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 집단무의식 - 내 안에 전체가 있다
세계 모든 민족의 신화는 기본 구조가 일치하는 것도 많을 뿐더러 등장인물들이 거의 같은 경우가 많다.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이 공통적인 요소를 많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융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한 계기는 꿈이었다. 무의식 역시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고, 의식이 빙산의 일각이라면 무의식은 빙산 자체라고 말한다. 융 역시 꿈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꿈의 이미지들은 상당히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에도 동일한 이미지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근본적인 것인 것이 원형으로서 이미지의 사본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융은 그 복사본들의 원본을 원형(archetype)이라고 부른다. 융이 말한 원형은 인간 각 개인의 심리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역사적이고 집합적인 기억의 본질을 가리킨다. 원형은 인간 심리의 본성을 규정하는 초인격적 인간 심리구조이다. 인간 개인은 이 원형을 거부하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 동물들은 처음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인간은 20년 동안 배우고 나서 어른 구실을 한다. 인간에게는 생물학적인 본능보다 오히려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본능이 큰 작용을 하는데 그것이 융이 말하는 원형이다. 이 원형은 대단히 보편적이어서 개인이 처한 문화 및 시대와는 무관하게 심리의 본성을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즉 원형은 인간이 인간이도록 해주는 기본구조, 즉 '인간의 조건'이다.
인간은 원형을 가장 커다란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원형과 자아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원형에서 더욱 큰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이 유아기에 경험한 내용이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원형은 모든 개인의 경험을 초월하여 개인의 경험보다 앞서 존재하는 초인격적 본질이다. 모든 개체 안에 내제하지만 개체를 넘어서는 무의식, 그래서 융은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집단무의식은 원형이라는 충실한 기억의소자로 만들어지는 무의식이다. 이것이 각 개인에게 투과되어 개인의 무의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집단무의식의 구조 안에는 각기 다른 문화와 시대에 있었던 상징물, 이미지, 신화, 신등이 놀랍도록 비슷할 뿐더러 환자의 꿈에 나타난 이미지들과도 비슷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집단 무의식은 역사가 오랜 인류 전체를 가리키며 일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인간과 인류 전체가 생존하는 한 지속되는 것이다. 개별 무의식은 꿈이나 농담, 실언 등에서 징후를 드러낸다. 집단무의식은 꿈 뿐만 아니라 신화와 종교, 개별 인간의 생산물이나 모든 영역에 침투한다. 심지어 과학도 집단무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인간 경험은 집단무의식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경험을 지각하는 것 자체가 집단무의식이므로 과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집단무의식은 인간의 예술, 신화, 종교에 기록된 모든 이미지들의 원천이며 마르지 않는 저수지이다. 집단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꿈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은 물론 그가 속한 전체 사회에 대해서도 함축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무의식을 의식의 언어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장벽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 같은 이는 근대 철학의 주제인 '나(자아)'를 중심에서 끌어내리려는 작업을 통해 그 한계를 다소나마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융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인 원형도 역시 자아라는 주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좌표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융은 무의식적 원형이 의식에 도입되는 계기가 바로 자아라고 생각한다. 결국 원형과 집단무의식은 의식과 담을 쌓고 살거나 실 끊어진 연처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자아라는 튼튼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융의 자아는 에고라는 의식적 주체와 더불어 자율적 콤플렉스라는 무의식적 주체를 포함하고 있는 이중적인 존재이므로 그것이 가능하다. 융은 대립물의 쌍을 설정함으로서 주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 대립물의 개념을 묘하게도 연금술에서 찾았다. 융은 연금술에서 금속이 변화하는 과정을 무의식의 자기 실현과정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금술사는 스스로의 영혼을 변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연금술은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을 무엇으로 변화시킨다는 뜻이므로 적어도 두 개의 항이 필요해진다. 이것이 융이 말하는 대립물의 쌍이다. 융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이미지, 감정, 관점이 있을 때 자아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곧 대립물의 통일이다. 융은 주체의 분열과 통합을 주장함으로써 주체의 문제를 극복했지만 그것은 극복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깝다. 사실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은 헤겔의 절대정식과 같이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설명하는 방식처럼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융은 과학적 합리주의를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상대성 -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자신이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시간 개념에서 크게 달라진다.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빨리 움직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시간과 공간을 합쳐 시공간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세계는 3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원은 원래 수학적 용어인데, 한 점에서 직각으로 교차하는 수직선의 수에 따라 차원이 나뉜다. 점이라면 아예 수직선 자체가 없으므로 0차원, 선이라면 선이 하나만 있으므로 1차원, 면이라면 고등학교 수학교과서에서 지겹게 보던 x축과 y축 2개를 그어 만들어지므로 2차원, 입체라면 x축. y축, z축 3개이므로 3차원이 된다. 