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소개하는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소유한 우리 성도들이 한번 쯤 접해도 좋을 책입니다.
"현대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저술한 남경태 선생님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다양한 책들을 편찬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철학의 많은 뿌리들이 니체나 마르크스와 결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대철학을 읽을 때는 사상적 뿌리를 고려해서 보다 객관적으로 읽으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함과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진리를 추구했는지를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현대인들이 예수님의 진리에서 벗어나 현재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노력의 산물입니다. 특별히 현재 절판이 된 서적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요약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중간 중간에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달아놓은 *표식은 일종의 개인적인 주석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글
철학은 철학자의 문턱을 넘어 현대의 일상생활의 공간 속으로 홍수처럼 밀려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언제나 현대는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현대의 정체를 밝히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다면 뭔가 생각할 수 있는 재료들이 생기지 않을까? 이책은 그러한 커닝을 위한 안내서이다. 이책의 인물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 연관이 없음에도 놀라운 동시대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을 동시대성으로 읽는 일일 것이다.
칼마르크스: 잉여가치 - 이윤을 낳는 황금거위
물건의 가격을 정하는 곳은 공장이다. 공장의 가격을 공장도가격이라고 부르며 물건에 유통마진이 붙는 것은 상식이다. 공장도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생산원가이다. 여기에 제조이윤이 붙는다. 이 이윤에 직원들의 월급, 자신의 몫을 챙기고 세금도 납부한다. 여기에 다른 경쟁사들과의 가격경쟁이 있다. 그래서 제조업자는 평균적인 이윤율로 이윤을 정한다. 생산원가가 만원이고 이윤율이 20퍼센트라면 12,000원의 가격이 책정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윤은 원가에 붙이는 액수가 아니다. 이윤은 상품을 원가 이상에 판매하는데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판매자인 동시에 구매자이다. 따라서 판매자로서 얻는 것은 언제나 구매자로서 잃게 된다. 이것을 전사회적으로 일반화하면 판매자로서 얻은 이득의 총액은 구매자로서 잃은 손해의 총액과 같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이윤이 생겨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윤은 어디서 오는걸까? 마르크스의 말에 의하면 이윤은 원가대로 판매해도 생긴다.
'쓸모'와 '다른 선물'은 가치의 두 얼굴이다.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다른 것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가 상품의 가치이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고 말한다. 사용가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질적 속성을 말한다. 교환가치는 자신의 상품을 다른 상품과 얼마정도에 바꿀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양적 속성을 말한다. 소비자에게는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가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중요한 것은 교환가치이다. 교환가치는 한 상품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을 뜻하기 때문에 경제학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교환가치를 가치라고 줄여서 부른다. 즉 질보다 양을 우선시 하는 것이다.
교환가치는 크기 즉 양을 측정할 수 있다. 상품들이 교환되는 비율은 무수히 많은데 상품의 교환은 서로의 가치가 같을 때 이루어진다. 마르크스는 교환가치의 크기는 "다양한 상품들과의 다양한 등식을 하나의 전혀 다른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돈은 "하나의 전혀 다른 형식"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절대적인 가치기준이 되지 못한다. 돈은 어느 상품보다도 교환하기 쉽기 때문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하나의 전혀 다른 형식이란 바로 노동이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노동이 투여되어야만 한다. 현대에 기계를 통한 생산이 늘고 있지만 기계란 노동이 축적된 결과이다. 마르크스가 뜻하는 노동의 질적개념은 숙련도나 노동의 강도에서 사회적으로 일정수준을 이루는 평균적인 노동을 뜻한다. 노동의 양적 개념은 노동시간이다. 이렇게 상품의 가치를 노동시가간으로 환원하면 이윤이 생겨나는 비밀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 과거의 정부(근대)는 노동의 상한선이 아니라 하한선을 정했다. 임금이라는 대가를 받는 한 노동도 하나의 상품이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팔고 임금을 받는다. 이것은 시간으로 결정된다. 노동자는 그 가족이 생활하며 자신의 노동력을 훈련하고 개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된다. 이 노동을 필요노동이라고 하며, 노동력의 가치는 이 필요노동 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본가의 입장에서도 노동력은 하나의 상품이다. 자본가는 다른 상품처럼, 자기 마음대로 이용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 노동력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결과 노동자는 필요노동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되고 자기 노동력의 가치 이상을 생산하게 된다. 노동자가 일하는 시간과 노동자가 가진 노동력의 가치는 차이가 난다. 초과노동시간은 잉여노동 시간이고, 이 때 노동자가 생산하는 가치가 잉여가치이다. 이 잉여가치가 사장에서 판매되어 현실적인 이득이 되면 이윤이 되는 것이다. 다라서 자본가는 상품을 생산할 때부터 상품과 함께 생산되는 것이다. 