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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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언어 게임 -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마라

 

삶은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질문은 진부한 물음들이기는 하지만 결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이것은 분명히 철학적인 질문들이며 전통 철학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보편적인 정답은 아무도 내지 못했고 앞으로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나름의 해답을 발견했고 또 계속 발견해가고 있다. 그 대문에 지금 우리의 철학적 상식으로는 그런 질문들에 답하는 것을 철학적 과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답을 구하지 않으려는 철학자들도 있다. 심지어 그것이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논리실증주의 또는 분석철학이라는 계열의 철학자들이다. 전통적인 철학주제인 인간과 삶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 철학적 가치가 없다는 혁명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다. 이런 철학의 정점에 있는 비트겐슈타인은 함축적인 말을 남겼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하라.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서 먼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최대의 주제는 언어이다. 비트겐슈타인은 30년 간격을 두고 출판한 두 권의 철학 저술에서 각각 두 가지 상반된 언어관을 서술한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 사상의 일관성을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 스스로 전기의 입장을 후기에서 부인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전기에서 언어를 실재 세계에 대한 그림으로 보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실재 세계와 그림처럼 닮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를 사물의 총체가 아닌 사실들의 총체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그림을 생각할 때 새나 돌과 같은 사물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언어란 낱말이 아니라 문장을 뜻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명제를 철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새가 난다'. '돌을 던진다' 등의 사실을 세계로 보고 이것을 언어가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러셀의 제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논리원자론을 받아들여 모든 명제들을 요소명제로 분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자의 성질이 물질의 성질을 정하듯이 요소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에 따라 그 명제가 세계에 대한 올바른 그림이냐, 그릇된 그림이냐가 정해진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그는 오늘날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T(true)와 F(False)로 이루어진 진리표를 고안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매일의 일상언어는 세계에 대한 충실한 그림이 되지 못할 뿐더러 참된 논리적 구조를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혼돈을 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진리함수적 논리 구조를 갖춘 이상 언어만이 세계를 참되게 기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철학은 일상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상적인 언어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가 실재 세계의 모습을 제대로 담고 있다고 보는 데 있다. 언어가 인간정신의 구제적이고도 객관적인 표현이며 언어와 세계는 동형 구조, 즉 자명한 대응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언어의 유일한 기능은 어떤 대상을 지시 혹은 서술하는 데 있으며, 따라서 한 언어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일치한다"고 말한다.  이런 입장을 취한다면 실재 세계를 보지 않고 언어구조만 살펴보더라도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철학의 본질과 임무를 명쾌히 밝혔으므로 그는 더 이상 철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철학계에 복귀하였을 때 그의 언어관에는 단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소쉬르의 언어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게 된 계기가 혹시 언어와 세계의 자명한 대응관계에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에서는 언어와 세계는 대응관계가 없고 오로지 차이에 의한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연관을 맺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는 낱말이 아니라 문장이며 그의 세계는 사물이 아니라 사실임을 상기한다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전기의 언어관에서 문제를 느끼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그가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믿었던 일상 언어에서 나왔다. 생활 속에서 흔히 말하는 '엄마, 나 죽네'등과 같은 언어들은 나타내는 사실이 없는데도 버젓이 쓰이고 있다. 사실을 나타내지 않는 언어가 세계의 그림이 될 수는 없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는 세계의 그림이 아니며, 언의 구조와 세계의 구조는 닮은 꼴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전기 입장과 같이 엄격한 논리적 사유의 틀을 통해서 언어를 보았던 것은 잘못이라고 자기 비판한다. 언어란 일상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이다. 이렇게 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적 관심을 전기의 이상 언어에서 일상어너로 추락(?)시키면서 발전시킨다.  언어의 의미는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을 비트겐슈타인은 '놀이'에 비유하여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언어 게임은 각각의 규칙과 용법이 있다. 어떠한 규칙과 용법도 언어가 사용되는 무수한 맥락과 용법,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할 수 없다. 따라서 언어란 단일한 하나의 정의를 내릴 수 없다.

 

 

한사람의 사상이 반전하는 예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데 비하면 자기 부정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들에 대해서 일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통 철학의 문제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속한다. 다만 전기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했지만, 후기에서는 그런 문제들을 제게하는 것 자체가 현 시대의 언어 용법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 시대의 생활양식이 그런 문제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으문제이지 답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병들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첫번째 저술로 철학계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자신의 과오를 번복할 줄 아는 올곧은 사람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구조언어학과는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그의 궤도 수정은 구조언어학이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유사한 점이 있다. 전기의 입장에서 그는 언어가 세계의 그림이며 반영이라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이는 곧 실재 세계의 구조가 언어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기의 입장에서는 정반대가 된다. 언어구조가 실재 세계에 관한 인간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언어가 모든 인식의 대상과 방법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언어를 떠나서 세계를 사유할 수 없다. 언어가 사유에 선행한다는 것, 언어와 그 지칭 대상은 서로 무관하다는 것은 구조언어학의 특징이다. 이는 조건인 동시에 한계도 되는, '같은 시대'라는 사실이 보여주는 위력이 아닐 수 없다.