수학적으로 보는 우리 세계는 3차원이지만 물리학적으로 보면 우리의 세계는 4차원이다. 4차원은 독일의 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헤르만 민코프스키가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을 더한 아인슈타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과 공간을 세계가 존재하기 위한 기본 틀이라 보았고, 칸트는 인간의 의식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 개의 형식이라고 보았다. 세계의 모든 존재와 인간의 모든 경험은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이 이루는 좌표상에 표시할 수 있다. 함수의 x축과 y축이 서로 수직이듯 시간과 공간은 서로 완전한 별개의 축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물리학적으로 같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사실상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것이다. 즉 별과 우리 사이의 거리의 공간은 과거에서 현재의 시간과 똑같은 효과를 가진다. 그래서 시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운동상태에서 측정하는 시간은 다르다. 빨리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고 말한다. 달리는 열차 안에서 반짝이는 빛은 열차 밖에서 볼 때 이동한 거리가 다르다. 왜냐하면 빛을 관찰하는 열차 안의 사람과 열차 밖의 사람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하는데 빛의 속도는 정지된 상태나 운동하는 물체에서 측정하거나 불변하기 때문이다. 즉 물체의 속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접이다. 우주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점이란 없다. 로켓은 지구로부터 멀어져가지만 사실 지구가 로켓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것이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단지 가속도의 문제만이 다를 뿐이다.) 이 상대론적 사고는 갈릴레이 때부터 해오던 것이다. 여러 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느꼈던 모순, 즉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사실을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았을 뿐이다. 다른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는 사실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면 아인슈타인은'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것을 E=mc2이라는 공식이 된 특수 상대성 이론의 최대 성과이다. 물체의 속도가 광속에 가까울수록 그 질량이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사실은 열차의 실험에서 몇가지 간단한 일차방정식과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이용하여 증명된다. 상대성 이론의 의미는 에너지는 곧 질량이며 질량은 곧 에너지라는 내용이다. 바로 여기서 핵무기의 원리가 파생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질량은 엄청난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으므로 가장 손쉽게 붕괴하여 에너지화할 수 있는 질량만 찾아내면 되었던 것이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등속운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11년 뒤에 가속운동의 경우까지 포함한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는데, 여기서도 질량은 곧 에너지라고 말한 것에 못지 않은 단순한 '미학적'원리가 등장한다. 그것은 중력은 가속도라는 원리로 '등가의 원리'이다. 자유낙하로 떨어지는 엘리베이터는 중력을 느끼지 못하나, 가속도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에서는 중력이 늘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가속도가 중력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은 평범한 것이었지만, 아인슈타인이 발상을 전환하여 포착하기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중력과 가속도가 서로 호환된다는 사실을 통해 중력장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아인슈타인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인 리만 기하학을 도입하여 중력을 공간 기하학적으로 인식한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하는데, 중력장이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빛은 직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빛이 통과하는 공간, 즉 시공간 자체가 휘어져 있다면 빛도 그에 따라 휠 수 밖에 없다. 마침내 1919년 개기일식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천문대는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태양에 가려져 보이지 않아야 할 별의 빛이 태양의 중력장을 거치면서 망원경에 포착된 것이다. 이 사실로 인해 우주는 넓게 퍼져 있는 무정형의 공간이 아니라, 휘어진 중력장을 따라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우주는 일종의 닫혀있는 우주, 하나의 계(系)와 같은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 발견에는 문제가 있는데 계가 있다면 그 바깥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아주 작은 질량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무한대의 에너지가 된다. 이론상 입자가속기를 통해서 소립자 하나를 무한히 가속시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만든다면 무한대의 에너지, 즉 우주 전체의 에너지와 맞먹는 에너지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입자 하나를 빛의 속도에 가깝도록 무한히 가속시키려면 전우주의 에너지와 맞먹는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 에너지를 사용한 입자는 전 우주의 질량과 같은 질량을 지니게 된다. 질량은 곧 에너지라는 간단한 원리를 통해 그게 그거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은 빛의 속도, 즉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한계를 인정한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즉 과학이 처음으로 자연법칙이 정한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제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 전통적인 과학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상대성 이론은 전통적인 과학발전의 핵심이었던 주관과 객관의 확실성을 해체했다. 이것은 전 우주를 대상으로 본다면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다. 