자본가가 이윤을 조개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은 생산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산된다. 잉여가치는 모두 자본가의 몫이 되어 이윤이 발생하며 재투자와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잉여가치의 생산이 자본주의를 번영시킨 결정적이 동력이다. 사용가치의 주체는 인간이지만 교환가치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상품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인간은 숨고, 새로운 주체인 상품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본주의 특유의 물신성, 비인간성이 주체의 해체와 재구성을 하게 한다. 철학적으로 마르크스의 작업은 본질에 대한 관심이라는 전통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동시에, 상대성으로 시각을 전환하는 탈전통적 요소를 품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단점을 발견하고 노동을 하나의 가치로 발견한 것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노동을 시장과 자본에 대한 절대가치로 삼고, 정쟁의 무기로 삼음으로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노동이 절대가치인 공산주의는 이미 그 막을 내린지 오래이며 자본주의 역시 노동을 대치할 수단을 간구하게 만들면서 생산의 주체로서의 자리를 잃어버릴 위기에 초래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권력의지 - 세상에 진리는 없다.
니체는 '도덕'이나 '진리'와 '이성'이라는 물음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는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질문은 오히려 불명확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학문에서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기본이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을 대상으로 삼아야만 했다. 그래서 인식의 주체인 내가 인식의 대상인 무엇을 냉철한 이성으로 관찰하고 검토하고 분석해서 답을 얻어야만 한다. 그 답을 얻었을 때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주관'이나 '의도'가 섞이면 불순한 앎이며 객관적인 진리가 되지 못한다. 객관적 앎을 위해서 수많은 학문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철학적 주제로 삼아 왔다. 그러나 냉철하게 분석해보면 그렇게 얻어지는 앎이란 없다.
형식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은 세가지이다. 첫째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 같이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둘째는, 속성을 말한다. 셋째는 그에 대한 예를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 모두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알고보면 세가지는 모두 개념 속에 있는 뜻일 뿐이다. 즉 동어반복(tautology)인 셈이다. 니체는 언어의 환상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모든 언어는 주어와 술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니체는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누가 진리를 묻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묻는 것은 질문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질문 속에 포함된 의도, 의지를 읽어내는 것이 그 물음과 연관된 지식과 인식의 꾸러미, 즉 계보를 추적하는 일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런 질문방식을 계보학이라고 부른다. 계보학적 질문에는 단일한 대답으로 응할 수 없다. 의도를 파악하는 일은 자신의 계보를 내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계보학적 물음에는 이미 그 속에 힘 대 힘의 관계, 가치, 의지가 내재하고 있다. 언제나 가치중립을 외치며 가치판단을 뭔가 불순하게 보는 전통 철학은 오히려 그 근엄한 태도 뒤에 모종의 가치를 숨기고 있으므로 오히려 불순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특정한 방향성을 표방하며, 힘이나 가치를 지닌 물음이다. 그 힘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모종의 의지이다, 그래서 니체는 이것을 힘의 의지, 즉 권력의지라고 부른다.(권력이라는 것은 정치권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적당한 말이 없어서 생기는 번역 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지는 심지적인 의지와는 다른 것이다. 일상적인 의미의 의지는 행위주체가 자기 행위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유의지는 권력의지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다. 니체는 권력의지에서 인격적인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누가 진리를 말하는가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 그 물음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힘의 관계, 의지와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권력의지는 일종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지를 중심으로 하는 니체의 일원론은 근대 철학의 이원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근대 철학의 뿌리는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이 유명한 명제는 이원론의 시작이다. 의심할 수 없는 최후의 나를 인식주체로 삼음으로서 근대 철학은 성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이 근대철학의 이원론에서 나온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나' 없이 '생각한다'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는 동어반복으로서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니체는 근대철학에 대한 불신을 던졌다.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확고하게 구분하고 주체가 대상을 관찰, 분석, 검토하는 근대 철학의 주체가 대상을 관찰, 분석, 검토하는 근대철학의 방법은 잘못되었다, 주체란 없다, 모든 비극은 애초부터 없던 주체를 실체화한 데서 시작한다. 주체의 이성, 앎, 영혼, 자유의지, 자아, 행위의 동기는 모두 허구이다. 심지어 자연법칙으로 여겼던 인과율조차도 인습적인 허구라고 말하였는데 가히 역명적인 발상이었다.