 

 

안토니오 그람시: 헤게모니 - 혁명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세상에서 치뤄지는 시험은 정답이 있기 때문에 문제 속에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 개념이나 이름은 사실 그것에 해당하는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수학의 5+7=12라는 방정식은 좌우가 같기 때문에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 결국 시험은 실험이나 연구, 탐구가 아니기 때문에 새 것이란 없다.  짤은 분량의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적 명제를 요약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 사회질서가 붕괴하려면, 그 내부에서 발전할 여지가 있는 모든 생산력이 다 발전하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 또한 새롭고 보다 고도한 생산관계가 생겨나려면, 그 물질적 존재 조건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충분히 성숙하고 난 뒤에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인류는 항상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과제만을 설정하고 있는것이다.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제 자체는 항상 그것의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거나 적어도 최소한 형성과정에 있을 때에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사회구성체는 항상 자연사적 발전과정을 거친다고 말하던 마르크스의 지론으로서, 역사발전의 법칙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법칙성을 도식적으로 이해하면, 어떤 사회 다음에는 반드시 어떤 사회가 올 수 밖에 없다는 역사적 결정론에 빠지고 만다. 그람시가 헤게모니 개념을 도입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역사적 유몰론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혁명은 경제난에 허덕일 뿐 좀처럼 사회주의 국가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레닌 이후 스탈린의 소련은 무자비한 독재체제로 들어섰다. 더 크느 문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다. 세계 1차 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한 유럽 가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으로 제국주의는 치유받지 못할 커다란 상처를 입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1929년 경제 대공황이 오기전까지 오히려 더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경제대공황역시 몰락한 결과가 아니라 번영의 결과로 일어난 것이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낡은 사회에서 충분히 성숙되어야 새로운 사회질서가 생겨난다고 했는데 그러려면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제국주의의 변방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는데도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니가? 이 두가지 문제는 하나의 요인으로 해결된다. 러시아와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전혀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경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전통에 있었다. 우리의 경우 시민은 특정한 도시의 거주자를 연상 하지만, 서구에서는 일반국민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역시 시민이 발달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경우도 우리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서구의 역사에서 유럽으느 절대왕정을 거치면서 시민계급이 발달했으며, 공화정으로 정치체제가 바뀐 후에도 더욱 발달하여 두터운 인구층을 형성했다. 시민사회와 대두되는 것이 국가이다. 서구의 근대사는 시민사회와 국가가 서로 견제와 타협, 긴장과 조화를 이루면서 전개되어온 역사이다. 즉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폭발성을 체재 내로 받아들이고 순화시킬 수 있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국가는 폭력기구이다. 국가란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켜나가는 도구이며, 심하게 말하면 자본가 계급의 결정을 정책으로 실행하는 집행위원회 쯤으로 본다. 그러나 서구역사에서 시민사회가 맡아온 역할을 중시한 그람시는 국가를 그렇게만 보지 않았다. 국가는 보호의 경계를 이루며, 그 배후에는 시민사회라는 강력한 요새와 진지가 버티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시민사회가 나타나 위기를 극복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지배방식만을 취할 수 없다.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국가는 시민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국가 역시 최소한의 합의를 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그람시는 헤게모니를 사용한다. 국가는 일방적인 지배를 통해 세련된 방식으로 지배한다. 헤게모니 역시 기본적으로는 지배라는 뜻이지만 물리적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하는 지배와는 다르다. 헤게모니는 피지배자의 동의 또는 합의에 따르는 지배, 그람시는 특히 지적, 도덕적 지배라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헤게모니가 국가의 물리력을 포함하지 않는 개념은 아니다. 헤게모니란 폭력을 통한 단순한 지배와 더불어 지적, 도덕적 지배가 함께 얽힌 지배를 가르킨다.