즉 우주 전체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통 과학의 동시성이라는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복수의 시간지평을 지닌다는 사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확실한 앎이라는 것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진리를 인식하는 주체가 불확실한 판에 절대적인 진리관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 이후 굳건하게 발전해온 고전물리학과 역할을 해체했지만, 동시에 근대 철학의 유산인 결정론과 실체론에 대한 신념은 확고히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보어의 상보성 원리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등 당시 새로이 부상하던 양자역에 대해서는 한번도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결국 그가 정립한 이론은 근대의 과학적 이성을 해체하는 단초를 열었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이성중심의 사고에 서 있던 경계선상의 인물이었다.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에서 나온다. 하이젠베르크는 1901년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양자역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덴마크 코펜하겐의 보어에게 찾아갔다. 하이젠베르크는 오직 측정 가능한 것만을 이론으로 삼는다는 실증주의 연구방식을 깨트렸다. 하이젠베르크는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시세계에서는 위치와 운동량의 측정이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또한 관찰자의 행동 역시 영향을 주기 대문에 관찰의 결과가 불확실하게 만든다. 이것을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말했다. 양자역학에서 상보성의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는 광자 또는 전자가 파동의 특성을 보이기도 하고 입자의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는 원리이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들은 입자로 취급할 수도 파동으로 취급할 수도 있지만, 입자와 파동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양자의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모두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유효수요 - 거시경제학의 지평을 열다
고전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비 개념은 생산의 영역까지 적용한다. 즉 최대의 생산을 위해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이다. 효율성은 곧 합리성을 뜻한다. 고전경제학은 효율성에 따라 가장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 행위자를 경제주체로 설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것은 매우 올바른 출발점 같지만 사실은 극히 비현실적이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소비자는 이상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합리적인 소비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른 완전한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하며 완전한 자유경쟁이 전제되어야만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비주체는 완벽한 자기 의사에 따라서 소비할 수 없으며, 항상 조건에 제약을 받는다. 생산의 주체도 마찬가지다. 최대의 생산을 위해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한다는 생산주체의 개념은 벽에 부딪힌다. 완벽한 자유경쟁은 애초부터 없었으며, 독점이 등장하고 무역장벽이 세워진 현대에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현실에서 자본의 흐름은 매끈하게 흐르는 시냇물이 아니라 여기저기 웅덩이가 깊이 팬 강바닥을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거친 강물이다. 경제주체의 자기 동일성은 무너졌고 고전경제학은 주체를 잃어버렸다. 코너에 몰린 고전경제학의 주체를 완전히 해체한 사람은 케인스이다, 그는 고전경제학의 비현실성과 관념성을 파악하고 1929년 세계 경제대공황을 계기로 새로운 개념의 경제주체를 확립하였다.
고대 로마 이래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센 국력을 자랑하는 국가는 영국이었다. 19세기 영국의 경상수지는 엄청난 흑자였다. 그러나 무역수지는 적자였다. 영국의 경상수지가 흑자였던 이유는 해운업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해운업을 뒷받침할 막강한 해군력도 갖추고 있었다. 19세기의 영국 경제현실은 생산과 서비스, 경제력보다는 군사력을 통해서 경제강대국이 되었던 것은 케인스의 사상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첫째, 케인스는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 경제학의 전제를 거부하고 오히려 거꾸로 바라본다. 소비, 즉 수요를 중심으로 경제를 고찰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자유방임 경제를 거부하고 국가 개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두 가지 관점을 종합하는 것이 곧 유효수요의 개념이다. 유효수요란 가치가 이윤으로 실현될 수 있는 수요를 가리킨다. 아무리 많은 상품을 생산했다 해도 이 상품에 대한 수요가 효과적으로 형성되지 않으면 이윤은 나오지 않는다. 이윤이 없으면 재투자는 불가능하고, 산업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자본주의적 생산이란 수요를 전제로 한다. 수공업 단계와는 달리 자본주의에서는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내놓을 뿐이다. 생산자들은 미리 시장을 염두에 두고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는 생산의 초기 단계부터 고려해야 할 중요 사항이다. 다만 생산자는 시장을 제어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상품을 생산하는 데만 관심을 쏟을 수 밖에 없다. 수요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국가인데 이미 19세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군사력을 매개로 해서 나타났다. 하지만 1차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적 영토재편이 완료되고 열강들의 세력판도가 안정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국가는 재정과 금융 정책을 통해 경제에 개입하게 된다. 자유방임이 포기되고 정책이 우선시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재정과 금융 정첵은 생산이 아니라 수요와 관련된다. 생산은 개별 기업들에게 맡기고 국가가 총수요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고용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불황기에는 불가피하게 대량실업이 발생한다. 생산을 중심으로 보는 고전경제학의 처방에 따르면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 임금을 인하해야 한다. 임금을 인하하면 생산비를 줄일 수 있으며, 고용량 전체를 더욱 늘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을 인하하면 오히려 실업을 더욱 악화시키고 생산은 더욱 위축될 뿐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수요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을 제안한다.