진리 역시 진리는 없고 진리의지만 있다고 말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근대철학은 이성을 중시하고 감각을 무시한다. 그래서 현상계 너머 진정한 세계, 요단강 건너 참된 삶이 있다는 것이 종교의 가르침이며 약자의 도덕이다. 그러나 니체에 의하면 이상세계는 날조된 것이며 오로지 현상세계만이 유일한 세계이다. 즉 이성은 세계를 인식하는 훌륭한 도구가 아니고 오히려 권력의지의 단순한 도구이다. 세게는 이성이 세운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지를 축으로 하여 영원히 돌고 도는 생성의 무대이며 언제나 과정으로만 남아 있다. 니체는 근대 철학을 완전히 두집어 놓았다. 니체의 철학은 반이성의 철학, 실체의 철학이 아닌 관계의 철학, 정적인 철학이 아닌 동적인 철학, 계몽의 철학이 아닌 허무의 철학,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이다. 충동이나 감각과 같은것으로 여겼던 권력의지가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니체가 보는 세계는 개별적인 실체들이 자리잡은 원자적 무대가 아니라 힘들로 가득차 있고 힘들이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생성과정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실체(이성)가 힘(권력의지)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실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세계는 힘의 작용으로 인해 실체들이 결합과 해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영원회기 속에 있다. 니체로부터 시작되는 탈현대 사상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하나의 결정요인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를 거부하는데, 막상 니체는 권력의지라는 단일 기반으로 일원론을 전개한다는 점이 아리러니이다. 니체의 일원론은 종교와 헤겔의 절대정신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일원론과는 다르다고 해야 한다. 덕분에 니체는 체계가 없는 철학자는 비판을 받는다.
*어떤 식으로든 도달할 수 없는 이성계보다는 현상계에 집중한 니체는 인간 세계를 연구한 철학자이다. 니체는 이원론적 체계를 부정하고 일원론을 주장하였지만 종교와 절대정신에서 나타나는 신과 도덕을 거세함으로서 현상계를 권력의지라고 하는 힘의 장, 즉 욕망이 다스리는 세계만 남겨두었다. 이로서 그의 철학은 이성은 사라지고 권력의지의 세계가 되었다. 그의 철학을 비판하자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보다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인간의 의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로 타락해 가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는데 대제사장(종교)과 빌라도(권세)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권력의지를 드러냈다. 니체는 우리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기 전 어둠의 상태만을 우리의 세계로 인식하고자 했다. 니체는 그렇게 이성과 절대성을 부정함으로서 철학적인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부정하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무의식 -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우리 안에 자기도 모르는 부분,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다. 의식의 쌍둥이같은 존재이면서도 의식의 뒤편에 감춰져 있는 부분이 무의식이다. 그래서 의식의 뒤편에 있는 무의식이 드러날 때마다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무의식을 처음 발견하여 연구한 사람은 의사이면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이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행위가 의식에서만 이루어진다고 해도 문제이다. 모든 일상의 생활들을 묵묵히 처리해주는 무의식은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준다. 무의식이 이따금 의식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때마다, 자신의 추함을 발견함으로서 몸서리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최면 때문이었다. 프로이트는 최면을 걸어서 의식을 빼앗아야만 정체를 드러내는 기억을 무의식이라고 불렀다. 의식을 잃는 것은 죽음과 기절 또는 잠드는 것이다. 죽음은 의식과 무의식 모두가 사라지는 것이다. 잠이 들면 꿈을 꾸는데 이 꿈은 의식의 소유자가 선택하고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 여기고 꿈의 상징을 해석하고자 했다.
