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6월 12일 아삽의 고통

짱목사 0 6

시편 73편 1-14

1.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말씀 묵상

시편 150편까지 있는 시편은 총 다섯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중 시편 3권73편부터 89편까지입니다. 그중 73편은 아삽이라는 인물이 쓴 시편입니다. 시편은 의인들이 받을 ‘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그래서 우리 말에 담고 있는 ‘복’의 뜻과 성경이 말하는 복의 뜻이 다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복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의 복을 받아 누릴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복된 길을 가기도 하고, 악한 길로 가기도 합니다. 더 나은 선택이 있고 잘못된 선택이 있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은 그렇게 극명하게 대조되는 두 길을 말하면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씀합니다. 그것이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드러나는 사울의 죄악입니다. 22.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여호와의 말씀이 복의 근원인데 악인들은 그것을 거역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은 인정하시나, 악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잠언 3장 17절의 말씀처럼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1장 30절“내 짐은 쉽고 가벼우니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분명하고 확실합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다보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수히 많은 시편들이 바로 그러한 상황가운데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배운 말씀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의 저자인 아삽도 바로 이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악인들이 형통하는 것을 보았고(3절), 오히려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손을 씻어 회개하는 자신은 하루종일 고난을 당했습니다. 아삽은 그가 믿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난 것입니다. 욥도 이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욥은 악인들이 망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다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되자 어떻게 해야할 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가? 왜 믿는 자들에게도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이 세상에는 여전히 악이 있고 고통이 있는가?

 

‘신정론’이라고 하는 이 부분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믿는 사람들, 특히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크게 찾아오는 질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믿음이 흔들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런 질문에 대해서 바른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아삽이 경험하고 깨달은 것에 대한 답을 함께 찾기를 원합니다. 아삽은 다윗이 임명한 찬양대장이었습니다.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성전의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올 때 찬양을 담당했고, 찬양을 작곡했습니다. 아삽은 시편 50편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하는 참된 예배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앞서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아삽이었지만, 믿음을 거이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시편 73편에서 그가 어떻게 믿음을 회복했는지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 1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1절)  아삽은 하나님이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자격이 없는 자들, 죄인과, 의인들에게도 골고루 베풀어주십니다. 아삽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2-3절) 아삽은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말합니다. 자신도 악인들의 길을 따를 뻔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았고 그것이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아삽은 4-15절에서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4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4-5절) 하나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아삽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솔직하게 말합니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13절)

 

이런 일들을 보니 자기가 지금까지 정결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참 헛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진 것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말씀에 순종해온 삶이 아무 의미 없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아삽이 경험한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14절)  악인이 잘되는 것은 반대로 보면 정직한 사람들의 마음에는 재난이 찾아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악인이 득세할 때 괴로운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런데 아삽의 고통은 3절에서 악인들을 ‘질투’한데서 왔습니다. 아삽은 어느 순간부터 악인들의 형통이 부러웠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이 의인에게 선을 행하시는지, 악인에게는 심판을 행하시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아삽은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은 성도들을 실족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아삽의 고통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아삽은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아삽은 매일 하던대로 성소에 들어갔을 때, 의문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답을 내일 새벽에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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