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1-10
1.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3.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5.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7.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중동에 가면 “강인한 낙타도 깃털같이 가벼운 짐 하나 때문에 쓰러질 수 있다”, “마지막 지푸라기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생의 무게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속담입니다. 강인한 수컷 낙타는 300~450㎏의 짐을 지고 20~30㎞의 사막길을 거뜬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인한 낙타도 아주 작은 짐 하나를 더하면 그 무게로 탈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작은 깃털 하나의 무게’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은 각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지인의 한마디,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 카드값 독촉 전화 한 통, 믿었던 친구의 배신이 마지막 짐이 되어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버티고 견뎌낼 수가 있을까요.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를 위해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신 예수님이 제일 먼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 안에서 쉼을 얻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독일 독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깨지기 쉬운 창”이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는 독일 신화에 나오는 지그프리트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그프리트는 전설의 용을 죽여 그 피로 목욕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피부는 강철처럼 단단해져서 어떤 칼로도 뚫을 수 없는 무적의 영웅이 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상처받지 않기를 원하면서 견고한 성을 쌓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관계 속 상처, 거절의 아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성벽을 쌓아 올립니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할수록 점점 고립되어 영적으로 죽어가게 됩니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잘 표현한 자가 라멕입니다. 창세기 4:23-24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자에게 칠십 칠배로 갚아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강함은 상처가 하나도 없는 견고함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12:9의 말씀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능력이 많은 바울도 약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그리스도의 완전함이 나타나는 통로로 삼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약함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칠십칠배로 갚아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21-22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오늘 야곱은 험악한 세월 백삼십년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애굽의 왕궁에 사는 바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월입니다. 바로와 야곱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백삼십년의 세월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조사기관에서 나온 통계입니다.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잠잘 집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직 세상의 25%만이 이런 환경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달을 보낼 수 있는 생활비가 있고 오늘 쓸 수 있는 여유돈이 있다면 그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오직 전 세계의 8%만이 이런 환경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 나라가 전쟁이 없고, 갑자기 끌려가 고문을 받거나 기근으로 죽을 위기가 없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전세계 5억명의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만약 마음껏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다면 그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지금 전 세계 30억 명은 교회도 없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책이 있고 마음껏 기도할 수 있다면 그는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전세계 1/3의 사람은 여전히 성경이 없고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축복인지 알면 결코 예배를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할 수 있는 힘과 근거는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8:38-39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잠시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잠시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