잠재 의식과 무의식은 구별해야만 한다. 잠재의식은 전의식(前意識)이라고도 하며 의식의 일부로서 보조하는 역할을 하지만 무의식은 의식에 억압받고 있으므로 의식에 대립적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무의식은 의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아무리 강해져도 의식으로 전환되지 않는 잠재의식이 있는데 이를 무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처럼 의식과 무의식은 함께 있지만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이다. 무의식은 드러나지 않지만 의식보다, 더 체계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사실은 무의식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구나 무의식은 의식처럼 나름대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욕구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 이전에도 무의식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무의식에 대해서 연구할 생각이나 방법을 알지 못했다. 무의식은 의식을 통해서 접근해야만 하기 때문에 무의식은 비체계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 그의 숙제였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두가지로 나뉘어진다고 보았다. 하나는 충동과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이드(id:라틴어의 그것이란 뜻으로 정체를 밝히기 어려운 것을 지칭함)이다. 또 다른 하나는 도덕적 사회적 질서가 내면화되어 있는 초자아(superego)로서 이드를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 이 두가지 무의식은 서로 다투고 대립하는 긴장관계에 있는데 이것이 지속된다면 견디지 못하고 고장이 나게 된다. 이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조절하는 또 다른 요소가 자아(ego)인데 자아는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다. 프로이트는 이드의 에너지가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의 극단적인 예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이다. 철학자가 아닌 정신과 의사가 발견한 무의식은 정신분석학 뿐만 아니라 철학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르크스가 인간존재의 물질적 토대를 분석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들 두 유태인들은 20세기 지성사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데카르트 이후로 자아(모든 것을 의심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의 동일성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자아를 선험적으로 인정한 토대 위에서만 근대의 철학과 학문은 가능했다. 그러나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로 나도 모르는 나의 행위가 있다는 사실이 인간 주체를 분열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의식을 기준으로 주체를 형성한 근대적 관점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무의식을 정립하면서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갖게 했다. 구조주의자들은 '구조'라고 보았으며,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식분석학자 라캉은 '언어'라고 보았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에 활동했던 만큼 헬름홀츠의 에너지 이론등 물학적 성과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므로, 그후의 철학자들은프로이트에게서 기계론적 의미를 거세시키고 있다. 그러나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는 숱한 빈난과 반발에 시달렸다.
* 헬름홀츠의 에너지 이론이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수학적 공식으로 제시한 것이다. 헬름홀츠는 에너지의 보존 뿐만 아니라 자연 능력 또는 힘이 파괴될 수 없으며 변형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에너지 보존이라는 작업틀 안에 자연 능력의 변환을 포함시킨 점과, 이런 식으로 보존되는 양들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지시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보다 헬름홀츠에게 중요한 점은 유기체들에게 나타나는 힘들이 비유기적 자연에서 작동하는 힘이 수정된 결과라고 보았다. 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20세기 들어와 질량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후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이 등장하는데 20세기의 처음 30년을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이 물리학의 양상을 크게 바꾼 것을 말한다. 상대성이론은 원자 속에서 전자 운동, 태양계에서 행성 운동 및 우주의 은하운동을 논하는데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양자론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창조적 연구의 종합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저서로 G.가모프의 물리학을 뒤흔든 30년이라는 저서가 있다. 기계론적 의미란 모든 현상을 자연적인 인과 관계와 역학적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프로이트 이후의 철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의식과 무의식을 단순한 역학관계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폭넓은 연구가 진행되어오면서, 삶을 지배하고 다스리는데 악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이 니체의 권력의지에 영향을 준다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의식과 절대성이 사라진 세상은 카오스 그 자체일 것은 자명한 일이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 기표와 기의 - 언어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언어가 나의 주인이라니?
