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11월 23일 벧엘과 아이 사이

짱목사 0 24

여호수아 8:1-9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3.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여 매복하되 그 성읍에서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준비하라

5.나와 나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 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추격하며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7.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너희 손에 주시리라

8.너희가 그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였느니라 하고

9.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에서 잤더라

 

주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랜 세월 가나안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언어를 가진 민족이 살았기 때문에 가나안의 지명이 바뀌곤 했습니다. 오늘날 성경의 옛지명을 밝혀낸 사람은 미국인 에드워드 로빈슨입니다. 1838부터 52년까지 기록을 토대로 성경의 장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로빈슨은 먼저 폐허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텔(Tell)과 키르벳(Khirbet)을 조사했습니다. 이러한 폐허들에는 반드시 히브리어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많은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오늘날의 지도에도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발견하지 못한 장소가 있으니 벧엘과 아이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벧엘과 아이는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벧엘과 아이 사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두 장소가 가깝기 때문에 하나를 찾으면 다음 하나를 찾는 것은 쉬운 죽 먹기입니다. 사사기 21:19에 보면 실로가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롬은 주후 4세기 예루살렘 북쪽 12마일 떨어진 지점에 벧엘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를 토대로 로빈슨은 아랍어로 베이틴(Beitin)라는 장소를 벧엘, 동쪽에 있는 엣-텔(et-Tell)을 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벧엘은 야곱과 관련된 너무나 유명한 장소입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둔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형 에서로부터 가로챘습니다. 형의 보복이 두려워 어머니의 고향인 하란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그날 밤 루스에 이르러 돌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야곱은 하늘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돌베게를 기초로 단을 쌓고 루스를 하나님(El)의 집(Beth) 벧엘이라 불렀습니다(창세기 28장). 이제부터 벧엘은 야곱과 여호와 사이에 중요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야곱에게 말씀하실 때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부르셨습니다.(창 31;13). 아브라함과 이삭의 약속이 야곱에게로 넘어갔고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에 제단을 쌓게 하신 뒤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창 35: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요셉의 자손들이 벧엘을 분배를 받고(수 16:1) 정복했습니다.(삿 1:22). 요셉 자손은 에브라임 산지와 베냐민 지파 사이의 땅이었기 때문에 남북으로 분열될 때 벧엘이 경계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종교적, 정치적 입지를 위하여 벧엘에서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은 벧엘을 타락시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매년 제사를 드리러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과 북 이스라엘의 경계라는 이유로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도록 종했습니다.(왕상 12장). 결국 벧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저주받은 장소가 되고 말았습니다.(암 3:14; 4:4; 5:5). 그러나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벧엘의 금신상을 철저히 부서트림으로서(왕하 23:15)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로빈슨은 아랍어 베이틴(Beitin)의 ‘-인(in)’이 벧엘의 어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곳에는 아직까지 구약시대의 어떤 유물도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벧엘과 아이 사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벧엘과 아이 사이라는 말과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라는 말도 비슷한 영적 상황을 묘사합니다. 창세기 12:8에 보면 아브라함은 서쪽은 벧엘, 동쪽은 아이 사이에 있는 언덕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처음할 때와 신앙이 자란 뒤에 정체성은 다릅니다. 믿음의 역경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기 전과 후, 요단 강을 건너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민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에서 시작이 벧엘과 아이 사이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고 아이는 폐허, 절망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자신의 현실 중간에 자리를 폈던 것입니다.

 

자리는 자신의 정체성입니다. 그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장막을 친 것은 그곳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 시작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자기의 장막을 쳤습니다.

믿음을 가진 처음부터 아브라함이나 사도바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여정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정을 지나면서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믿음의 여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7:2에도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보내 아이성을 정탐하게 합니다. 이 때도 아이는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아이성은 이삼천명으로도 충분히 점령할 수 있는 성이었지만 아간의 범죄로 실패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철저히 용서를 구하고 여호수아는 직접 진두지휘하여 다시 아이 성 정복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이 성을 점령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2.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가지라 너는 아이 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여호수아는 승리할 복병들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두고 자신은 아이 성 앞에서 도망칠 백성들 가운데서 잠을 잤습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는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서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한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아브람과 야곱처럼 점점 더 주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Author

Lv.1 짱목사  최고관리자
0 (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