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목사의 매일묵상(10월 11일)_ "다윗과 압살롬의 화해(?)" (사무엘하 14:21~33)

김하연목사 0 312

* 함께 묵상할 말씀 - 사무엘하 14:21~33

21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5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 함께 드리는 찬양 - "광야를 지나며"

 

- 지난 주일에 나누었던 말씀, 사무엘하 13장을 기억하시는지요? 암논이 자기 이복여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사건으로 계기로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후 그술로 도망하였던 3년의 시간, 다윗의 마음에 아들을 잃은 슬픔은 점점 사라져갔고 성경에 보니 '압살롬을 향해 마음이 간절해졌다' (삼하 13:39) 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정말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한걸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부른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그 청년' 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삼하 14:21) 여전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죠. 자신의 청원대로 압살롬을 데려오라는 왕의 명령을 받은 요압은 감사해하면서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려옵니다. 그러나 다윗이 정말 압살롬의 죄를 용서해준 것일까요? 여전히 괘씸했겠죠. 그러니 요압의 부탁을 '마지 못해' 들어준 것이 나다름이 없습니다. 압살롬은 그렇게 다윗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당장 왕이 있는 왕궁으로 들여오지를 못하게 하고 2년을 압살롬의 집에 머물게 합니다. 왕이 자기 아들을 알현을 못하게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압살롬에게는 크나큰 치욕이었습니다. (삼하 14:21~24,28)

 

- 온 이스라엘에서 이미 압살롬의 인기는 상당했습니다. 외모도 준수했고, 번듯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하였으니까요. (삼하 14:25~27) 성경의 기록 그대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잡을데가 없는 정말 완벽한 외모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외모로만 보지 말아야 하잖아요? 겉으로는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아버지 다윗과의 온전한 화해와 왕자의 지위 복권을 열망했지만 그 내면에는 음흉한 계획이 숨겨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 다윗성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굴욕적인 시간을 보낸 압살롬, 결국 자신을 끌어들인 요압을 찾기 위해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압마저도 상대해주지 않습니다. 결국 화가 난 압살롬은 자신의 종들을 시켜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게 합니다. 일종의 무력시위였던 것이죠. 결국 요압은 다윗 왕에게 찾아가 이 모든 일들을 소상히 아뢰었고, 결국 암논 살해사건 이후 5년만에 다윗왕과 압살롬과의 부자상봉이 이루어집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향해 얼굴을 땅에 닿도록 절을 하였고,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안아주며 아들의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줍니다. (삼하 14:28~33)

 

- 겉으로 보이기엔 다윗과 압살롬은 화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이미 어두운 마음이 깔려있었습니다. 다윗은 마지못해 자기 아들을 용서하고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었지만, 압살롬은 겉으로는 아버지를 향해 극진한 예우를 갖추면서도 그 뒷면에는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자신을 향해 2년간 굴욕을 안겨준 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슬슬 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신앙이 무엇인지, 회개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겉으로 열심인척, 눈물 몇방울 뚝뚝 흘리며 잘못한 척 연기하는 것이 회개는 아닙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 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으니까요.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데요. (삼상 16:7) 압살롬은 자기 죄 때문에 무려 5년의 시간을 방랑과 굴욕의 광야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정말 압살롬이 하나님을 믿는 선한 양심이 있었다면 자신이 지은 죄를 철저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벌도 달게 받겠다는 각오가 있었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참 압살롬이 안타깝게 보여집니다.

 

- 혹여나도 압살롬과 같이 인생의 광야를 지나며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셨습니까? 그러면 숨기거나 보태지 말고 회개하시면 됩니다. 그저 눈물 몇방울로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회개하고 나의 삶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고쳐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대하 7:14, 마 3:8)

 

* 함께 드리는 기도: 겉으로는 화해의 제스추어를 내밀었지만 속으로는 권력을 차지하려는 음흉한 음모를 꾸민 압살롬의 모습을 보며 나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주님께서 말씀으로 내 죄를 보게 하시고, 인생의 광야에서 내 약함을 보게 하실 때 숨기거나 보태지 않게 도와 주시고 철저히 회개하고 각성하며 주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믿음의 삶으로 거듭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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