성경에 따르면 고대에는 인류의 언어가 하나였다고 말한다. 인간의 오만이 하늘을 찔러 벌을 받아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게 되자 같은 언어를 사용한 사람들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언어의 기원이 어찌 되었든 언어마다 문법체계와 단어들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각 나라의 언어가 다양한 것은 알지만 각각의 언어 안에도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발음한다는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결국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 차이점을 중요하게 말하는 사람이 구조주의 언어학을 창립한 소쉬르이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도 서로 다른 발음을 하는 것을 소쉬르는 파롤(parole)이라고 부른다. 이 다양한 파롤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랑그(langue)라고 부른다. 번역하자면 파롤은 발언이고 랑그는 언어라고 볼 수 있다. 파롤은 말하는 사람의 일회적인 발언이다. 발언은 말하는 사람마다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랑그는 변하지 않는다. 랑그가 없으면 파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랑그는 갖가지 특수한 형태의 파롤을 가능하게 해주는 불변의 공통요소, 즉 파롤의 수면 밑에 있는 구조이다. 랑그가 본질이라면 파롤은 현상이다. 본질이 없는 현상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본질은 현상을 통해서 그 모습을 드러내며, 랑그도 그 자체로는 드러나지 않고 반드시 파롤의 옷을 입고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난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영어로는 'I love you'라고 하는데 둘 다 파롤이지만 서로 다른 랑그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영어의 랑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I love you'라는 파롤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는 우리말과 영어의 문법체계만이 아니라 말을 사용하는 문화적 배경의 차이도 존재한다. 즉 랑그란 단순히 문법체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너무나 당연한 랑그와 파롤의 구분을 소쉬르가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랑그와 파롤이 전제되어야만 언어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둘의 구분이 되지 않으면 언어학은 어학으로 전락한다. 각각의 언어를 파롤로 모든 언어의 토대에 놓은 공통구조를 랑그로 묶으면 언어학을 정립할 수 있다. 따라서 랑그 파롤의 구분은 소쉬르 언어학의 출발점일 뿐 아니라 언어학 자체의 기반이 되는 셈이다. 소쉬르는 언어학자이므로 랑그를 기초로 해서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나선다. 소쉬르는 "언어는 과연 그것이 가리키는 지시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란 질문을 던진다. 의성어나 의태어 또는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는 말과 지시대상의 관계를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 '개'나 영어의 'dog'는 실제 개와는 관계가 없다. 이와 같이 마음, 파란색, 깨끗함이라는 추상적인 말들은 실제 지시대상과 관계가 없는 언어기호이다.
전통적인 사고에서, 언어와 지시대상이 일치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지만, 언어기호와 그것을 가리키는 대상을 별개로 보는 것은 혁명과도 같은 발상이었다. 전통적인 견해에서 고정불변으로 여겼던 정의(定義)의 개념이 해체되었다. 마음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 몸, 지식, 감정, 의지, 정신활동 등의 말들을 이미 알고 있어야만 한다. 결국 사전에서 어느 단어를 찾아보아도 말들이 서로 돌고 돌 뿐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는다. 소쉬르를 통해서 언어기호의 본질적 의미, 즉 정체성은 그전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언어기호 자체에 정의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기호는 다른 요소들과 맺는 관계와 차이로써만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소쉬르는 언어기호를 기표(記表, signifiant시니피앙)와 기의(記意, signifié시니피에)로 나눈다. 기표란 '표시하는 것'이며 기의란 '표시되는 것'이다. 기표가 언어기호라면, 기의는 언어의 의미라고 보면 된다. 전통적인 해석에서 기표는 당연히 기의와 일치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언어기호는 사실 그것이 가르키는 대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휘는 나름의 기원을 가지고 발전해 온 것들도 많지만, 소쉬르는 언어가 어떻게 발생하고 발달했는가를 문제시하지 않는다. 소쉬르에 따르면 그것은 언어의 역사, 즉 통시성(diachronie)인데, 언어학에서 중요한 것은 통시성이 아니라 언어의 규칙과 체계, 즉 공시성(synchronie)이기 때문이다.
