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8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선하다라는 말은 개인 혼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선이라는 것은 두 사람 이상 모인 공동체에 필요한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가인, 아벨 공동체라는 두 개의 공동체가 있다. 이 두 개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아벨 공동체’와 국가로 대표되는 인간을 주인으로 삼는 ‘가인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작게는 가정에서 지역사회, 크게는 국가와 민족과 같은 단위로 구별할 수 있다. 이것을 두고 바르트는 기독교 공동체와 시민적 공동체로 구별한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속, 규칙, 법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법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과 3장에 선악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성경 전체에서 인간이 타락하는 장면은 차지하는 분량을 작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다음으로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듯 선악과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들은 상징이나 우리와 상관없는 신화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뱀이 하와를 한 번의 유혹으로 넘어지게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유혹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범신론에 빠져 있다. 이는 뱀이 하와를 유혹한 것처럼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범신론은 다신론과는 다른 것이다. 다신론은 신이 여러 명이 있다는 것이고 범신론은 모든 것이 신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불교, 힌두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의 신은 모두 같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지만, 모든 곳이 하나님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곳에 계시는 것이다. 범신론에 의하면 선과 악의 구분이 없고 심판이 없으며,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없다. 곧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것이 범신론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로 심판하시며, 그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을 복 주신다. 하나님이 영원 무궁하시기 때문에 그의 선함과 인자하심도 영원무궁하시도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받아 누려왔던 영적인 복이었다. 그런데 웨스트민스터 제6장 2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멀어져서 죄 가운데 죽게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혼과 육체의 참된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인간이 완전히 타락했다는 말은 인간이 완전히 악하게 되어 구제불능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인간도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누구도 주 앞에 다가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하와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아담은 이를 믿고 자기 아내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의 하와라고 불렀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가인과 아벨을 낳고 부부공동체에서 가족공동체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제사 문제로 가인은 아벨을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인은 장남이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힘이 쎄고, 소유욕이 강했으며 모든 면에서 아벨보다 뛰어났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분노했다. 마치 아담이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한 저 여자가 선악과를 먹게 했다”고 느낀 것과 같은 분노였다. 하나님이 가인의 예물을 받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드린 예물에 담긴 마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예물을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4장 3-5절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은 땅의 소산 중에서 임의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아벨은 매우 구별하여 준비한 예물을 드렸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은 예물이 아니라 가인의 마음이다. 예물에 대한 가인의 탐심 곧 우상을 숭배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인에게 은혜의 말씀을 해 주신다.
창세기 4장 6-7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저버리고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가인이 걸어간 길을 보면 가인 공동체는 스스로가 주권자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 나간다. 하나님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국 사망의 길로 나아간다. 가인은 불순종의 아들이 되어 사단의 생각대로 지배를 받는다. 아벨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피를 흘리고 주의 곁으로 나아갔다. 아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은 광야였다. 오늘 창세기 4장에 가인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요한1서 3장 12절 이하의 말씀에 나온다.
요한1서 3장 12-15절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의 삶에 담긴 빛과 어둠이이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와 주를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를 예표한다. 가인은 예수 그리스로를 대적하고 교회를 박해하는 세상 공동체를 예표한다. 우리는 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일을 깨달아야 할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