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16-35
16.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23.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26.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28.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30.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33.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34.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아비멜렉은 이삭이 리브가와 부부인 것을 알고 이삭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범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고 법으로 선포했습니다. 이삭은 그랄 지역에서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이삭이 농사를 해서 백배의 소출을 거두었습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삭이 흉년이 들어서 애굽으로 가려다가 그랄 지역에 왔다는 것입니다. 흉년으로 인해 농사가 되지 않을 때 백배의 소출을 거둔 것입니다. 둘째는 이삭은 원래 아버지 때부터 목축업을 했었습니다. 농사의 경험이 없던 사람이 농사를 해서 백배의 소출을 거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농사를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랄 땅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삭에게는 많은 식솔들과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도 동시에 주어진 현실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 해에 농사를 지었고 믿음의 결과로 백배의 소출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백배의 소출을 얻었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만 창대하고 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대와 왕성은 모두 하나님을 향한 단어들입니다. 창대라는 말 가달은 커지다, 위대하다, 찬양하다라는 뜻까지 있습니다. 창대라는 말은 이삭이 거부가 되어서 사용한 말이 아닙니다. 가달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왕성이란 말 할라크도 “가다, 오다, 걷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와 함께 하심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대하고 왕성하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삭에게 주신 복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커져 갔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주신 복으로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습니다. 시편 128:1-2 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그런데 이삭에게 또다른 위기가 닥쳐 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흙으로 메웠습니다. ‘시기하다’라는 히브리어 미크네는 ‘소유하다’라는 ‘카나’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블레셋의 ‘시기함’이 이삭의 ‘소유’에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이어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찾아와서 떠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삭이 블레셋 왕보다 더욱 강성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랄 골짜기로 장막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놓았던 또 다른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런데 그랄 목자들이 찾아와서 이삭이 판 우물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삭은 이로 인해서 자신이 판 우물을 에섹이라고 불렀습니다. ‘에섹’은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접한 말이 있습니다. 갈등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의도로 평가하고, 남은 행동으로 평가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늘 의도로 나를 평가합니다. 나는 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생각한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나의 의도를 통해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옳고 선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나 남에게는 정반대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의 행동’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갈등을 빚는 것입니다.
분명 이삭은 ‘에섹’을 다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삭은 다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툼’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라고 불렀습니다. 싯나도 ‘다툼’이라는 뜻이 있지만 갈등을 넘어서서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가장 절망에 빠질 때가 이 때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많은 복을 주시는가 싶더니, 이제는 그 복이 무거운 짐이 되어서 벗어날 길이 없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곳에서 장막을 옮겨서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우물을 팠는데 드디어 다툼이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불렀습니다. ‘르호봇’은 “하나님이 터를 넓게 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랄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 브엘세바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이삭에게 다시 언약을 주십니다. 24절의 말씀입니다. 24.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도 즉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린 분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합당한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일, 곧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삭은 일련의 낮아짐을 통해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이삭을 만나러 왔습니다. 하나님의 연단을 받은 이삭은 이제 아비멜렉에게 당당하게 맞서게 됩니다. 27.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러자 아비멜렉의 말이 걸작입니다. 28.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29.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위기를 복으로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하나님은 이삭을 아비멜렉보다 더 높여 주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그들에게도 베풀었습니다. 창세기 26:30-31 30.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이와 동시에 하나님이 이삭에게 새로운 우물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새 우물을 주신 것에 감사하여 그 이름을 ‘세바’라고 불렀습니다. 세바는 ‘맹세’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대로 자신의 이웃을 선대하겠다는 맹세입니다. 그리하여 그 성읍의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 곧 맹세의 우물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삶은 ‘프론티어’ 개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역사는 개척의 역사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황량한 사막에 길을 닦으며 개척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오늘의 미국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습니다. 이들은 부족한 땅을 얻기 위해서 바다를 메꾸어 육지를 만드는 공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네덜란드 속담에 “신은 바다를 만들고 네덜란드인은 육지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한 우물을 팝니다. 리더십의 대가 존 맥스웰의 강연회나 사인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가”를 질문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맥스웰은 그사람에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글을 쓰십니까? 자신들이 쓴 글이나 기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계속 글을 쓰라고 격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실제로 글을 써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주제이든 좋으니 먼저 글쓰기를 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짧은 글이라도 쓰기 시작해야 한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게 시작해서 점점 커져 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삶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먼저 작은 일부터 믿음을 심어보아야 합니다. 작은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되면, 더 큰 일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지금 당장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부터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훌륭한 믿음의 성도는 현재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소소한 일들이야말로 내가 믿음으로 정복해 나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눈 앞의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자가 세계와 열방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