소쉬르의 언어학이 혁명적인 이유는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 즉 언어기호와 지시대상이 서로 무관하다는 점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전통철학은 획일성의 철학이며, 동일성의 철학이며, 실체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소쉬르의 언어학적 성과를 반영하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동일성보다는 차이가, 실체보다는 관계가 훨씬 중요해진다. 언어기호의 차이는 각각의 언어기호 속에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 의해 정해진다. 또한 언어기호는 그 속에 고정된 의미를 굳건히 끌어안고 있는 실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차이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 뿐이다. 실체라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와 -같은 것은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언어라는 랑그는 기의와는 무관한 기표들로 이루어진 그물이다. 파롤은 발언자 개인이 주체가 되지만, 랑그는 사회적으로 집합적으로 약속된 언어의 규칙체계이므로, 랑그를 이용하려면 각 개인은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 기표와 기의는 무관하므로 각 개인은 실제 사물을 통해서 랑그를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도 없다. 여기서 인간과 언어의 전통적인 관계는 역전된다. 인간은 랑그를 통해서 파롤을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랑그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라 마지 독자적인 생명을 지닌 존재처럼 행동한다. 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주인이다. 모든 판단이나 사고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언어구조 속에 내재해 있다. 누구나 하나의 발언이나 사고행위를 할 때 암묵적으로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언어구조 속에 뛰어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을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언어구조를 중심에 갖다 놓았다는 점에서 소쉬르는 구조주의의 기반을 다진 사람으로 평가된다. 소쉬르 이후 언어학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과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구조주의 언어학을 형성하면서 후에 프랑스 파리의 기호학파 창시자인 그레마스의 행위자 이론에 영향을 끼친다. 그레마스는 행위자로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중요하다. 대상은 주체가 행동하도록 하는 그 무엇인데, 발신자는 주체에게 대상을 제시하고 수신자는 주체가 대상을 획득하면 그것으로 이익을 얻는다. 이 행위자 모델은 스토리 상에서 행위자들의 목표와 기능들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기호학, 구조주의 문학 연구자들에게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담론 연구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행위자에 대한 다원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에드문트 후설 : 판단중지 - 진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
눈으로 확인된 사실만을 믿으려는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이들이 실증주의자들이었다. 심오하고 진지한 태도의 선문답을 일삼는 사이비 철학자들에게 실증주의란 만병통치약이다. 실증주의자들에게 신비주의는 모두 사이비이다. 그러나 이 실증주의자들이 눈으로 확인하는 의식과정을 당연하거나 확실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철학자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의식의 경험을 하나의 경이라고 했다면 후설은 더 나아가 우주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라고 말한다. 실증주의에서 의식을 당연하게 보는 것은 의식주체와 의식대상을 칼로 자르듯이 완전히 분리하기 대문이다. 나는 주체이며 사물은 대상일 뿐이며, 이 주체와 대상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유리벽이 있다. 나를 주체로 나외의 것을 기타로 보는 사고 방식은 자연과학의 발달에 크게 공헌을 했다. 생각하는 나는 가장 확실한 주체이며 모든 것이 대상이 되기에 실증주의야말로 데카르트가 확립한 근대 철학의 최종 결과물이다.
후설에게 철학은 가장 엄밀한 것을 다루는 '엄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차원의 철학자는 데카르트와 칸트였다. 그래서 후설은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근대 철학의 제 1차 전환으로, 칸트의 선험철학을 제 2차 전환으로 규정한 다음, 철학을 '엄밀학'으로 전환시키는 최종 단계를 완수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았다. 철학은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문제를 삼아야 함에도 실증주의자들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과정)를 당연시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실증도 추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장 혐오하는 형이상학에 빠지고 말았다. 실증주의에서 당연시되고 있는 '의식'이야말로 사실 가장 해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자 신비로운 현상, 그 자체로 커다란 경이이다. 실증주의에서 경험의 주체와 대상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당연시 했으며, 종교에서 신이 인간 경험의 실질적인 주체라고 보았다. 실증주의에서는 대상이 의식의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후설은 이 전제를 의심하였다. 가장 명확한 외부 대상인 사물도 의식과 전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 대상인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다라서 인식은 달라진다. 외부의 대상은 언제나 본질의 일부만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본질의 전부인 '절대적인 지식'은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가? 후설은 그것이 의식의 바깥이 아닌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증주의에서는 의식을 외부 대상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실체처럼 취급했지만, 후설에게 의식의 존재방식은 외부 대상과는 전혀 다르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다. 의식은 스스로 완전무결한 실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텅 비어 있고 항상 어떤 외부 대상과 관계하는 한에서만 존재하는 미완성의 것이다. 미완성이 완성되려면 무언가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의식이 대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지향성이다. 이제 의식과 외부 대상은 실증주의에서처럼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연구하고 가공할 수 있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식과 대상은 지향성으로 한데 묶여 그 자체로 경험이라는 사건을 이룬다. 후설은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향성의 한쪽에 있는 의식을 노에시스(사유라는 그리스어)라고 부르고 다른 쪽에 있는 대상을 노에마(사유된 것)이라고 부른다. 즉 노에시스-노에마는 지향성으로 묶인 존재이다.
