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22-31
22.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2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2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말씀 묵상
다음은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수전절의 유래입니다.
BC 168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영토를 크게 몇 등분으로 나누어서 다스렸을 때, 그 당시 유대 나라를 포함한 그 주위의 지역을 시리아(수리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팔레스틴을 완전히 장악한 후, 유대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체의 예배 행위를 금지시켰고 하나님 대신에 제우스 같은 그리스의 신들을 성전 안으로 들여놓았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부정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돼지를 잡아서 그 머리를 성전 제단에 놓고 유대인들에게 예배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치욕스럽고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마음으로만 분노하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먹고살기 위해서 이 악한 지도자와 타협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끝까지 치를 떨며 분노했던 마카비라는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가문 중에서도 유다 마카비 형제들이 유명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땅을 어지럽히고 부패시키는 이 적들로부터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성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 게릴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BC 164년부터 시작되어 2, 3년 동안의 혈전을 벌인 끝에 드디어 악한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마침내 더럽혀졌던 성전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회복해서 봉헌하는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금 촛대에 겨우 하루 정도만 쓸 수 있는 기름을 넣었는데 그 촛불이 8일 동안이나 계속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래서 꺼지지 않고 환하게 성전을 비추는 그 불빛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찾은 성전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여 8일동안 하루에 촛불을 하나씩 켜나가는 수전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이 날짜가 12월 25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수전절을 지키셨는데 때가 겨울이었습니다. 이 솔로몬 행각은 헤롯왕 때에 지어졌는데 산헤드린 공의회의 판결이나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때 사용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종용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누구신지를 나타내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일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다윗왕과 솔로몬 같이 이스라엘을 위대한 나라로 세우는 메시야였습니다. 주전 2세기부터 유대인들은 더욱 메시야를 갈망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부림절이나 수전절은 모두 이러한 소망을 강화시키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왕이 아니라 목자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한 가지 오해가 있는데 선한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떼를 위하여 수십킬로미터를 왕래하며 왠만한 맹수를 쫓아내는 것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습니다. 로마를 공포에 떨게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때에도 목자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도 목자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이나 솔모몬보다 위대한 것은 영생을 주시고 자기 양떼를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목자는 아무리 여러 양떼가 섞여 있어도 자기 양을 이끌어내는데 이는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주 안에서 하나님을 아는 일과 믿는 일에 온전히 하나되는 성도들 되기를 소망합니다.