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수요를 늘리면 된다. 따라서 국가가 공공정책을 통해 노동에 대한 유효수요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경제사상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발상의 전환인 동시에, 실천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정립될 수 있었다. 그는 오류가 없는 모델을 수립하려는 탁상공론적인 경제이론보다는 특정한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경제적 사고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케인스의 유효수요의 개념은 칠천적인 관심에서 출발해 발상을 전환함으로서 정립될 수 있었다. 케인스의 시대 이전부터 이미 사람들은 유효수요에 대한 생각이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는데 제국주의 군사력이 유효수요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탁월함은 바로 발상의 전환에 있다. 생산의 규모로 경제활동 수준을 측정한다는 생각은 상식이었지만, 케인스는 산출량과 생산능력이 아니라 수요가 경제활동 수준을 결정한다는 파격적인 생각을 한 것이다. 생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고전경제학이 생산주체인 노동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총생산량이 결정된다고 본 데 비해 케인스는 마치 오늘날의 대량소비 사회를 에견이라도 한 것처럼 기업가가 예상하는 유효수요의 규모가 생산량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합리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고전경제학의 주체가 사라진 지점에서 케인스가 설정하는 경제주체란 총수요의 주체인 국가이다. 국가경제 전체를 하나의 주체로 보아야만 경제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고전경제학의 무대인 시장은 여전히 제 역할을 하며, 미시 경제학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고전경제학에서처럼 미시경제학을 그대로 연장, 확대해서 거시경제를 설명하려 하면 혼란에 빠질 뿐이다. 개인을 경제주체로 삼은 자유방임주의는 순진무구한 사고일 뿐 아니라 오류이다. 전체의 자유 총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미시경제와 거시경제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따라서 전체를 인식하는 방식은 부분들을 인식하는 방식과 달라야 한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부분에 대한 경험적 인식을 종합하는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것을 케인스는 '합성의 오류'라고 불렀다. 적어도 케인스는 경제를 거시적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서 자기 당대의 경제적 해답을 만드는 틀을 제시한 것이다.
고전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1929년의 대공황은 유효수요의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은, 수요의 부족에 있었으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 경제는 주기적인 공황의 파국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유효수요의 개념은 이러한 경제현상을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경제정책에 실제로 적용되어 실효를 거두기도 했다. 대공황으로 발생한 실업자들을 동원하여 미국의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였던 뉴딜은 유효수요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정책이었다. 케인스는 완전고용 아래의 균형상태만을 가정하는 고전경제학의 이론을 특수 이론이라 부르고, 자신의 이론은 불완전고용까지 포용하는 일반이론이라고 말했다. 다분히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연상하게 하는데, 그의 책 제목은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 이론"이다. 뉴딜 정책만이 아니라 1950, 60년대에 크게 발달한 우주과학 산업이나 각국마다 대규모로 유지하는 군대와 무기산업 역시 수요를 중심으로 본 경제정책의 일환이다. 달과 화성에 로켓을 보내는 것은 과학보다는 경제적 측면이 더 크다. 첨단산업은 경제, 산업적 연관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군대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순수한 소비집단이다. 무기도 수출품이 된 현대에서는 다른 개념이 되었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는 생산에 속한다. 이렇게 유효수요의 적용폭이 상상 이상으로 넓은 것은 역시 이 개념이 실천적 관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화폐에 대한 견해에서도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고전경제학에서 화페는 단지 경제행위의 매개역할을 할 뿐이다. 고전경제학에서는 통화량이 증ㄱ다하면 물가가 오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통화량이 변동할 경우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물가가 아니라 이자율이다. 이자율은 투자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은 총수요에 연결된다. 이와 같이 케인스는 화폐가 생산에 대해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케인스는 경제학자로서 드물게 투기로 재산을 증식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자본주의를 가장 잘 읽은 경제학자라고 할 수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 인식론적 단절 - 단절을 통해 발전하는 과학
정치권, 특히 그 시대가 군사정권 시대라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인물이 느닷없이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때문에 정치권력의 교체는 야당세력이 언제나 주장하는 이른바 수평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불연속적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예측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의 영역에도 불연속적으로 발전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바슐라르(1884~1962)에 따르면 과학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전까지 과학적 성과물을 토대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교과과정에서 고등교육이 중등교육과 다른 점은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뉜다는 것이다. 수동적인 자세의 학생들은 처음으로 자기 의사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학문을 인문계와 자연계로 나누는 것은 타당한 것인가? 이러한 학문의 대표주자는 철학과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즉 두 계열을 합친다는 것은 철학과 과학을 합치는 것과 같다. 과학은 존재를 다루고 철학은 사유를 다룬다. 따라서 대상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철학은 과학을 포함한다. 과학적 담론을 대상으로 한 과학철학이 바슐라르의 연구영역이다.