후설은 데카르트가 회의함으로서 얻은 선험적 자아(의심하는 자아)를 정신적 심리적 실체로 고정시켜 이를 자기 완결적 대상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또한 칸트는 감각이라는 1차적 경험에 이미 순수 직관이라는 일종의 판단작용이 결부되어 있음을 밝혔으면서도(이것은 지향성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에는 이를 질료와 형식으로 분리시켜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을 확립했다. 칸트의 이원론에서는 각각의 의식과정이나 경험에서 어느 정도까지가 외부 대상의 반영이고, 어느 정도가 의식주체의 투영인지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후설은 지향성으로 주체와 대상을 한데 묶어서 그 자체로 이루어지는 경험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밖의 모든 것과 분리시켜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곧 후설의 유명한 방법론인 판단중지이다. 주체의 관점에 따라 본질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면, 남는 것은 두 가지 방향밖에 없다. 하나는 영국의 철학자 흄이 말한 것처럼, 주체가 파악한 대상의 부분적인 모습은 오로지 주체의 연산작용에 의해서 조작된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후설과 같이, 주체의 경험을 대상과의 관계에서 검토하는 방향을 포기하고 우선 '의식에 주어진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 의식과 대상을 지향성으로 묶는 작업이 필요한데 후설은 이 주체와 대상의 '한데 묶기'를 '괄호 치기'라고 부른다. 좀더 철학적인 용어로는 현상학적 환원이라고 부르는데, 경험을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시킨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이 방법은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외부 대상의 본질 추구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후설은 본질추구의 공식만 제시할 뿐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계 설정을 한 점에서 전통 철학에서 한걸음 비켜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블라디미르 레닌: 약한 고리 - 세계대전을 조국의 내전으로 전화시키자
공비라는 뜻은 공산 비적(匪賊)의 준말이다. 일제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는 독립군들을 딱히 지칭할 이름이 없던 일제의 검찰이 공비라는 말을 만들어 썼다. 그러나 북한 게릴라를 공비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공비라고 부른다. 같은 사건을 두고 나라에 따라 평가와 용어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러시아도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이 전쟁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면서 방어전쟁으로 정의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레닌은 러시아의 참전을 반대하였다. 19세기는 제국주의의 시대이다. 자본주의가 독점단계로 접어들면서 생겨난 잉여생산물을 이윤으로 실현하려면 식민지 시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세계열강들이 모든 땅들을 점령함으로서 무주공산이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중국에 먼저 영국이 불평등 조약을 맺으면서 열강들이 몰려들어 불평등조약을 맺었다. 독일은 산업생산력에서 영국을 제치고 선두로 나선 경제대국이 되면서 식민지 시장이 필요했다. 제국주의 후발주자였던 독일이 일으켰던 전쟁이 세계 1차 대전이었다. 즉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벌어진 최후의 영토재편 전쟁이었다. 이러한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할 수 없다. 레닌은 이러한 전쟁의 참전을 반대한 이유였다. 제정 러시아는 후발 제국주의 나라였으며, 가장 후진국이었다. 러시아 사회주의 세력 중에서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러시아의 참전을 지지했다. 사회주의 국제단체인 제2인터네셔널도 분열되고 말았다. 레닌은 전쟁 반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키자고 주장한다.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슬로건은 독일의 사회주의자로서 레닌의 동지였던 카를 리프크네히트나 로자 룩셈부르크 등도 야연실색하게 되었다. 이 터무니없는 슬로건에는 레닌의 깊은 수 읽기가 내재되어 있었다. 레닌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한 단계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모순도 제국주의 단계에 이르러 최고도로 성숙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은 바로 생산은 사회적인데 소유는 사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은 수공업적 생산과는 달리 고립된 생산자가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분업을 활용한 사회적 생산인데, 그 반면에 소유는 점점 독점기업과 독점자본가의 수중으로 집중된다는 이야기다. 이 모수이 바로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원동력이다. 소유가 독점화되면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작이 힘을 잃게 된다.