전혀 없으십니다. (요일 1:5) 우리 하나님은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고후 6:14~16) 그러하기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언제나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선입니다. (잠 3:7)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심판은 무시무시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만이 참된 거룩의 길이고 우리의 살 길입니다.


* 함께 드리는 기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분을 경외하는 삶 살아가는 거룩의 사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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