하지만 바슐라르는 과학 위에 군림하는 철학을 거부한다. 그는 오히려 철학이 과학의 사범이기는커녕 언제나 과학에 뒤처져왔다고 본다. 과학적 사고의 근본적인 특징은 운동성에 있다. 그에 비해 철학적 사유는 부동성의 경향을 띈다. 과학은 언제나 개방적이고 역동적인데 철학은 체계를 고집하고 닫힌 공간에 안주하려 하며, 운동하지 않는 이성에만 의존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과학은 새 옷을 갈아입었는데 철학은 여전히 뉴턴 시대의 어휘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과학자는 스티븐 호킹이나 아인슈타인이지만 철학자는 하이데거나 비트겐슈타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린다. 바슐라르는 철학의 의무가 과학적 인식의 기능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전통 과학철학의 생각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법은 정 반대인데 각각의 과학 내부에서 인식기준을 찾고자 했다. 또한 철학이 과학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과학을 검토하는 데서 철학적 개념들이 올바르게 정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개별 과학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바슐라르의 철학은 과학적 인식에 대한 평가 속에서 나타나며, 언제나 과학의 옷을 입고 있다. 과학자는 자신의 과학에 대한 철학을 항상 공표하지 않기 대문에 각각의 과학에 대한 철학을 공표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몫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자의 영역 바깥에 있는 문제이다.
미국의 공산주의자며 기자였던 존 리드는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직접 보고「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책을 썼다. 정치적인 격변기였던 20세기는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30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중요한 과학적 발전은 몇몇 시기에 비약적으로, 즉 한동안 없다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식으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바슐라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인식론적 단절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이에 다르면, 과학적 발전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약적으로, 혁명적으로 일어난다. 과학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그것과 단절하고 절연함으로 발전한다. 비슐라르는 이 예로 뉴턴의 역학 체게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체계 사이의 단절을 들고 있다. 상대주의적 사유의 문에 들어서게 되면, 뉴턴의 과학을 구성하던 개념들은 파괴되어 버린다. 그리고 뉴턴의 모든 계산 결과들은 상대성의 계산으로 대체된다. 앞서 과학은 운동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철학은 부동성을 기반으로 하며 항상 과학에 뒤처진다는 이야기는 이것과 통하는 말이다. 바슐라르는 이러한 변화를 대체의 과정이라고 말하는데 문제틀의 대체 즉 역사는 문제틀의 변천과정이라고 말한다. 문제틀이 바뀌면 전사회적인 총체적 관점이 변화된다. '인간은 역사를 바탕으로 역사를 창조한다'는 온고지신의 정신, 역사주의적 발상인데, 이것은 상식에 불과하다. 과학은 상식이 아니라 지식이며 담론이다. 바슐라르는 인식론적 단절의 또 다른 측면으로서 과학적 인식과 일상적 인식 사이의 단절을 주장한다. 상식은 새로운 과학적 사고가 나타나지 못하게 방해하며, 새로운 과학적 사고가 나타났을 때, 일상적 사고, 즉 상식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바슐라르는 이것을 인식론적 장애라고 부른다.