(케인스는 이를 유효수요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독점자본가들은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시장개척을 위해 독점자본가들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결과가 곧 전쟁으로 표현된 것이다. 최고로 발전한 단계는 곧 최후의 단계라는 말과 통한다. 그래서 레닌은 제국주의 단계를 자본주의 최후의 단계로 규정한다. 그다음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로 이행하려면 혁명이 일어나야만 한다. 마르크스의 시대에 선진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다. 사회주의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을 거쳐 일어나는데, 선진자본주의 나라는 이미 부르주아 혁명을 겪고 나서 자본주의화 되었기 대문이다. 그러나 레닌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에 들어서면서 부르주아 혁명은 더 이상 의미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다,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를 생략한다면 사회주의 혁명으로 곧장 향해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혁명은 어디에서 일어나야 하는가? 제국주의화한 선진자본주의 나라도 아니며 제국주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나라는 더욱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 쇠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이루는 러시아이다. 러시아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당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혁명의 주체이다. 혁명의 조건과 주체가 갖춰진 러시아는 제국주의라는 튼튼한 사슬이 끊어질 수 있는 가장 약한 고리이다. 혁명의 주체 요인을 부각시키는 것은 레닌 특유의 정치주의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비롯되었다. 마르크스가 혁명의 경제적 조건을 강조한 데 비해 그는 혁명의 주체를 강조한다. 레닌에 의하면 혁명은 오는 것이 아니랄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서 오히려 내전으로 전환시켜 혁명으로 향한다는 레닌의 슬로건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니었다.
레닌의 통찰대로 1차대전 막바지인 1917년 제정러시아는 무너지고 러시아에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레닌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를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로 규정한 레닌의 혁명이론은 혁명의 객관적 조건보다는 혁명주체에 더 큰 비중을 둔 측면이 있다. 그 점 때문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혁며은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우선 사회주의 혁명과 국가의 문제가 새로이 대두되었다. 소비에트 혁명은 러시아 한 나라만을 배경으로 한 혁명이었다. 마르크스 주의에서는 계급이 중시되고 국가는 별로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는데 소비에트 혁명은 계급보다는 국가를 우선으로 하는 일국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결국 일국 혁명에 반대하여 프롤레타리아아트 국제주의 원칙에 투철할 것을 주장한 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가 등장한다. 혁명의 성공 이후 신생국 소비에트 러시아는 코민테른을 결성하고 동구권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지원하여 국제주의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처음부터 실을 잘못 꿰어 생긴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레닌의 의도와 달리 소련과 동구권은 형제국이 아니라 주종죽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후진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성숙되기 전에 사회주의를 선택했으니 생산력이 문제였다. 그래서 소련은 혁명 이후 생산력을 증대해야 한다는 과제를 멍에로 짊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70년 뒤에 사회주의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은 출발할 때 짊어진 멍에와 무관하지 않다. 혁명은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완료되지만 건설은 이후 계속되는 과정이다. 혁명은 끝이 있지만 건설은 끝이 없다. 레닌은 건설의 프로그램을 실천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탈린을 후계자로 삼지 말라는 그의 유서가 공개되었지만 스탈린은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수 많은 숙청을 통한 무자비한 유혈극이 벌어지고 경제적으로 신생국 소련을 계속 '약한 고리'로 남겨두게 되었다.
*소련에서 일어난 혁명은 사실 마르크스의 주장과는 완전 다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극도의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사회주의로 전환된다고 말했지만 소련은 농민들에 의해서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의 사회주의 혁명은 지주와 농노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맹점과 노동의 가치를 발견한 마르크스의 통찰은 귀한 것이지만, 그의 이론과 추종자들이 맺은 열매는 지나친 이상주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