 

 

헤게모니적 지배는 도덕적 측면을 포함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피지배계급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피지배계급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없다. 오히려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피지배계급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과 협상을 성사시키는 것이 피지배계급의 혁명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서구에서 자본주의와 더불어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헤게모니적 지배체제를 구축한 데 있다. 자본주의의 원리는 생산수단을 장악한 소수의 손에 부가 축적되는데 있으므로 민주주의와는 대립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헤게모니를 통해서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 성격이라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 완화되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자기 방어력도 일종의 혁명이라고 간주자여 자본주의의 소극적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국가 또는 지배계급만이 아니라 혁명세력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배계급의 지배전략이 세련되고 복합적인 것이라면, 그에 대응하는 혁명전략 역시 그렇게 구사해야 한다. 혁명은 일순간의 파국, 건설이 아니라 매우 느리고 끈끈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그람시는 이것을 기동전이 아닌 진지전이라고 말한다. 혁명의 전개에서도 헤게모니가 필요하다. 진지전은 단기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물리력이 우세할 때 초반에 승부를 걸 수 있지만 장기전은 아군의 정신 무장이 중요하다. 그람시는 혁명 세력에 대한 이념 교육과 정치 교육을 주장한다. 그 교육을 담당할 교사가 지식인이다.

 

 

마르크스는 미래의 공산주의 사회에 대해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독점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어느 분야에서라도 자신을 훈련시킬 수 있고, 사회가 생산을 전반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 고기 잡으러 가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판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마르크스가 고백한 말에는 적어도 혁명을 어떤 목적으로 삼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공산주의 사회의 세세한 제도와 특징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의 생활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고정된 목표가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 자체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람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혁명은 장기전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대중의 의식을 전환시키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된다. 혁명은 폭발이 아니라 서서히 일어난다. 그러나 혁명이 언제 이루어질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확답을 줄 수 없다. 따라서 레닌은 혁명의 준비과정이라 할 만한 것을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혁명 이후의 사회를 모색한 것이 아니라 혁명을 성취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과정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혁명론은 목적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혁명'이다. 그람시의 혁명 역시 미래사회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역사의 법칙성을 강조한 것을 통해 그람시는 오히려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혁명, 목적을 배제한 과정으로서의 혁명, 내일을 생각하기 이전에 오늘을 살아가는 혁명을 구상했다고 볼 수 있다.

 

 

※ 이미 헤게모니지배에 대한 혁명은 혁명을 위한 혁명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마르크스는 혁명의 조건으로 어느 사회의 질서가 붕괴하려면, 내부에 발전할 여지가 있는 모든 생산력이 다 발전한 뒤에야나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는 낡은 사회의 물질적 조건이 충분히 성숙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부의 평등한 분배는 부를 축적하는 사회적  질과 양이  성숙해져여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렇지 않다. 단지 기존의 질서와 지배구조를 헤게모니적 지배로 치부하여 해체하고 부숴트리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는 운동일 뿐이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 나찌의 궤벨스처럼 선전과 선동을 일삼고 과정으로서의 혁명만 부르짖는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혁명이 끝난 뒤에 건설되어야 할 미래 사회는 없고 단지 현재에 대한 끊임없는 해체와  투쟁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미래를 가져오지 못하고 분열과 다툼만 초래함으로 디스토피아 사회만 건설할 뿐이다.

 

 

자크 라캉: 욕망 - 태양 아래 내 것은 없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인식주체인 나와 인식대상인 나가 분리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렇게 둘로 나누었다가 하나로 합하는 것은 의식선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무의식의 경우라면 사태는 달라진다. 내가 아는 나는 의식된 나일 뿐으로 무의식의 나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는 말은 단순히 듣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기에 자크 라캉(Jaques Lacan, 101~81)은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보았다.

 

 

무의식을 발견한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는, 의식적 자명성(주: 자신의 생각을 기초로 하는 철학; 인식론)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근대적 인간관을 근본적으로 회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의식이 아닌 다른 곳에 인간행위의 진정한 기초가 있음을 밝히려고 했던 프로이트가 기대한 학문은 의학과 물리학이었다. 프로이트를 이어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라캉은, 소쉬르에게 배운 언어학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정신분석에 임하고자 했다.  라캉은 언어학과 정신분석학을 결합시킴으로서 욕망이론을 개인의 성격과 인성 분석에서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넓혀 나갔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 이것이 라캉의 기본 사상이다.  언어활동은 무의식의 조건이며, 인간의 언어활동이 없다면 무의식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언어란 총체적인 언어, 즉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수단 전체를 뜻한다.  라캉은 언어학을 도입함으로써 욕망, 억압 등의 의미를 사회적 상징체계들이나 문화, 제도 등과 연결시킨다. 프로이트의 의학적 혹은 개인 심리학적 욕망이론을 라캉은 언어학과 결합시켜 사회철학적인 의미로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동양에 비해 유난히 시각적 효과에 집착하는 서양 문화에서는 거울이 그만큼 중요하며 신화적인 역할을 한다. 백설공주가 불행을 겪게 되는 일도 거울에서 시작하며, 중세 설화에 등장하는 마녀의 주무기도 빗자루라는 운동수단과 수정구술이라는 시각장치다. 그런데 라캉은 이 상징적인 거울을 꺠는 일을 성장의 첫 단계라고 본다.  아기는 아직 말을 배우지 않았기에 언어활동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 상태이다. 언어활동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만 성립함으로 이 거울 단계의 아기는 언어를 매개로 해서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다. 라캉은 이 거울 단계를 세 가지 과정으로 나눈다. 