쉽고 재미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풍조가 퍼지고 있는데 쉽다는 것은 단순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론이 다루는 이론적 대상이 추상적이고 복잡한 것이라면, 이론 역시 추상적이고 복잡해야만 오히려 구체적이고 알기 쉽다.(종교인들이 남긴 선문답을 해석하고 주해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헌들이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바슐라르는 실재란 결코 단순하지 않고 과학사에서 단순성을 취하려믄 모든 시도는 예외 없이 과도한 단순화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바슐라르의 인식론은 철학에서도 그 자신의 철학에서도 단절을 품고 있다. 알튀세르가 이 개념을 받아들여서 청년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 사상을 단절로 바라본 관점은 유명하다. 하지만 단절의 관점에서 보면 언제나 철학적 문제는 새롭게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뉴턴물리학과 아인슈타인 물리학이 설명의 대상은 동일하나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처럼 철학에서도 문제를 해결, 또는 해소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단절되지만, 문제 자체는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잇다. 어느 것이든 형성기에 있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 자본주의 속에서 자본주의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한 마르크스의 이야기도 이것과 통한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모든 철학에는 일단 부정의 철학, 비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비철학이 온전한 철학으로 발전한다면 비철학이라는 낙인을 버릴 수 있지만, 그것은 철학의 완성인 동시에 죽음이 된다. 따라서 살아 있는 모든 철학은 비철학이다. 아직까지 우리의 상식에서 비철학은 아직 미완성인 상태라 할 수 있다.
게오르기 루카치: 계급의식 -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최초의 계급
인간은 예측 불허의 존재이다. 겉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행동은 얼마든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은 한 인간, 즉 개인일 뿐이다. 집단으로서 인간은 또 다르다. 열 사람의 인간집단이 고개를 끄덕인 경우, 행동을 달리하기란 쉽지 않다. 열 사람 모두가 다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집단은 약속한 대로 행동하게 된다. 심지어 집단에 속하지 않은 다른 개인도 자기 의사와 달리 집단의 행동을 따라하기도 한다. 단순한 인간집단이라면 군중심리라는 말이 적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단이 아닌 계급은 군중심리로 움직이지 않는다. 계급은 취미나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결집된 안간집단을 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레닌은 계급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 생산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구분된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계급을 구분할 때는 심리보다는 객관적인 요소가 있다는 점이다. 즉 계급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로 묶인 인간집단이다. 계급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각 개인의 편차는 있지만, 서로 같은 처지에 있기에 행동양식이나 목표도 같다. 그러나 루카치(1885-1971)는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같다고 해서 한 계급이 반드시 행동을 함께 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루카치에 따르면 경제적 이해관계는 행동통일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충분조건은 계급의식까지 갖추는 것이다.
과거의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과는 다르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계급은 전쟁이나 출신성분에 따라 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태어난 사회제도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과거의 신분제도가 철페되면서 나타났다. 자본주의는 농노들에게 자유를 주고, 신에게서 해방시켜 인식의 주체로 세웠다. 그러나 인식의 주체로서 인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계급을 이루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스스로 된 것인가 어쩔 수 없이 된 것인가?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못한가에 대한 양자택일식의 질문의 성질이 아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얻은 이중적 자유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자유는 신분의 자유와 더불어 토지로부터의 자유였다. 신분의 자유에서 토지로부터의 자유로 이어지는 이중적 자유는 생계의 원천을 잃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루카치는 자본주의란 이전까지의 인류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사회제도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사회 전체를 경제적으로 통일시킨 제도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모든 측면을 화폐라는 매개체를 이용하는 단순한 관계로 만들었다. 이것은 신분제도까지 단순화시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두 계급을 탄생시켰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사회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자본주의를 자연법칙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루카치는 이것을 부르주아지 계급으식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계급,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대로 자본주의 자체에 의문을 갖는다. 부르주아지의 몰역사성과는 달리, 역사적 총체성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야말로 자신의 경제적 토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최초의 계급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전계급과는 달리 신분적, 정치적, 사상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 계급이다. 완전한 의미의 자유는 아니라도 그 자유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인류 최초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고 있는 계급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부르주아지는 역사를 고정불변의 역사로 본다. 19세기 랑케는 "모든 시대는 항상 비슷한 간격을 두고 신에게 접근해 있다."는 역사적 상대주의를 말했다. 루카치는 이런 관점에서는 사회제도의 기원을 찾을 수 없으며 찾는 것조차 무의미해진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힘의 비합리적인 전개과정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가장 특수한 단계인 자본주에서는 무의식적인 과정이 아닌 의식 즉 계급의식이 개입하는 과정이다. 루카치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비로소 경제적 계급 이해관계가 역사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와 계급의식을 일치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적 총체성이 있는데 총체성이란 전체를 부분의 합이 아닌 유기적으로 통합시켜서 보는 것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의 전체, 곧 그 기원과 종말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운명도 의식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는 생산과정의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며, 인류사회의 다음 단계는 무계급사회가 될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장차 자신이 소멸하리라는 것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역사적,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급이다. 얼핏 루카치의 계급의식은 마르크스 이론과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물론 즉 의식을 물질의 반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루카치가 말하는 계급의식은 경제적 계급 이해관계의 반영이다. 루카치에 따르면 계급의식을 계급 이해관계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 개념이다. 고대의 피지배계급은 그들의 경제적 처지, 계급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계급의식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하여 스스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계급의식을 지닌 계급을 탄생시켰다. 포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은 계급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있다. 루카치는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혁명을 위해서는 물리력이 중요하다. 물리력을 적절하게 구사하고 언제 물리력을 사용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두뇌이다. 이 두뇌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계급의식이다.
