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16-13절
16.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20.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말씀 묵상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이 다윗의 집으로 오는 것을 보고 뛸뜻이 기뻤다. 다윗은 시인이요 예술가였기 때문에 감정의 표현이 뒤어났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이 뛰놀며 춤을 추었다.너무나 기쁜 나머지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다. 이 모습을 본 남편의 모습에 수치를 느끼고 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다. 이는 언약궤의 회복보다 다윗의 체통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법궤는 미리 준비한 장막의 준비된 자리에 두었다. 언약궤가 홉니와 비느하스 때로부터 다윗이 예루살렘을 회복한 때까지 40여년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법궤가 장막에 옮겨지자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렸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모인 백성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다윗은 모인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떡 한덩이, 고기 한 조각, 건포도 한 덩이씩을 나눠 주었다.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사람들은 다윗이 행했던 이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왕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언약궤가 돌아오자 참된 예배가 회복되고,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나누는 천국잔치가 벌어졌다. 모든 일이 은혜롭게 마쳐지고 백성들은 평안히 집으로 돌아갔다.
다윗은 모든 일에 가족들도 함께 참여하도록 축복하고자 했다. 이 때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영접하면서 비아냥 거렸다. "오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건달들이 맨살을 드러내고 춤추듯이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고 춤을 추셨으니, 왕의 체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갈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의 경우에는 합당한 말이 아니었다. 이치에 맞는 말이라도 경우에 합당한 말이어야만 한다. 그래서 잠언 25장 11절에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사과"라고 말씀한다. 모든 백성들이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볼 때, 미갈은 왕의 허물만 주목하였다. 은혜를 보는 눈과 허물하는 눈은 결과가 다르다. 다윗은 미갈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와 가족을 버리고 그런 나를 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다. 나는 앞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계속해서 춤을 출 것이다. 내가 이보다 더 바보같아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것과 달리 존경을 받을 것이다."
생명의 삶에서는 미갈을 "다윗의 아내로서가 아닌 사울 가문의 마지막 인물로서 강제로 다윗 성에 끌려왔기 때문에 언약궤를 무사히 옮긴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갈은 자신의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할 수 없었던 불쌍한 여인이었다. 다윗은 그런 미갈을 철저히 외면했고, 미갈을 외롭게 일생을 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기쁨의 잔치에 불러주셨다. 미갈처럼 허물하는 사람은 허물만 보이고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는 야곱처럼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축복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