 

① 처음에 아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영상을 실재적 존재라고 여긴다. 뿐만 아니라 아기는 거울 속의 존재를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한다.

 

② 아기는 거울에 비친 존재가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영상임을 깨닫는다. 아기는 거울을 밀치거나 뒤쪽으로 가서 진짜 실물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③ 마침내 아기는 거울에 비친 영상이 실제가 아니라 영상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의 반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물실험에 나오는 침팬지 같아서 아기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아기는 사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의 동일성을 확립한다.

 

 

이 시기에 아기가 가지게 되는 자아의식은 거울 속에 박힌, 즉 주체의 바깥에 있는 객관화된 자기 몸의 통일적 영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언어활동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주체의 기능을 정립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아이와 같이 말을 못하는 존재가 자기 동일성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객관화시키기 이전의 상태다, 그래서 거울 단계는 비록 자기 신체의 통일성을 지각하며 자기 동일성을 이해하는 단계이기는 하지만, 그 자기 동일성은 타인을 배제하는 것이므로 나르시시즘의 성격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이때의 아기는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것은 보지 못하며, 자신이나 자기 영상 또는 자기 어머니와의 동일성의 관계가 우주의 모든 것이라 여기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자관계'이자 '상상적 단계'가 된다. 이 때의 아기는 다른 아기나 거울 속의 자기 모습, 그리고 어머니에게서도 자기만을 인식한다.

 

 

인간이 이자관계에서만 살고 있다면 사회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자관계란 바꾸어 말하면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동일하게 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개인에게 주어지는 언어의 세계에 뛰어들면 이자관계로만 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언어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언어의 결과이다. 인간은 언어의 질서를 능동적으로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오히려 언어의 질서가 인간을 구성한다. 바로 여기서 라캉은 생각하는 주체의 자명성에서 출발하는 근대 인간관과 확실하게 결별한다. 언어가 인간을 만드는 과정은 '언표하는 주체(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주체)'와 '언표된 주체(다른 사람들이 불러주는 주체)'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생겨난다. 앞의 것은 스스로 상상적 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뒤의 것은 타인이 붙여준 상징적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이것이 I와 ME의 불일치 즉 분열이다. 라캉은 모든 도덕의 기본이 바로 이 틈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도덕적 주체는 그에게 언표된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므로 타인들이 이름 지은 사회적 역할과 기능의 분배에 다름아니다. 스스로를 자유스럽다고 믿는다면 자기를 결정하는 원인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자유란 환상에 불과하다. 역설적이게도 도덕은 주체가 타인과의 상징적 관계 때문에 자아를 억압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억압은 '원억압'이며 근원적인 '자기소외'다. 당연히 욕구불만이 없을 수 없다. 도덕과 상징이 있는 곳에 욕구불만은 숙명적으로 생긴다. 이렇게 해서 도덕 - 원억압 - 자기 소외 - 욕구불만 - 부정 등과 같은 하나의 진술적 연쇄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자관계에서 삼자관계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맨 처음 만는 것이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삼자관계를 가능케 하는 최초의 가장 중요한 관계이다. 이때의 아버지는 실제의 아버지 뿐 아니라 법, 제도, 규범의 총체를 가진다. 아기는 '아버지의 이름'(제도, 규범, 언표된 자신의 정체성)에서 자신의 성욕과 리비도를 어떤 규범에 종속시켜야 한다는 의무를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컴플레스다. 이 의무는 인간화의 첫걸음이지만 동시에 억압과 욕구불만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컴플렉스를 지니기 전 아기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어머니의 모든 것이기를 원한다. 무의식적으로 어머니의 결핍을 보충하는 존재이고자 한다. 그것은 남근(Phallus)으로서 남자의 기표나 상징을 말한다. 이는 어머니의 결핍이며 어머니의 욕망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욕망이란 언제나 결핍된 것에 대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기는 자신을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으로 종속시킴으로서 하나의 독립적인 주체보다는 타인의 욕망의 연장으로 존재하기를 바라게 된다. 즉 '나의 욕망은 내가 동일화하고 싶은 타인이 나에게 바라는 것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이다. 종국에는 '내가 바라는 욕망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믿지 못할 결론에 도달한다. 적어도 라캉에 따르면 그렇다. 