자연과 달리 인간 사회와 역사는 반드시 객관적이지 않다. 인간 사회와 역사는 인간실천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이다. 역사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속성은 인간집단, 경제적 이해관계와 계급의식을 같이 하는 계급이 없으면 이런 사회제도들도 존재할 수 없다. 자연을 이해하려면 인간이라는 주체가 자연이라는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관과 객관의 분리가 필요 없을 뿐더러 옳지도 않다. 사회역사적 현실에서 주관과 객관은 근원적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것이 루카치가 말하는 총체성의 철학적 측면이다. 계급 이해관계라는 객관적 조건과 계급의식이라는 주관적 요인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급인 동시에, 철학적으로 보면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급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이 곧 인류의 해방이라고 말했다. 부르주아지는 지배계급의므로 피지배계급이 해방되면 당연히 헤방된다는 이야기이다. 모순이 첨예한 곳에 모순의 해결의 동력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루카치의 사상에는 목적론적 측면이 깊이 내재해 있다. 역사를 맹목적인 흐름으로 보지 않고 끊임없는 인간실천의 무대로 보았다는 점에 이미 목적이 개재해 있다. 역사가 맹목적 흐름이 아닌 인간실천의 무대로 보았는데 이 최종 목적지는 유토피아이다.
*루카지의 주장은 역사의식에 대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음은 좋은 지적이지만 두 계급 간 인식주체의 상대적 관점일 뿐인 점을 간과하고 있다. 루카치는 마르크스처럼 부르주아지보다 노동자계급이 더 역사의식과 정치적 역량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부르주아지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역사의식이 있고 정치적 역량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제와 역행하는 노조활동과 파업을 일으키고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력을 크게 상실할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유토피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총체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는 존재할 수 없는 신기루라고 할 수 있다.
마르틴 하이데거: 현존재 - 막다른 골목에 부닥친 형이상학
인간은 하나의 개체이면서 동시에 세계에 속해 있는 존재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숙명과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 인간을 세계 속에 이미 있는 존재, 즉 세계-내-존재라고 부른다.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를 가리켜 현존재(現存在)라고 표현한다. 현존재란 Dasein을 번역한 것으로, 인간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만들어낸 개념이다. Sein은 존재 또는 존재함이라는 뜻이고, da는 '거기' 혹은 '지금'이라는 뜻이다. 하이데거는 기존의 단어대신 새로운 개념의 말을 사용하는데, 이유는 기존의 단어에 불만을 가지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인간의 실체를 단단하게 고정시켜 왔다. 그래서 인간은 가장 최종적으로 확실한 주체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볼 때 주체는 단단하게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인간 존재는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열려있다는 점에서 현존재라는 말을 쓰고 있다.(Dasein의 da는 열려있다는 뜻도 있다.) 인간은 답답하게 응고된 실체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창문과 같다. 즉 인간은 열린존재인 창문 그자체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인간존재, 곧 현존재를 세계-내-존재라고 부른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데카르트처럼 인간과 세계가 독립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언제나 이미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와 뗄 수 없이 존재하는 현존재가 인간존재라면 주관(인간)과 객관(세계)이라는 근대 철학의 이원론은 해체되는 셈이다. 이미 후설에 이르러 주관과 객관의 뚜렷한 분리는 상당히 약해졌지만,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에 남아 있는 선험적 자아, 반성적 주관, 이성적 주체라는 개념까지 해체한다. 인간은 전통적인 주관과 객관이 만나는 방식도 아니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목수는 못과 망치를 의식하면서 망치질을 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된 경우에만 못과 망치를 의식하여 작업을 한다. 이처럼 세계-내-존재는 세계를 대처하는데 있어서 이미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는 이성을 통한 이해가 아니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존재이해라고 한다.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에서 말하는 주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주관을 찾기 전부터 이미 현존재는 세계 속에 들어가 있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현존재가 세계-내-존재로서 존재하는 방식을 실존이라고 부른다.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배경이 없으면 사실감이 떨어진다. 즉 인간은 세계라는 배경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이처럼 인간은 세계 속에 존재하면서 동시에 세계에 대응하고 있는 특이한 존재이다. 현존재가 존재하는 방식은 이중적인데 현존재는 존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문제로 삼는 유일한 존재이다. 하이데거는 우선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존재자들이다. 인간도 심리와 신체를 가진 한 존재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존재자들과 달리 존재자이면서도 동시에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것을 해석하고 이름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는 초월이다 그러나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이거나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벗어나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다. 존재자이면서 존재 자체를 묻는다는 뜻에서 초월이다. 초월은 주관과 객관,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분리되기 이전에 존재 자체의 존재방식이다. 그렇다면 존재 자체의 존재방식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이데거는 존재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존재는 스스로 길을 트고, 스스로 빛 속에 드러나고, 스스로 열어 보이고, 스스로 이미 나타나 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를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철학의 전통인 형이상학에서 존재를 기술할 방법이나 언어도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흴덜린이나 렐케의 시에서 대안을 찾는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인간은 언어라는 거처에서 거주한다. 사유하는 철학자와 시를 짓는 시인은 이 거처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어를 통해 존재의 모습을 나타내고 언어 속에 보존하는 한에서 존재는 자기 모습을 완전히 열어 보여준다. 사실 존재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두가지 측면에서 잘못이다. 첫째, ~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형식은 이미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것은 인식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에 존재에 관한 물음에는 적용될 수 없다. 이 물음이 가능하려면, ~에 해당하는 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그것은 존재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처럼 존재의 존재를 전제하면서 존재를 묻는 엉뚱한 물음이 될 뿐이다. 사유, 탐구, 관찰, 분석 등 이성의 무기들은 모두 존재가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이것들은 이식론의 영역에서만 화려하게 구사될 수 있을 뿐, 존재의 존재방식을 묻는 존재론 입장에서는 효용성이 없다. 존재하면서 존재를 묻는 특이한 물음에 대한 답은 서양 철학의 전통, 즉 기존의 형이상학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을 극복하러 나선다. 있다와 없다는 반대되는 말 같지만, 없다는 있다를 부정하는 말이고, 있다는 존재한다는 뜻 말고도 서술의 의미를 가진다.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지만 '없는 것이 있다'는 성립한다. 하이데거는 여기서 형이상학을 극복할 길을 찾는다.
존재자는 인식이나 학문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존재는 그 자체로 비 대상적이다. 존재는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비대상적인 존재를 하이데거는 존재를 무(無)라고 한다. 존재란 있는 것인데, 어째서 무, 즉 없다는 것일까? 앞서 '~란 무엇인가?'란 물음이 성립하려면 ~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무란 무엇인가?란 물음은 이미 무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란 분명히 존재한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불안을 경험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무를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불안감 외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경험한다. 사실 불안은 구체적인 대상 없이도 느끼기 때문이다. 불안한 그 순간에 모든 사물과 우리 자신은 어떤 무관심 속에 잠겨버린다. 존재자 일반이 우리에게서 물러나면서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불안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자 일반이 미끄러져 달아나면서 우리는 불안 속에 떨고 있다고 말한다. 이 불안이 무를 드러낸다. 이 무를 직면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불안 속에 평생을 살아갈 수 없듯이 무를 경험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일상에서 무를 잊고 살 때가 훨씬 많다. 사실은 무를 잊은 것이 아니라 무가 자신의 근원성을 위장해서 보이지 않게 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존재, 무가 아니라 존재자들과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존재하면서 존재자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설정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한계이다. 오직 무가 현존재의 근거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존재자의 대단히 괴이한 성격이 우리를 덮쳐온다. 존재자의 괴이한 성격이 우리를 압박해 올 때마나 존재자는 경이를 불러일으켜, 경의의 대상이 된다. 오직 경이, 즉 무의 열려있음의 근거 위애서만 '왜?'라는 물음이 일어난다. 오직 왜?라는 물음만 가능하기에 우리는 근거에 관해 물을 수 있으며, 또 근거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실존은 탐구자의 운명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존재의 정의를 내리는 것 즉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존재의 이유와 원인을 제공받았고, 그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대신 다스리며 정복하며 번성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여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존재의 이유와 원인을 찾아야 했다. 하나님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시며 창조의 질서를 따라 존재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상호성을 맺게 하셨다. 그래서 무나 유 어디에서나 하나님은 존재하신다. 빛과 어둠을 통해 낮과 밤이 생겨났으며 낮과 밤을 주관하는 해와 달과 별이 생겨났고, 이를 통해서 날(Day)이 생겨났으며, 땅과 바다를 통해서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생명들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