 

 

라캉은 '언어활동에서 우리가 전해듣는 내용은 타자로부터 온 것'처럼,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의식의 차원에서 스스로의 의지로 자발적으로 말하는 것 같지만, 허상이다. 무의식의 측면에서 나의 진술은 타자의 진술로서 구성된다.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언어구조(문법과 의미체계)를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며, 나의 욕망 역시 타인의 욕망으로 구성된다. 태양 아래 내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자'란 내 욕망이 겨냥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주체의 무의식이 말하고 있는 장소이다. 라캉은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며, 욕망은 욕망의 욕망이고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말한다. 이 욕망(desire)은 갈증이나 배고픔 같은 욕구(needs)와 구별되며 욕망에 대한 의식작용의 표현인 요구(demand)와도 다르다. 욕구는 억압의 관계 바깥에서 온다는 점에서, 요구는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적용된 표현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점에서 욕망과는 다르다. 욕망은 존재의 결핍과 관계하면서 무의식의 밑바닥에 침잠하며 주체의 '상상적인 것'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라캉은 무의식이 인간의 언어활동처럼 법칙과 구조를 가지고 형성된다고 보았다. 인간주체는 운명적으로 분열을 겪지 않으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 분열의 동력이 곧 산징과 상징적 관계들이다. 이렇게 분열된 틈이 곧 욕망을 구성하는 것이다.

 

 

※ 라캉에게서 나와 내가 분리되는 것은  욕망 때문이다. 라캉의 말처럼 욕망이 타인에게서 왔다면, 타인의 욕망은 또 다른 타인에게서 온다. 타인의 욕망이 나에게로 전달되는 것은 언어활동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욕망의 원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욕망은 누구의 언어로부터 온 것일까? 라캉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즉 존재의 결핍으로 인해서 욕망이 생긴다고 말하는데, 최초의 타자는 누구로부터의 결핍을 느낀 것일까? 근본적인 물음으로 환원하면 라캉의 철학적 체계를 잘 드러내는 것이 인간의 원죄이다. 선악과를 먹지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던  인간이, 사탄의 속임수로 '선악과를 먹지 못하는 것'을 존재의 결핍으로 느끼고 먹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선악과를 먹고 타락함으로서 하나님에게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타자의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 라캉의 논리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이룰 수 없기에,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로서 남게 되었다. 현대철학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사고관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을 교묘하게 뒤집어서 인간의 것만 남겨두고 하나님은 없애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결핍과 분열증만 남는다. 현대철학의 내용은 진리가 아니라 진실일 뿐이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 자연이 설정한 인식의 경계

 

원자의 구조는 마치 행성계를 축소해 놓은 듯 하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놓은 닐스 보어같은 물리학자도 원자를 비슷하게 보았다. 그러나 보어는 원자 모형이 옳지 않다고 여기게 되었다. 행성계는 중력이 작용하지만, 원자는 핵력과 전자기력이 작용한다. 힘의 종류가 다르면 실제 모습도 달라진다. 전자는 완전하게 원자핵 주위를 돌지 않으며, 행성처럼 궤도에 밖혀있지 않고 궤도와 궤도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전자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촬영할 수 없다. 하이델베르그에 의하면 누구도 지금 전자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기 확정할 수 없다. 전자의 실체를 확정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피타고라스가 빛의 입자설을 주장한 이후 빛은 입자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빛은 소리나 물결처럼 회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자는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점하기 때문에 회절과 간섭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빛은 파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빛이 파동이라면 전달할 수 있는 매질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주공간은 진공이기 때문에 빛이 전달될 수 없다. 이 문제를 20세기 막스 플랑크가 해결했다. 그는 실험 중에 빛이 파동이면서도 동시에 입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빛이 파동이라면 연속적으로 퍼져 나가야 하는데 불연속적인 묶임 단위로 방출되었다. 그래서 빛을 광양자 또는 광자로 불렀으며 방출되는 불연속적인 빛의 묶음을 양자(Quantum)로 불렀다. 퀀텀은 에너지의 최소단위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플랑크의 결론은 광자와 같은 소립자들은 입자이면서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과학계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모순을 보어가 해결하는데 원자에 에너지를 가하면 에너지를 받은 전자는 들뜬 상태가 되어 다른 궤도, 즉 원자핵에서 더 먼 궤도로 이동한다. 계속 에너지를 가하면 전자는 원자의 바깥으로 튀어나가게 된다. 이것이 플랑크가 발견한 빛의 묶음이었다. 반대로 에너지를 잃은 전자는 바닥상태가 되어서 다시 원자핵에 가까운 안쪽으로 떨어져간다. 여기서 전자의 불특정한 결과가 나타난다. 에너지를 얻거나 잃은 전자는 원래의 궤도에서 사라지고 다른 궤도에 나타난다. 이 전자의 움직임을 양자도약(Quantum Jump)이라고 한다. 양자, 즉 광자나 전자는 모두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전자를 입자의 관점에서 보면, 잔자가 궤도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다른 궤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반면 전자를 파동의 관점에서만 보면, 전자가 일정한 양을 단위로 해서 불연속적으로 운동하는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다. 양자도약은 전자의 이중성을 전제해야만 설명할 수 있다.그래서 보어의 양자도약을 가리켜 상보성(相補性)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들 플랑크와 보어를 통해서 양자역학의 기본틀을 구성하게 되었다. 소립자의 세계에서 입자와 파동을 등치시킨 양자역학은 물질과 에너지를 등치시킨 상대성 이론과 함께 물리학의 혁명을 낳았다. 

 

 

플랑크와 보어의 이론으로 원자 모형을 그린다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원리적인 장벽의 문제였다.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르면 원자구조를 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전자를 보려면 자체적인 빛을 발하지 않는 전자에 빛을 가해야 하는데 이는 에너지를 얻는 전자는 그 자리에서 양자도약을 일으켜 사라지고 만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소립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확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어떤 물체의 운동량을 알려면, 그 물체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소립자 세계에서는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불확정성은 더욱 커진다. 전자의 위치를 알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가하면 운동량은 더욱 커지게 된다. 반대로 전자의 운동량을 알기 위해 더욱 작은 에너지를 가한다면 전자의 위치는 더욱 불확실해진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상보적이라기보다 상극이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물리학적 결정론을 주장하며 양자역학이나 불확정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론"이기 때문에 완전히 객관적인 관찰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광자와 전자를 입자로 보려하면 입자로 보이고, 파동으로 보려하면 파동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나름대로 실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고, 일정한 궤적을 지니는 운동을 하고 있지만 전자의 실체는 확률로서만 표시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불확정성 원리는 자연을 인식하는데 인간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는 원래 위치와 운동량에 대한 것이었지만, 에너지와 시간의 관계도 적용된다. 짧은 시간에 존재하는 소립자 세계의 에너지량은 매우 큰 불확정성이 개재한다는 것이다. 물질은 에너지임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어떤 곳에 존재하는 물질의 양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소립자가 생겨났다 사라져도 그 사실을 알 수 없다. 이는 우주와 물질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문제가 된다.

 

 

불확정성 원리를 따른다해도 전자의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없는 것은 아닌데 전자의 흔적, 즉 과거의 전자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에서처럼 여기서도 역시 동시성의 의미가 흔들린다. 또한 인과율도 흔들린다. 뉴턴 물리학에 따르면 어떤 물체의 직전의 상태는 그 물체의 직후 상태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가 궤도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괴이한 현상을 이야기하는 양자도역의 이론은 인과율을 깨뜨린다. 그러나 양자도약은 인과율을 깨뜨린다. 전자가 어디에 나타날지는 전적으로 우연이다. 도약하기 직전의 위치는 알지만 어디에 나타날지는 알지 못한다. 소립자의 세계에서 동시성과 인과율이 깨진다는 것은 기존의 물리학, 기존의 사고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양자역학을 발견한 보어와 하이젠베르크는 서술에서 곤란을 겪는다. 이는 언어의 문제로서 기존의 언로로서는 새로 발견한 현상을 서술할 방법이 없다. 이를 두고 하이델베르크와 보어는 "원자 구조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소유하려면 동시에 '이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우게 될 것"이라고 나누었다. 이는 지금 당장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서 오는 어려움이다. 원자는 지금까지 물리학적 의미에서 물질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 불확정성의 원리는 우리 삶에 확실하게 결정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도 우리 물질계 속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구성요소인 원자에게서 발견된다. 자연의 요소는 운명론적이거나 결정론 위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불확실성의 확률이 커지면 커질수록 체계와 질서는 붕괴되기 마련이다. 짧은 시간동안 생성과 붕괴가 일어나도 알아낼 수 없는 자연이 유지되는 질서와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확정성에서 확정성의 창조질서의 원리로 세상을 만드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생명이 존재 할 수 있는 순서를 따라서 그리고 생명의 창조의 이유까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불확정성의 존재는 인간이다. 성경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 성경을 배제한 채 과학으로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길은 막히게 될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 장기 지속 - 가장 중요한 역사는 가장 느린 역사자연이 설정한 인식의 경계

 

최초의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부터 19세기 오스카 랑케까지 역사를 주로 이야기(narrative)로 서술했지만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85)에 이르러서 상황이 변화되었다. 브로델은 역사를 행위자들의 사건사로 국한하는데 반대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브로델이 주목하는 것은 역사적 현상 이면에 숨어 있는 장기적인 구조이다. 이전의 역사와는 달리 개별적 현상에 매몰되지 않는 점에서 브로델의 역사학은 구조주의적이다. 구조주의는 공시적인 측면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만, 통시적인 측면에서는 맥을 뭇 추기 때문에 몰역사적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브도델은 구조주의적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이는 시간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구조주의에는 시간이 없지만 역사에는 시간이 있다. 역사는 시간 자체를 다루는 학문이다. 브로델의 구조는 기원과 생성과정도 지닐 뿐더러, 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다만 변하는 시간과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경험으로 인식하기 어려울 뿐이다. 이러한 확실한 시간 개념으로 브로델은 양립하기 어려운 역사와 구조주의 인식방법을 결합시킨다. 브로델은 이러한 오랜 장기적인 구조의 역사, 지리의 변화 과정이 역사에서 훨씬 중요하고 필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고 이것을 장기지속이라고 부른다.

 

 

역사를 시간으로 보면 동질적이지 않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시간은 단일한 하나가 아니라 복수의 상대적인 것이라면, 연대를 중심으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배열하는 식의 역사서술은 시간을 중시하기는 커녕 오히려 시간을 자의적으로 변경시키는 것이며, 의도와는 반대로 그 사건들까지 왜곡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브로델은 역사적 시간의 지속에 다층적 차원을 도입했다. 역사는 평면이 아니라 피라미드처럼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삼차원의 입체이다. 이 맨 밑에는 장기지속의 시간을 지니는 구조사가 있다. 지금까지 역사서술은 사건사로 채워지거나 깊이있는 역사서술이라면 국면사까지 나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인간행위(사건)와 그 행위의 결과로서 생기는 각종 제도(국면)를 다루는 역사란 행위에 구조주의가 필요한 것인가? 브로델에게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구조사가 가장 중요한 역사이다. 구조사는 인간과 시간 바깥쪽에 위치한 사물의 역사가 포함된다. 전통적인 학문 영역에서 구조사는 지리학의 영역이다. 브로델에게 있어서 지리적 환경 역시 그 자체로 능동적인 행위의 주체이다. 그것 역시 지리적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기지속으로서 구조가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에 어떤 한계 또는 제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조는 역사를 지탱하는 기초이며 동시에 장애물이다. 이처럼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구조를 분석하지 않고 역사서술이 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브로델은 장기지속적인 것을 중심으로 단기지속적인 것을 통합하며 불변성을 중심으로 가변적인 것을 통합한다. "역사적 설명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두는 것은 언제나 장기적인 시간, 구조이다." 구조는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 정신이나 심성도 포함된다. 이처럼 전통적인 요소 바깥에 있는 요소들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역사학은 이미 단일한 관점으로 진행할 수 있는 학문의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 그래서 브로델은 인접학문들의 연계를 주창한다. 여러학문들이 두로 동원되어야 진정한 역사서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역사를 보편적인 학문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학문에 비해서 취약했던 역사학에 대한 처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브로델의 역사방법론으로, 브로델의 영향으로 결집한 아날학파의 활동으로 비로소 역사는 이야기에서 과학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 - 밝은 계몽의 칙칙한 그림자

 

인간을 대낮으로 인도한 것이 계몽이었다. 계몽으로 세계의 주인공이 된 인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도르노였다. 인간은 신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해방이 아니라 만능의 무기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 세상의 주인이자 지배자가 되었다. 주인이며 주체가 된 인간은 대상인 자연을 지배하고 주재하고 권리를 주장하였다. 신은 존재하지만 교회에만 머무르게 되었기에 입헌군주제의 왕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따라서 자연은 인간의 소유가 되었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이성이 인간을 지배하고 사용하는 주요한 무기가 되면서 "다른 모든 도구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보편적인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자기 보존을 최선의 가치로 삼으며 다른 것을 희생의 도구로 삼게 되었다. 이것이 휴머니즘이라는 도덕의 옷을 입은 사상이다. 인간은 주체이고 목적이며 다른 것들은 대상이고 수단일 뿐이다. 인간이 자연을 통해 알고자 하는 것은 완전히 지배하기 위해서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이성은 다른 것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화된 이성이다. 도구적 이성은 자연이 인간을 지배하기 쉽도록 양화시키고, 계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자연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실증주의가 그것이다. 실증주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최고의 것으로 여긴다. 도구적 이성은 이성 특유의 반성적 기능을 상실한 이성으로 실증주의적 인식을 더욱 장려하며 사유가 아니라 사실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아도르노는 "수학적 형식주의는 직접성의 가장 추상적인 형태인 숫자만을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사유를 단순한 직접성에 묶어둔다. 오직 사실성만을 정의로 인정되며, 인식은 사실성의 단순한 반복으로 제한되고 사유는 단순한 동어반복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현실을 잘 나타내는 것이 대학의 자연과학 분야는 정책적으로 장려되고 인문과학분야는 무시되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계몽 시대의 이성은 해방의 무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인가사회를 정복하게 된 이성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특유의 장점인 반성의 기능을 잃어버린다. 방향타를 잃어고나서 남은 것은 맹목적인 힘만 남았다. 이성은 파시즘을 향해서 달렸다. 아도르노는 "계몽이 사물에 대해 취하는 행태는 독재자가 인간들에게 행하는 태도와 같다"고 말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베이컨처럼 지식은 필연적으로 권력을 가지게 했다. 이성은 모든 것을 파해쳐 알아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때 인간은 공포에서 벗어나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 힘은 파괴적이다. 대상을 분해배버리는 실증주의적 태도로 지식을 추구할 때 이성이 지닌 파괴적 힘은 더욱 배가된다. 사유에 대한 사실의 우위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에 오염되어 반성의 기능을 상실한 도구적 이성은 초창기 계몽의 이념이었던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도덕을 낡은 이념으로 간주하고, 지배를 위해 파괴와 공격을 정당화하는 무기로 바뀌었다.

 

 

도구적 이성은 동일화의 논리를 따른다. 지식을 향한 맹목적인 힘은 대상의 질적인 측면을 버리고 양적인 측면을 취함으로써 모든 대상을 획일화한다. 도구적 이성은 인간사회도 양화시킨다. 자연을 관찰하고 분석하던 방식이 그대로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 인간사회의 양화가 자본주의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의 교환가치가 양의 중요성에 있음을 강조한 것도 이에 있다. 질을 버리면 모든 상품은 양으로만 의미가 있다. 모든 상품은 양으로 교환된다. 오로지 교환비율만 중시하는 자본주의는 도구적 이성이 만든 최상의 경제제도이다. 도구적 이성의 파괴적 힘과 동일화가 나타내는 현실이 파시즘이다. 파시즘을 정치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파시즘은 독일 민족의 억압된 소망을 조작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아도르노는 파시즘을 계몽의 유산으로 보고 있다. 파시즘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단계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파시즘은 도구적 이성의 파괴적 힘과 획일화를 추구하는 본성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파시즘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시 소환될 수 있는 현상이다.

 

 

아도르노는 도구적 이성을 거부하고 이성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은 내부에 도구적 이성을 치유할 늘역이 있다. 도구적 이성도 이성에서 나온 것인 만큼 결국 이성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문제는 도구적 이성이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고자 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지배가 없으면 진보와 문명도 있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이성은 대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비판적 이성이다. "스스로 지배임을 고백하고 자연으로 퇴각하는 결단을 할 때 비로소 정신은 자신을 자연의 노예로 삼는 지배를 향한 요구를 깨부술 수 있다."이것이 아도르노의 제안이다. 이 제안은 또 다른 제안을 필요로 하는데, 자연 속으로 퇴각하는 결단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문제이다. "주체 속에 있는 자연의 기억을 통해 계몽은 지배 일반과 대립한다." 도구적 이성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까지 계량화하고 조작하려 하지만 이것을 완벽하게 이루어내지 못한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지배의 그물을 꿰뚫는 '화해되지 않는 자연'의 존재를 보여준다. 이것이 아도르노가 말하는 '주체 속에 있는 자연'이다. 그는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는 내적 자연을 도구적 이성의 치료약으로 활용하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도르노에게 중요한 문제는 사물화가 보편화되고 총체적인 현상이 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해방, 인간의 자유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답은 현대사회의 지배와 억압이 전능화되어, 그것을 인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답했다. 마르크스가 꿈 꾼 사회주의 사회가 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다. 아도르노의 최종적 제안은 예술이었다. 예술은 전체를 드러내지 않고 특수 속에서 전체를 드러내며 동일성 속에서 다양성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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